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전태일 50주기’ 소환

2019.11.01 20:57

‘청년’과 ‘불꽃’. 살았으면 71세였을 노동자 전태일 앞에 붙는 두 글자다. 1970년 11월13일 평화시장에서 ‘응답없는 세상’을 향해 겨우 22세에, 분신으로 항거한 순간을 표현한 것이다. 1995년 나온 영화엔 청년 전태일 앞에 ‘아름다운’이 더해졌다. 짧은 생에 눈물샘을 자극하는 언행이 빼곡한 까닭이다. 배곯는 10대 여공들에게 차비로 풀빵을 사준 ‘따뜻한 오빠’였고, 휴일 없이 하루 14시간 미싱이 돌아가는 무법천지와 싸운 ‘1020 선각자’였다. 법전 속 한자를 몰라 죽을 때까지 갈구했던 ‘대학생 친구’는 민중·노동이란 말이 세상과 만나게 한 기폭제였다. 대학 캠퍼스에 4·19-5·18-6·10은 ‘민주’가 관통하고 11월엔 늘 ‘전태일’이 우뚝 섰다.

올가을 일찌감치 그를 소환한 것은 류석춘(연세대 교수)의 ‘난독’이었다. ‘월간조선 10월호’에 전태일과 평화시장 노동자에게 착취라는 용어를 적용할 수 없다고 기고한 것이다. 전태일의 월급이 1964년(수습공) 1500원에서 1970년(재단사) 2만3000원으로 6년 새 15배나 뛰었다고 <전태일 평전>을 인용하면서다. 주당 72~98시간 일한 수습공 일당(60원)으로 짜장면 한 그릇(100원)도 못 사먹고, 재단사 시급(현재가치 1237원)이 올해 최저임금의 15%에 그치던 시절의 노동현실을 왜곡한 것이다.

1일 서울 전태일기념관에선 ‘나와 같은 전태일, 나와 다른 전태일’을 묻는 첫 학술토론회가 열렸다. 5일부터 13일까지 대구에선 연극 <만나지 못한 친구>가 무대에 오른다. 한 살 차이로 대구에서 태어나 대한민국의 첫 노동자 위인전 <전태일 평전>을 쓴 고 조영래 인권변호사와 전태일의 삶을 다룬 연극이다. 전태일 50주기, 조영래 30주기를 맞는 내년엔 크라우드펀딩으로 만드는 애니메이션 영화 <태일이>도 선보인다.

청년은 꽤 오래전부터 비정규직, 실업, 주거빈곤, 사회적 약자의 ‘동의어’가 됐다. 벌써부터 50주기를 달고 전태일을 이리저리 소환하는 것도 그의 외침이 아직도 노동현장에 착근하지 못한 때문이리라. 49년 전 화염에 싸인 노동자가 평화시장을 달리며 외쳤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나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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