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아들, 사회가 포기하라 하네요”

2006.05.07 17:35

[사람 속으로] “실종아들, 사회가 포기하라 하네요”

2003년 10월10일 오후 3시30분. 집안일을 하고 있던 박혜숙씨(당시 32)는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영광이 어머니, 영광이가 없어졌어요.” 전화선을 타고 오는 어린이집 선생님의 떨리는 목소리. 순간 어머니의 가슴은 덜컹 내려앉았다. 그 길로 택시를 타고 달려간 부산 해운대구 장산의 조그마한 사찰. 사찰로 이어진 30m 외길을 허겁지겁 오르면서 어머니는 “혼자서 내려올 수는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주변 어딘가에 길을 잃고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119와 경찰이 도착하고 수색을 했지만 영광이의 모습은 정말 온데간데 없었다. 그렇게 3살된 영광이는 어머니의 시야에서, 품에서 사라졌다.

3년이 지난 어린이날을 하루 앞둔 4일. 영광이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2년전 이사한 부산 구서동 소재 아파트 입구에서 만난 어머니 박씨의 손에는 뭔가가 들려 있었다.

“내일이 어린이날이잖아요. 실종 어린이 찾기 캠페인에 사용할 가슴띠와 전단지입니다.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즐거운 날이지만 자식을 잃어버린 엄마·아빠에겐 더없이 슬프고 괴로운 날이죠.” 가슴에 묻지도 못하는 자식. 그런 자식을 둔 어미의 속울음이 소리없이 전해왔다. 하지만 박씨는 3년전 전단지와 메가폰을 들고 시장통으로, 거리로, 미친듯이 헤매던 그날로부터 조금은 벗어나 있었다.

“지금 누군가의 손에 잘 자라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침마당’ 등 방송에 영광이 사연이 소개된 뒤 전화가 한번 왔어요. 아무 소리도 없이 아이 우는 소리만 들려주더군요. 그래서 누군가 ‘죽이지는 않고 잘 있다’는 메시지를 준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그렇지만 어떻게 그렇게 체념하고 돌아설 수 있을까. 단지 말뿐임을, 그래야 단 하루라도 숨쉬고 살아갈 수 있음을 박씨도 알고, 하늘도 알고 있을 터.

그러나 알고보면 박씨의 체념은 한국이라는 ‘실종’에 무관심한 사회가 강제한 것이나 다름없다. “아이가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진 경험을 한번쯤은 가지고 있을 겁니다. 그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경찰이죠. 그런데 경찰이 해줄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어요. 시간이 조금 지나면 ‘미아처리’하는 게 전부라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실제 박씨도 “누군가 잘 데리고 있을 것”이라며 ‘미아처리’하려는 경찰과 무던히도 싸웠다.

그러나 미아로 처리되는 순간 정말 미아가 돼버린다. ‘미아’들은 일시보호소를 거쳐 대부분이 ‘시설’로 보내진다. 시설에서는 영광이처럼 어린 아이인 경우 새로운 이름과 주민번호가 주어지고 새로운 호적이 만들어진다. ‘박혜숙’의 아이가 아닌 다른 아이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시설들은 수급대상자(실종돼 들어온 아이) 숫자가 많아야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더 받을 수 있죠. 애써 누군가 버린 아이려니 단정하고 되돌려 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직접 가서 확인할 수도 없습니다.” 박씨는 부산시내 시설들을 모두 찾아갔지만 번번이 ‘보여줄 수 없다’는 대답에 눈물을 머금고 돌아서야 했다.

박씨는 “이런 억장 무너지는 사실을 알면 국민의 세금으로 유지되는 국가가 그 돈으로 오히려 실종을 부추기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라고 말했다.

이런 꽉 막힌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그래서 실종자 가족들과 함께 내아이 찾기와 지키기에 나섰다. 현재 전국실종아동인권찾기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박씨는 청와대, 보건복지부, 행자부, 외교통상부, 교육부, 경찰청 등 조금이라도 실종아동과 관련이 있는 부처를 찾아가지 않은 곳이 없다. 그러나 국민세금으로 봉사한다는 그들을 만나기는 왜 그리 어려운지. 게다가 장관과 경찰청장은 왜 그리 자주 바뀌는지.

