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중의 배제’ 넘어서기

2017.06.06 20:42 입력 2017.06.06 20:45 수정
김윤철 |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1987년 6월 항쟁이 있은 지 딱 30년이 된다. 이즈음에 대한민국은 촛불항쟁을 통해 권력을 사유화한 대통령을 탄핵하고, 조기 대선을 치러 새로운 정부를 출범시켰다. ‘항쟁에서 항쟁으로’ 이어진 30년의 세월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시론]‘3중의 배제’ 넘어서기

지난 30년을 사람들은 ‘민주화 30년’이라고 부른다. 6월 항쟁을 통해 군부독재 세력의 퇴조를 가져왔고,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선출하는 헌법의 도입과 실시로 민주적 선거제도가 정상화되었기 때문이다. 또 민주적 기본권이라 할 언론·집회·결사의 자유 등이 신장돼 왔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항쟁 직후 치러진 13대 대통령 선거에서 전두환 신군부 세력의 또 다른 주역인 노태우가 승리를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6월 항쟁을 기준으로 민주화 이후의 시대로 부를 수 있는 것이다. 또 노태우 정권이 여전히 산업화와 경제성장의 최대 기여자이자 희생자인 노동자들을 억압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더 나아가 공안정국을 조성해 다시금 국가폭력을 휘두르며 청년 대학생들의 생명을 빼앗은 끝에 6월 항쟁을 방불케 한 ‘1991년 5월 투쟁’을 가져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리 부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민주화 30년은 군부독재 세력의 퇴장과 선거정치의 정상화 그리고 자유권 신장의 경향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촛불이란 이름의 항쟁을 가져올 수밖에 없었던 세월이기도 했다. 비민주적인, 심지어 반민주적인 요소마저 내장한 민주주의, 즉 제한적인 성격의 민주주의를 가져온 ‘역설의 세월’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럼 민주화 30년이라 불리는 그 세월 동안 어떤 비민주적 혹은 반민주적 요소가 내장되어온 것일까? 다름 아닌 ‘배제’이다. 그것도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세 가지 축에 대한 배제이다. 세 가지 축은 무엇인가? 민주주의의 사회적·대중적 기반으로서의 노동자 계급,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로서의 평등, 그리고 민주주의의 담지체이자 원리로서의 국민주권이다. 민주화 30년이라는 세월 동안 국가와 자본은 이 세 가지 축을 모두 배제하고자 시도해왔다. 바로 이 ‘3중의 배제’가 제한적인 성격의 민주주의를 가져왔으며, 또 그에 대한 주기적 국민 저항을 가져왔다. 즉 지속적으로 ‘요동치는 민주주의’를 가져왔다.

노동자 계급 배제는 10% 미만의 낮은 노조 조직률로 압축된다. 국민의 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가 하나의 계급으로 존재할 수 없도록 탄압해 온 것의 결과이다. 이 과정에서 노조는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의 재화로 한정되었다. 이 때문에 노조는 민주주의의 착근과 확장, 즉 산업현장과 직장에서의 민주화, 그리고 사회경제적 차원에서의 민주화를 위한 무기가 아닌, 노동귀족의 이기주의와 탐욕의 도구로 사용되거나 취급되고 있다. 그 결과 사회경제적 약자의 민주적 권리 신장을 위한 조직된 목소리가 만들어지지 못하고 있다.

평등에 대한 배제는 국가경쟁력과 무한경쟁 담론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는 출신성분과 자원 보유 여부에 따른 불평등과 차별을 당연한 것 혹은 불가피한 것으로 수용해야 한다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 담론의 확산 과정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를 비롯한 여성과 노인과 청년 빈곤층과 같은 사회경제적 약자들은 보호를 받아야 할 약자가 아닌, 처벌을 받아야 할 ‘패배자’로 간주되고 있다. 최근의 ‘헬조선’ ‘흙수저·금수저’ 담론은 바로 이와 같은 현실에서 불거져 나온 것이다.

국민주권 배제는 주요 국가정책에 대한 결정이 정치·경제적 기득권층과 엘리트의 담합과 독점을 통해 이루어지는 방식으로 시도되었다. 그 ‘궁극의 도달점’인 바로 박근혜 게이트이다. 노동자 계급과 평등에 대한 배제를 통해 어느 누구의 견제도 감시도 받지 않은 채, 또 어떤 규준에도 구애받지 않은 채, 최선을 다해 사익을 추구한 끝에 국민주권의 원리마저 무시하게 되었던 것이다.

박근혜 게이트를 계기로 일어난 촛불항쟁은 바로 이와 같은 3중 배제의 끝에서 확인한 국민의 분노이고 열망이었다. 노조와 같은 조직재화가 없어 일상적 삶의 과정에서는 목소리를 낼 수가 없으나, 또 당장 평등이라는 가치를 구현할 수는 없으나 국민주권의 원리마저 포기할 수는 없다며 광장과 거리로 뛰쳐나왔던 것이다. 그리고 30년의 세월 끝에 내몰린 민주주의의 마지노선에서 ‘국민주권의 비상적 행사’, 즉 국민저항권 행사를 통해 민주주의를 다시 지필 불씨를 건져낸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번의 항쟁을 ‘촛불혁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실제로 그리 부를 수 있으려면 3중의 배제를 넘어서야 한다. 민주화 30년이라 불리는 시간을 맞이할 즈음에 출범한 새 정부와 문재인 대통령은 물론이고, 촛불항쟁의 주역인 국민이 앞으로도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서 수행할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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