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펀드의 사회학

2000.11.01 19:10

우리 전통사회에서 금융기관의 역할을 해 온 것이 바로 마을 단위의 계(契)였다. 갑자기 몫돈이 필요한 계원에게 급전을 조달해 주면서 순서에 따라 이자를 떼어내 나중에 받는 사람에게 더 얹어주도록 되어 있었으니 은행의 원리나 거의 비슷했다. 다만 주먹구구로 운영되다가 계가 깨지는 바람에 계주가 한밤중에 줄행랑을 놓는 경우가 잦았다는 점이 약간 다를 뿐이다. 계주가 막다른 골목에 이른 나머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도 발생하곤 했다.

계 외에도 돈놀이꾼에게 돈을 빌려 일수(日收), 또는 월수(月收)로 갚아나가는 방법이 있었다. 이자가 워낙 높기도 했지만, 원금과 이자를 함께 갚아야 했으므로 서민들에게는 만만치 않은 부담이었다. 그중에서도 ‘달러변’이란 게 가장 이자가 셌으니 100일 안에 원금과 이자를 모두 갚도록 되어 있었다. 하루에 1%씩의 이자를 꼬박꼬박 물었던 셈이니 그야말로 악덕 고리대금의 표본이었다.

은행과 증권사의 문턱이 낮아진 요즘은 이러한 사(私)금융 대신 각종 펀드가 유행하고 있다. 증시 침체로 개미군단 대부분이 울상을 짓고 있다지만 각 금융사마다 무슨무슨 펀드니 하며 그럴듯한 이름을 붙여 투자자를 유혹하는 것은 여전하다.

사회를 온통 흔들어대고 있는 동방금고 불법대출사건의 핵심도 결국은 펀드에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높은 이율을 준답시고 유력 인사들을 끌어들여 로비에 앞세웠을 가능성이 많다는 얘기다. 젊은 벤처 기업가가 개인적으로 운영하는 펀드에 정계 인사와 재력가들이 줄줄이 가입했다는 것이니 사회적 충격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결국 펀드파문은 금감원 장래찬(張來燦) 전 국장의 자살로 이어졌다.

펀드에 대한 과욕이 빚어낸 비극이다. 증시가 한창 잘 나가던 무렵에는 웬만한 펀드매니저의 스카웃 비용과 연봉이 최소한 몇십억원씩 했을 정도였으니 펀드의 인기를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한밑천 잡자는 펀드로 집 날리고 퇴직금 날렸다는 얘기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판이다. 불합리한 경제구조가 빚어낸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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