피의자 없는 감시의 공포

2014.10.16 21:05 입력 2014.10.16 21:27 수정
박경신 | 고려대 법학전문대학교 교수

기자들도 털렸단다. 정진우 노동당 부대표가 카카오톡에 개설한 ‘언론대화방’에 참여한 기자들의 대화 내용도 정 부대표의 압수수색 때 같이 ‘압수(복사)’됐다. 현재 법대로 하자면 압수수색은 범죄와 관계된 정보로 한정돼야 한다. 기자들의 대화 내용을 빤히 보면서 복사해갔다면, 범죄와 무관한 정보인 줄 알면서 ‘압수’까지 해간 것이니 틀림없이 불법이다. 물론 ‘수색’도 범죄와 관계된 정보로 한정되어 있긴 하지만 범죄관련성을 미리 알 수가 없으니 ‘수색’은 어느 정도 범위를 넘어서도 용서는 되어야 할 것이다.

[시론]피의자 없는 감시의 공포

하지만 기자들이 이를 ‘간접압수수색’이라고 부르며 불만을 토로하듯이 이러한 ‘수색’도 최대한 한정되어야 마땅하다. 그런 이유로 법도 고쳐서 전기통신의 경우 ‘작성기간’을 영장에 명시하도록 해서 범죄와 관련된 기간 외에 작성된 것은 기계적으로 걸러낸 후에 수색하도록 한 것인데, 이걸로는 아무래도 2% 부족하다. 영장에 ‘대화상대방’을 명시하는 것은 어떨까? 그랬다면 최소한 ‘언론대화방’이라고 쓰여 있는 건 ‘간접수색’에서 제외되지 않았을까?

그런데 이렇게 피의자 주변에 서성이다 당하는 건 덜 억울하다. 피의자도 없는데 압수수색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경찰이 유병언을 찾겠다고 내비게이션에 ‘송치재’를 검색한 사람의 3개월치 위치정보를 압색했다고 한다. 그런데 위치정보는 통신사실확인으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수년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에서 위치정보를 ‘통신사실확인자료’에 포함시키려고 법개정안을 냈지만 모두 허사가 되었다. 결국 GPS 위치정보는 압수수색 영장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압수수색 영장은 “피의자가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정황”이 있을 때만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송치재’를 내비게이션으로 검색한 사람들은 우선 피의자가 아니다. 물론 반드시 피의자에 대해서만 압수수색 영장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건과 관계가 있다고 인정할 수 있는 것’에 한정해서만 받을 수 있다. ‘송치재’ 검색을 한번 했다고 해서 그 사람의 위치정보 3개월치가 사건 관련성이 있다고? 역시 불법이다.

우리는 스스로 피의자가 아닌 이상 압수수색 같은 침입적인 수사 대상은 되지 않을 것이라는 헌법적 약속에 기대어 살고 있다. 즉 테러범 같은 예외적 상황이 아닌 이상 압수수색은 피의자에 ‘대해’ 이루어지는 것이지 피의자를 ‘찾기 위해’ 벌어진다고 생각지 않는다. 이렇게 피의자를 찾기 위해 무작위로 수많은 사람을 감시하는 관행은 통신사실확인에서도 의심된다.

2011년에 통신사실확인이 3700만건이나 될 정도로 많았고 매년 수천만건씩 이루어져왔다. 통비법에 따르면 기소, 불기소, 불입건 처분 이후에 통신사실확인을 당한 사람은 모두 통지를 받았어야 한다. 그런데 실제로 그런 통지를 받은 사람이 거의 없다. 왜 그런가? 이 통지를 검사장 승인으로 유예할 수는 있다. 하지만 “통지할 경우 국가의 안전보장을 위태롭게 하거나 사람의 생명·신체에 중대한 위험”이 있을 때만 유예가 가능하니 이런 이유는 아닐 거다. 국가나 생명이 위험한 상황이 매년 3000만건씩 있다는 건 더 이상하지 않은가?

내 예측은 이렇다. 아마도 기소, 불기소, 불입건 등의 처분을 애초에 하지도 않을 사람들, 즉 수사나 내사 대상도 아닌 사람들에 대해 통신사실확인을 하고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송치재 근처 기지국에 휴대폰 신호가 잡힌 사람의 통신사실확인자료를 다 받아보는 식이다. 그렇게 해놓고는 기소, 불기소, 불입건 처분을 안 하니 통지도 안 해준다고 정당화하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죄 없는’ 사람들은 죄 없다는 이유로 통지도 못 받은 것인데 이건 매우 부당하지만 이건 별론으로 하자. 여기서 중요한 건 이렇게 우리는 피의자도 아니면서 침입적인 감시를 당하면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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