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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낙태죄 개정안에 여가부 ‘개선 의견’ 반영 안 됐다

2020.11.26 21:28 입력 2020.11.26 22:54 수정

‘성별영향평가 결과’ 법무부와 복지부에 통보했지만

반영 없이 국무회의 통과…국회, 연내 대안 입법 해야

여성가족부가 정부의 낙태죄 개정안에 대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개선이 필요하다”는 성별영향평가 결과를 법무부와 보건복지부에 통보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현재 정부 개정안은 여가부의 개선 의견이 거의 반영되지 않은 채 국무회의를 통과해 국회로 넘어간 상태다. 성별영향평가는 법령 등 정부 주요 정책을 수립·시행하는 과정에서 정책이 성별에 미칠 영향을 사전에 분석해 모두가 평등하게 정책의 수혜를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제도이지만, 사실상 구속력이 없다는 한계가 지적돼왔다.

26일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여가부에서 받은 ‘낙태죄 관련 입법예고안 성별영향평가서’를 보면 여가부는 법무부의 낙태죄 관련 형법과 복지부의 모자보건법 개정안에 대해 각각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해당 부처에 통보했다.

지난 10월7일 입법예고된 정부의 형법 개정안은 임신 14주까지는 여성 본인의 의사만으로 임신중단을 할 수 있지만, 15~24주 내엔 사회·경제적 사유인 경우 상담과 24시간 숙려기간을 거쳐야만 임신중단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여가부는 지난 16일 “개정안이 낙태의 허용 요건을 확대했으나 국제동향을 고려해 여성의 건강권과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고 임신한 여성의 신체적·사회적 보호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선이 필요하다”는 성별영향평가 결과를 법무부에 통보했다.

명시적으로 낙태죄 전면 폐지를 요구하진 않았지만, 낙태죄를 존치한 채 허용 요건만 확대한 개정안에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한 것이다.

여가부는 사회·경제적 사유에 따른 임신중단을 위해 상담 및 숙려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는 조항에 대해서도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약하지 않도록 운영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냈다. 이어 “청소년이나 성폭력 피해자 등 특정 취약계층에 대해서는 특수한 상황과 인권을 고려해 예외적인 보호 조치를 둘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법무부는 취약계층 보호 조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에 대해서만 ‘위법성 조각 사유와 양형 참작 사유 등을 고려해 정책을 시행하겠다’는 계획안을 보내왔고, 개정안은 별다른 수정 없이 지난 24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임신중단의 절차를 규정한 복지부의 모자보건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여가부는 지난 10월29일 “의사가 임신중단을 한 여성에게 피임 방법, 계획임신 등의 사항을 설명하도록 한 규정, 의사가 임신중단 진료를 거부할 수 있도록 한 규정은 임신중단을 다른 의료행위와 다르게 접근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여겨질 우려가 있다”는 성별영향평가 결과를 보냈다. 의료법에 이미 의료행위에 관한 설명 의무가 있는데, 다시 한번 설명의 의무를 명시하는 것은 임신중단을 다른 의료행위와 다르게 취급하는 것이란 뜻이다.

미성년자는 법정대리인의 동의와 상담사실확인서를 제출해야만 임신중단을 할 수 있도록 한 규정에 대해서는 “상담사실확인서 발급을 발급기관의 재량에 맡긴 점, 미성년자를 합리적 근거 없이 16세를 기준으로 구분하고 16세 미만이 법정대리인의 동의 없이 임신중단을 하기 위해서는 학대 등을 입증할 수 있는 공적자료를 제출하도록 한 규정은 안전한 임신중단 시기를 놓치게 할 우려가 있어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복지부는 상담사실확인서를 재량에 맡긴 점에 대해서만 성별영향평가 결과를 수용해 ‘지체 없이 발급하도록 한다’고 고친 후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국무회의에서 통과시켰다. 여가부 관계자는 “여가부에서 의견을 내면 부처에서 자율적으로 반영하는 식이라 강행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춘숙 의원은 “결과적으로 주요한 개선 요구 사항은 반영되지 않았다”며 “정부안이 여전히 여성들의 건강권과 자기결정권을 제한하고 있어 매우 유감”이라고 말했다. 이어 “공이 국회로 넘어온 만큼 심도 있게 논의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국회는 오는 12월31일까지 낙태죄 관련 대안 입법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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