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임중도원(任重道遠)

2018.12.24 20:47
조운찬 논설위원

동양고전 <논어>는 공자가 제자들과 토론(論)하고 대화(語)한 내용을 담은 책이다. 영어 번역본의 제목 ‘The Analects(어록)’나 ‘Confucius analects(공자 어록)’가 ‘논어’의 뜻에 부합한다. <논어>에는 ‘자왈’(선생님이 말씀하셨다)로 시작하는 공자의 어록만 있는 게 아니다. 제자들의 말도 실려 있는데, 특별히 증삼·유약·민자건은 각각 증자·유자·민자로 기록했다. 이름을 쓰지 않고 선생님을 뜻하는 접미사 ‘자(子)’를 붙인 것은 존경의 표현이다. 이 때문에 문헌학자들은 <논어>의 편찬자로 증삼·유약·민자건의 제자들을 지목한다. 공자의 손자뻘 제자들이 엮었다는 얘기이다.

증자는 아버지 증점의 권유로 공자의 문하에 들었다. 이후 스승의 학문을 공자의 손자 자사에게 전수해 유학의 도통을 잇게 했다. <대학> <효경>의 저자로도 알려져 있다. <논어>에서 증자의 어록은 공자 다음으로 많다. ‘나는 하루 세 번 반성한다’ ‘새가 죽을 때는 울음이 슬프고 사람이 죽을 때는 말이 착하다’ ‘글로써 친구를 만나고 교우관계로 덕을 높인다’ 등은 증자의 대표적 어록이다.

증자는 <논어> ‘태백’ 편에서 이런 말도 했다. “선비는 뜻이 넓고 굳세어야 한다. 짐이 무겁고 길은 멀기 때문이다(士不可以不弘毅 任重而道遠).” 대학교수들이 이 가운데 ‘임중도원’을 2018년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했다. 교수들은 문재인 정부 2년차를 평가하면서 남북관계 등 정부 정책에 대한 바람을 이 말에 담았다고 한다. 문 정부 첫해의 사자성어 ‘파사현정(잘못된 것을 깨뜨리고 올바름을 구현한다)’에 비교할 때, 기대는 여전하지만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시절의 권력농단을 풍자한 ‘지록위마’(사슴을 가리키며 말이라고 한다)나 ‘혼용무도’(세상이 온통 어지럽고 무도하다) 같은 사자성어에 비할 것인가.

다산 정약용은 <논어고금주>에서 ‘임중도원’을 풀이하면서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려면 역량과 함께 여유로움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서두를 것도 없다. 증자는 계속해서 말했다. “덕을 임무로 삼았으니 무게는 견딜 만하고, 죽을 때까지 할 일이니 진전이 더디어도 괜찮다(仁以爲己任 不亦重乎 死而後已 不亦遠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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