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웰다잉 전도사’로 제2의 인생 준비 원혜영 “정치권, 익숙함과 결별 못하고 계속하려는 욕심 보면 안쓰러워”

2020.05.17 21:08 입력 2020.05.17 21:10 수정

원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2일 서울 서소문로 웰다잉시민운동 사무실에서 20대 국회를 마지막으로 국회의원 생활을 접는 소회와 ‘웰다잉 자원봉사자’로서의 제2의 인생 계획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원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2일 서울 서소문로 웰다잉시민운동 사무실에서 20대 국회를 마지막으로 국회의원 생활을 접는 소회와 ‘웰다잉 자원봉사자’로서의 제2의 인생 계획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편한 것, 익숙한 것과 결별하지 못하고 계속하려는 욕심, 관성을 버리지 못하는 정치권이 안쓰럽다.”

원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69)은 “시원섭섭하다”는 말과 함께 정치권을 떠나는 소회를 이렇게 밝혔다. 28년간의 긴 정치여정의 마무리치고는 짧고 담담했다.

그는 정치인생에서 2012년 국회선진화법 제정에 앞장섰던 때를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지난해 패스트트랙 정국에서) 여야가 선진화법을 놓고 또 치고받고 하는 것”을 ‘가장 기억하기 싫은 장면’으로 꼽았다.

원 의원은 점점 사라지는 ‘일하는 국회’ ‘자유롭고 치열한 토론 문화’를 안타까워했다. 민주당이 21대 국회에서 거대여당이 된 것에 대해 “선진화법도 가볍게 타고 넘을 수 있는 ‘절대반지’를 갖게 됐지만 그만큼 ‘무한책임의 반지’도 끼게 된 것”이라고 ‘무한책임’을 강조했다.

지난해 12월 일찌감치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그는 “이제 ‘인생과 잘 결별하는 일’에 뛰어들려 한다”고 했다. 생을 마무리하는 사람들을 만나 ‘소설보다 재미있는 삶’의 이야기를 담는 ‘웰다잉 자원봉사자’로 나설 계획이다. 여의도 생활을 마무리하고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원 의원을 지난 12일 서울 서소문로 웰다잉시민운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 여의도를 떠나는 소회는.

“흔히 하는 말로 시원섭섭하다. 미련 없이 시원하기도 하고 아직 할 게 남아서인지 섭섭하기도 하다.”

- 주변에선 뭐라고 하나.

“마흔두 살부터 정치를 했다. 이제 일흔이 다 됐고 할 만큼 해서 그만두는 건데 이례적으로 보는 게 이상하다. 정치인들의 욕심, 관성은 습관과 타성의 문제 같다. 우리 사회에 은퇴의 문화가 없기 때문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정치를 하면 끝까지 해야 하는 외골수적인 문화가 많은 탓이다.”

국회선진화법 제정 인상적
‘패트’서 부정당해 안타까워
‘일하는 국회’ 노력도 부족

- 국회의원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개인적으로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성과가 국회선진화법을 만든 것이다. ‘몸싸움 없는 국회’ ‘대화와 타협으로 운영하는 국회’를 만들기 위해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방해)와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국회 활동하면서 가장 슬펐던 일이 20대 국회에서 정면으로 (선진화법이) 짓밟히는 걸 보게 된 것이다. 지난해 패스트트랙 정국에서 선진화법이 정면 부정당하는 걸 보고 안타까웠다.”

- 아쉬웠던 점은.

“여야 공히 ‘일하는 국회’의 모습이 부족하다. 국회라는 장은 의견을 모아내는 과정이 중요한데, 이 부분이 약한 것 같다. 토론과 이를 통한 타협의 문화가 부재한 게 문제다.”

- 공천 과정의 책임을 맡았는데 총선 결과를 어떻게 평가하나.

“촛불혁명과 코로나19 국난 극복이 여당의 승리로 나타난 것 같다. 선진화법도 가볍게 타고 넘을 수 있는 ‘절대반지’를 갖게 됐지만 그만큼 ‘무한책임의 반지’도 끼게 된 것이다. 절대적인 힘을 가지면 그 힘에 의존해 일방적으로 가려는 유혹에 쉽게 빠질 수 있다. 여당은 무한책임을 느껴야 한다. 야당도 이번 기회에 책임 있는 대안세력으로 거듭나야 한다.”

여성·청년 공천 확장 못해
기초단체부터라도 시작을
제도화 위해 모두 고민해야

- 공천 과정에서 ‘익숙한 것과의 결별’이 잘 이뤄지지 않았다는 평가도 나온다.

“개인적으로는 인위적인 물갈이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여성·청년 공천 목표를 이루지 못한 점은 인정한다. 안타까웠다. 정치권이 경쟁의 실질화·제도화를 위해 모두 고민해야 한다. 먼저 민주당에서라도 기초자치단체 의원 후보 공천에 여성·청년을 의무 할당하는 방안을 다음 지방선거에서부터 보여주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

[굿바이 여의도, 그리고 다시 시작합니다](1)‘웰다잉 전도사’로 제2의 인생 준비 원혜영 “정치권, 익숙함과 결별 못하고 계속하려는 욕심 보면 안쓰러워”

삶을 마감하는 사람들 만나
죽음 바라보는 시선 바꿀 것

- 정계 은퇴 이후 계획은.

“웰다잉 생활문화 확산을 위한 자원봉사에 나설 계획이다. 2026년 정도엔 전 인구의 20%, 1000만명 노인 시대에 진입한다. 웰다잉 강연이나 ‘유언’ 상담 등도 하고 생을 마감하기 전 사람들을 만나 그의 이야기를 담은 ‘생애보’ ‘조문보’를 쓰는 작업에 참여하고 싶다.”

- 생애보, 조문보란 무엇인가.

“우리나라 사람들은 장례식 하면 ‘육개장’밖에 생각 안 난다고 답한다. 육개장 먹는 장례식이 아니라 고인을 기억하는 장례식이 되도록 그를 기록하는 일이다. 생이 끝나기 전에 스스로 생애보와 조문보를 써두는 것이다. 일반인이라도 자신을 ‘대단한 사람도 아닌데 뭘’ 하지만, 소주 한 잔 들어가면 모두 ‘내 얘기 소설로 써도 모자라’라고 하지 않나. 소박하고 작은 이야기를 적어 그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다.”

- 유언 상담은 구체적으로 뭔가.

“미국은 전 국민의 56%가 유언장을 쓰는 문화가 있다. 우리나라는 0.5% 정도로 추정된다. 재산을 물려주는 문제뿐만 아니라 장례 방식이나 가족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 등을 적어놓는 것이다. 자신의 기록과 남기는 말을 적어놓는 ‘엔딩노트’도 있다.”

- 유언은 써놓으셨나.

“써놨다. 재산 얘기가 주로 적혀 있는데 (다른 부분도) 차차 추가해나갈 계획이다. 유언장 쓰고 공증하는 데만 50만원 정도 든다고 한다. 문턱을 낮춰서 보다 쉽게 유언장을 쓸 수 있도록 법·제도를 만드는 일에도 나서려 한다.”

- 21대 국회에 하고 싶은 말은.

“정치적인 유언인 건가?(웃음) 여야가 ‘법으로 정해진 회의’만이라도 꼭 열어야 한다. 국회를 여는 것마저 정쟁과 협상의 대상이 되어선 안 된다. 초선들에겐 ‘항상 깨어 있으라’고 말하고 싶다. 항상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시민들의 눈높이에 맞추려면 끊임없이 변하는 시대정신을 좇아가야 한다. 국회의원의 책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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