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협상, 어찌 화해일 수 있으랴

2016.01.13 20:57 입력 2016.01.13 21:11 수정
김정훈 | 전남과학대 교수·인문학

한·일 외교부의 졸속적인 위안부 문제 밀실합의로 국민들의 원성이 높다. 이번 합의는 위안부 현안과 강제징용 피해자 건의 분리 대응에 따른 결과 도출이었다. 따라서 근로정신대 할머니 문제 등 또 다른 난제를 풀어야 할 양국 정부에는 선례가 되는 셈인데, 그 인식의 단면이 씁쓸하다. 외세 개입, 피해배상 부재, 피해자 의사 미반영에 의한 졸속 타결이 얼마나 큰 국민적 저항을 불러일으키고 있는지 당국자는 목도하고 있으리라.

[시론]위안부 협상, 어찌 화해일 수 있으랴

동아시아의 헤게모니 유지와 한·미·일 군사동맹을 위한 미국의 압력, 일본의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에 대한 미·일 밀약으로 아베 총리가 협상 제스처를 취했다는 게 어찌 낭설일까. 진정성이 깃든 역사적 성찰을 전제한 합의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피해자의 입장을 고려하거나 일본 정부의 책임을 긍정한 형태가 아니었기에 독일이나 여타의 예에 비추어 통상적인 합의와는 거리가 먼 것 아니겠는가.

더욱이 피해배상도 아니고 기금이다. 게다가 일본 정부가 재단을 설립하는 것도 아니거니와 우리 정부가 재단을 꾸려 10억엔을 일본 정부가 출연하는 안이다. 이를 어떻게 화해안으로 수용할 수 있으랴. 위안부 문제 전문가인 주오대 요시미 요시아키 교수는 양국 밀실합의를 정략적인 것으로 보고 타결 직후 책임소재와 배상 성격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양국이 이번 합의를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타결’로 발표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피해자들과 협의를 통해 합의안에 대한 최소한의 동의라도 구했어야 한다. 합의안을 보면 한국이 정치적으로 패배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일갈했는데 참으로 뼈아픈 지적이다.

도무지 우리 외교부가 일제강점기 여성피해 문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여자근로정신대 현안 또한 그것과 맞물리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해방 후 반세기 동안 국내에선 일제강점기 일본 징용 여성들에 대해서는 함구하는 분위기였다. 1990년대에 이르러 피해자 증언 등을 통해 위안부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자, 그와 더불어 여자근로정신대 문제도 주목받게 됐다.

이는 해결해야 할 한·일 과거사 현안이며 일제강점기 여성들의 피해 사실임에도 전통적 가치관을 의식해야 하는 풍토에서 반세기 동안 여성의 인권 문제가 도외시되었음을 의미한다. 또한 성적 노예로 강제동원된 위안부 피해자와 일제 전쟁 수행 및 노동력 확보를 위해 군수공장 등으로 동원됐던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이 엄밀히 구분되지 않았음을 반증한다. 이러한 현실에서 사회통념 분석과 정확한 피해 사실에 근거한 치밀한 협상과 논리적 대응이 가능할 리 없다.

지금도 간혹 위안부와 근로정신대를 동일시하는 보도가 있거니와, 근로정신대 할머니가 일본 군수공장으로 끌려간 사실만으로 위안부로 오해받아 파혼을 경험했거나 위안부로 비칠까 두려워 피해 사실을 공개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 금할 수 없다.

물론 근로정신대로 동원되었다가 위안부로 차출된 사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건 극소수이고 징용 목적, 징용자 연령, 장소, 동원 실태로 보아도 확연히 구분된다. 이럴진대 정부는 위안부와 더불어 여자근로정신대 현안 등 일본제국주의 시대에 피해를 입은 여성의 인권 문제에 얼마나 관심을 기울이며 해결 의지를 보이고 있는지 추궁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이 교과서에 위안부 문제를 보다 확실하게 기술하고 후세에 대한 교육을 강화할 책임”(요시미 교수)을 실천하지 않는 한 위안부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다. 일본 작가 하하키기 호세이는 <해협>에서 조선 청년 하시근이 해방 전 일본으로 징용당해 노역하며 만난 일본 여인 사토 치즈와 해변에서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그렸다. 이후 하시근은 치즈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사토 도키로에게 “너는 불행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대한해협을 사이에 둔 두 민족의 아름다운 가교가 되어주기 바란다”는 당부를 <해협>의 마지막 부분에 새겼다. 작가는 왜곡되지 않는 한·일 역사의 의미를 작품에 담은 것이다. 이처럼 한·일의 과거사 문제는 서로에 대한 진정한 이해와 용서, 진실함이 있을 때 타협 가능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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