그나마 지난해말 실종아동관련법이 발효돼 약간의 위안을 얻었다. 수년간 실종자 부모들의 살을 떼내는 듯한 고통과 불면의 밤이 이뤄낸 조그마한 승리이다.

“당시 부천초등생과 포천여중생 사건이 터지면서 사회적 관심이 집중돼 그나마 제정됐죠. 그것이 아니었다면 아직 하세월일지도 모릅니다.”

이 법으로 새로운 수급대상자들의 신상명세가 보건복지부에 보고되는 등 기초적인 관리는 가능하게 됐다. 하지만 여기에는 실종자 대부분을 차지하는 장애인과 정신지체아는 빠져 있다. 의료법의 적용을 받는다는 이유에서다. 이를 박씨는 정부가 실종을 바라보는 현주소라고 여기고 있다. 마지못해 떼밀려 만들었고 무엇보다 국민의 아픔과 고통을 덜어주려는 진정한 노력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만약 미국내 월마트에서 실종아이가 발생하면 모든 출입구가 한꺼번에 봉쇄되고 쇼핑과 계산이 중지됩니다. 그리고 전직원과 경찰이 아이를 찾습니다. 아이가 찾아져야 비로소 쇼핑과 계산, 출입이 가능해집니다.”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인데도 제나라 국민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시스템으로 보여주고 있어요. 툭 하면 한민족이라고 외치는 우리는 왜 그런 시스템을 갖추지 못하는지, 모든 고통을 개인이 감수해야 하는지.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과연 국가라는 존재는 무엇인지에 대한 반문을 하게 된다고 박씨는 털어놓는다.

박씨는 실종을 가볍게 바라보는 사회인식에도 일침을 가했다. 실종은 소리없이 서서히 공동체의 목을 죄는 악종 바이러스라고 말했다. 한 마디로 ‘파괴의 도미노’를 일으키는 시발점이라는 것이다. “실종 이후 가장 먼저 깨지는 게 부부관계입니다. 남편은 아내가 아이를 잘 거두지 못했다고 은근히 생각하죠. 그러면서 부부싸움이 잦게 되고 아내는 자책감에 시달리고 급기야 이혼에 이릅니다. 가정은 무너지고, 흩어진 가족들은 방황하고, 분노를 쌓아가고, 심지어 자살에 이르기도 합니다.”

실제 박씨도 “‘제발 이제 그만하자. 잊자’라는 남편과 무던히도 싸웠다”고 고백했다. 이런 이유로 실종자협회 회원들의 수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소리없이 사라지는 엄마 아빠가 많아졌고 심지어 자살한 사람도 적지 않다.

박씨는 가장 먼저 깨어나야 할 곳이 정부라고 말했다. 사이버대책반, 마약범죄대책반처럼 실종대책반을 정식 국가기구로 구성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현재 실종사건을 담당하는 경찰내 여성청소년과는 턱없이 부족한 인력과 전문성으로 실종사건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박씨는 마지막 희망을 2~3년 후로 잡고 있다. 그때가 되면 영광이가 초등학교에 가야 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초등학교 입학자 명단에 오르고 사진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때를 위해 그는 하루하루를 견뎌내고 있다.

“친구들이 그래요. 혜숙이 너는 마치 빚받으러 다니는 사람 같다고…. 딱딱하고 심각한 얼굴색을 보고 하는 말이겠죠. 그럼 이렇게 말해주죠. 돈은 못받으면 포기라도 할 수 있지만 찾지 못한 자식은 어떻게 포기하느냐고….”

어느날 사라진 영광이. 어머니는 3년을 참 용케도 견뎌냈다. 어머니를 버티게 한 힘은 무엇일까. 다시 영광이를 볼 수 있다는 희망, 주검을 보기 전에는 포기할 수 없는 지독한 모성, 그것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말이다. 이 슬픈 어머니에게 우리가 약간의 힘을 보탤 수는 없을까. 언제까지 이렇게 매몰차게 돌아서서 나몰라라 할 것인가. 그러면서도 우리가 우리의 삶이, 우리의 아들딸이 온전하기를 바랄 수 있을까. 그렇다면 너무 뻔뻔한 노릇은 아닐까.

〈배병문 여론독자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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