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청문회와 지성인의 침묵

2009.10.12 17:58
강상호 한국정치발전연구소 대표· 경희대 객원교수

이 시대에 성공하는 사람은 뭔가 다르다. 보통사람들이 상식의 틀에 얽매일 때, 상식은 물론 법의 굴레도 과감히 내던지고 오직 목표만을 위해서 매진할 수 있는 사람. 이런 유형의 사람이 오늘 한국사회에서 성공의 조건일지도 모른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 성공이 선이고 실패가 악으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는 규범을 가르치지만 사회는 성공신화로 포장된 탈법을 보여준다. 그러나 젊은 세대는 가르치는 대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는 대로 행동한다는 점에서 요즈음 청문회를 통해서 나타난 모습은 우리의 내일을 불안케 한다.

교수와 성직자를 포함한 모든 직종이 권력과 돈을 추구하는 사회. 성공을 위해서라면 한두 번쯤 쪽팔리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사회. 정의가 자존심이 아니라 권력과 돈이 자존심이 되어 버린 사회. 그러한 모습을 보고도 이 나라 최고의 지성이 침묵하는 사회. 정운찬 총리의 청문회를 보면서 많은 대학 관계인은 침묵했다. 그러나 지성인의 침묵은 이 시대의 부끄러운 침묵이다. 우리는 당당한 지성을 원한다. 우리는 책임 있는 지성을 원한다.

요즈음 청문회는 조소와 짜증을 불러일으키는 삼류 코미디이다. 차라리 이런 청문회라면 비공개가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좌절어린 푸념도 해본다. 위법의 크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라 그 치졸함과 어색함에 보는 사람도 부담스럽다. 더욱이 실망스러운 것은 청와대 인사팀이 청문회에서 나오는 온갖 비리의 대부분을 사전에 알았다고 말하니 어안이 벙벙하다. 정치의 정도를 보여 주어야 할 청와대가 정치의 기본을 흔들고 있지 않는가.

집권 한나라당의 모습은 또 어떠한가. 야당시절 그 엄격하던 기준은 어디로 갔는가. 당론이라는 이름하에 집단투표를 남용하면서 다수결 원칙을 이야기할 수 있는가. 헌법 기관인 국회의원이 각자의 판단을 중지한 채 집단투표에 동원되면서 야당의 투쟁을 소수의 횡포라고 말할 수 있는가. 집단투표는 다수결 투표가 아니라는 공감대가 국민 속에 형성되어 있건만, 오직 집권여당인 한나라당만 모른다면 말이 되는가. 한나라당에는 영혼이 없다던 당 대표의 비판이 새삼 돋보이는 판국이다. 임명 동의안이 당당하다면 차라리 다수가 지킬 수 없는 법안의 개정에 한나라당이 고민해 주기 바란다.

다분히 분열적 요소를 갖고 불안하게 출발한 정 총리가 통합을 위해 열심히 일하겠다고 한다. 비록 부끄럽고 어색한 미소로 출발하지만 총리직을 떠날 때에는 더욱 당당하게 건강한 웃음을 보여주기 바란다. 그것이 청문회를 통해서 상처받은 국민들의 마음을 조금은 어루만지고, 잃었던 자신의 명예를 회복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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