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바람 바람 바람

2000.09.01 19:03

1949년 뉴 펀들랜드섬이 캐나다의 한 주(州)로 편입되자 캐나다국립철도회사가 뉴 펀들랜드 철도 운영권 인수작업에 나섰다. 이때 뉴 펀들랜드 철도측이 제출한 직원 명단에 ‘바람예보꾼’이 들어있었다. 뉴 펀들랜드 철도회사가 이같은 이색 직책을 만든 것은 테이블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열차를 전복시킬 정도로 강하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운행중이던 14량의 화물열차가 시속 190㎞의 강풍에 밀려 개천에 처박힌 적이 있었다고 한다.

엊그제 한반도를 강타한 제12호 태풍 ‘프라피룬’의 최대풍속은 초당 58.3m. 31일 낮 12시25분쯤 전남 흑산도에서였다. 우리나라에서 기상관측이 시작된 이래 최대풍속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태풍이 몰고온 강풍의 최대풍속은 92년 테드가 상륙했을 때의 초당 51m였다. 지난해 8월에 상륙한 태풍 올가의 최대풍속은 초당 46m였고, 93년 로빈이 울릉도를 휩쓸었을 때의 풍속은 42m였다고 한다. 초속 20m이면 사람이 바로 서있기가 어렵고, 30m이면 목조가옥이 쓰러지고, 40m이면 차량이 뒤집힌다니 50m 강풍이 뿜어내는 위력이 어떠한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바람이 다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니다. 멀리 중국대륙에서 모래와 중금속을 실어 나르는 황사(黃砂)도 있지만 계절따라 부는 순풍은 곡식을 살찌게 하고 오염된 대기를 씻어준다. 그리고 바람을 다스리기에 따라서는 쾌적한 도시환경을 되찾을 수도 있다. 독일 슈투트가르트시가 바람길을 만들어 고질적인 대기오염을 해결한 것은 바람을 잘 다스린 성공사례로 손꼽힌다. 서울시도 건축고도 제한, 녹지조성 등을 통해 바람길을 내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어느 전직 대통령은 ‘선거는 바람’이라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지만 우리 정치판에 부는 바람도 때로는 태풍못지 않은 위력을 발휘해 왔다. 선거 때마다 여야간 쟁점으로 떠올랐던 북풍(北風)이니 세풍(稅風)이니 총풍(銃風)이니 하는 바람도 따지고 보면 우리 정치판을 뒤흔들었던 태풍들이었다. 그리고 보면 만물의 영장(靈長)이라는 인간도 바람의 지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강풍과 폭우를 동반한 태풍 앞에 무력할 수밖에 없는데다 언필칭 선진정치라면서도 아직도 전근대적인 바람이 우리 정치판을 좌지우지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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