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중국을 싫어해도 없어지지 않아…공간과 여지를 두는 외교적 상상력 필요” 김흥규 교수 인터뷰

2022.08.23 16:13 입력 2022.08.24 07:34 수정

30년 전 “극심한 냉전체제·남북대결 속에서 대북정책 옵션 확보”

향후 30년은 중국이 얼마나 비용을 치르게 할 국가인지 질문 던져야

공간과 여지를 두는 외교적 상상력 필요

김흥규 아주대학교 교수 겸 미중정책연구소 소장이 경향신문과 인터뷰에서 말하고 있다. . 우철훈 선임기자

김흥규 아주대학교 교수 겸 미중정책연구소 소장이 경향신문과 인터뷰에서 말하고 있다. . 우철훈 선임기자

6·25 전쟁에서 총칼을 겨눴던 한국과 중국이 정식 국교를 맺은 1992년 이후 30년간 양국 관계는 비약적 발전을 이뤄냈다. 그간 몇 차례의 중요한 변곡점을 맞닥뜨렸던 한·중 관계는 다시 새로운 전환점에 서 있다.

김흥규 아주대 교수·미중정책연구소 소장은 지난 19일 서울 중구 한 호텔에서 경향신문과 가진 한·중 수교 30주년 인터뷰에서 “지난 30년은 축복이었지만 앞으로 30년은 상당한 비용을 치를 수도 있다”면서 “중국이 얼마나 비용을 치르게 할 국가인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높아진 반중·혐중 감정과 관련해 “우리가 아무리 중국을 싫어해도 중국은 안 없어진다”면서 “싫든 좋든 천년만년 같이 살아야 하는 중국과의 외교에서 공간과 여지를 남겨두고 다양한 변수에 대응할 수 있는 적응력을 가져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국에게 중국이 ‘이사갈 수 없는 이웃 국가’라는 현실은 위기일까 기회일까. 김 소장은 한·중 수교가 갖는 의미와 양국 관계 변화, 한·중 갈등 요소와 해결책 등 다양한 현안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아래는 김 소장과의 일문일답.

- 30년 전 당시 정세를 고려할 때 한국 입장에서 한·중 수교가 갖는 의미는.

“당시 한국은 극심한 냉전 체제와 남북대결 속에서 한반도를 넘어선 외교·안보적 시야를 갖지 못한 채 전적으로 한·미동맹에만 의존해 북한을 상대하는 제한적 상황을 돌파하려 했다. 사회주의 국가 붕괴 과정에서 기회 공간이 열렸고, 노태우 대통령이 북방정책으로 그 공간을 잘 살렸다. 구소련과 수교(1990년 9월)에 이어 중국과 연달아 수교하고 사회주의 국가들과 접촉면을 넓히면서 대북 외교·안보 정책 옵션을 더 많이 확보할 수 있었다. 경제적 측면에선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되고 시장 경제로 전환되는 국제경제 질서 재편 과정에서 새 모멘텀을 찾아야 했는데 중국이라는 시장이 열린 셈이다. 30년 전엔 양국 수교가 경제적 측면보다는 통일정책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기대가 컸는데, 실제론 경제적 효용이 컸고, 대북 관련해서는 우리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결과를 낳았다.”

수교 이후 한·중 관계 변화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은 1992년 황장엽 노동당 비서 망명


고 황장엽 북한 노동당 비서(왼쪽)가 1997년 서울 공항에 도착해 만세를 부르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고 황장엽 북한 노동당 비서(왼쪽)가 1997년 서울 공항에 도착해 만세를 부르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 수교 이후 한·중 관계의 변화를 상징하는 사건을 꼽는다면.

“양국 관계는 몇 차례 변동을 겪었는데 첫 번째는 1997년 2월 황장엽 북한 노동당 비서가 중국 베이징에 있는 주중한국대사관을 거쳐 망명한 일이다. 중국이 북한 고위층 인사가 중국에서 한국으로 갈 수 있게 길을 열어준 것은 북한에 대한 고려보다 한국과의 관계를 더 중시하겠다는, 대단히 상징적 사건이었다. 두 번째는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인데, 금융위기 이후 중국은 적극적으로 미국과의 경쟁 체제로 전환했고, 이후 우리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라는 한·중 관계의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하게 됐다. 세 번째는 현재의 미·중 전략 경쟁 전면화다. 미국의 자유주의 패권 질서가 현저히 약화되고 다극화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한·중 관계가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됐다. 한·중 간 안정적 협력을 연결해 온 ‘미·중 전략적 협력 관계’라는 외연이 사라지고, 중국의 급속한 부상으로 인해 중간재를 수출하던 과거의 보완적 분업체계가 경쟁적 관계로 전환되고 있다.”

- 수교 20주년 때 쓴 논문에선 ‘경제 의존성·정체성으로 봤을 때 중장기적으로 한·중관계는 아주 긍정적’이라고 평가했었다.

“중기, 그러니까 2020년 전까지만 보면 맞는 말인데, 그 사이에 중국이 미국조차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급속도로 영향력을 키웠다. 중국이 이처럼 적극적인 세계 전략을 추진할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측 못했으니 장기적 관점에서는 맞지 않았다. 2008년 금융위기 때 미국이 무너지면서 중국이 엄청난 자신감을 갖기 시작했고, 적극적이며 정교한 전략을 짰다. 시진핑 (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2013년 제시한 일대일로(一帶一路: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연결하는 육상·해상 실크로드)는 중국 역사상 최초의 적극적인 대외전략인데 당시엔 과소평가했다. 우리도 그렇지만 미국이 중국의 부상을 안일하게 생각했고, 일대일로의 함의와 위험성, 국제 질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무시했던 것이 패착이다.”

- 현재의 불안한 한·중 관계를 온도로 표현한다면.

“온도가 다시 상승하기는 쉽지 않고, 현재 온도를 유지만 해도 성공적이다. 현재는 한·중 관계의 새로운 30년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다. 그나마 온기가 있었던 상황을 관리하는 데 실패하면 급전직하, 냉기로 전환할 수 있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 한·중 간 온도를 급냉시킬 수 있는 최대 악재는.

“미·중 갈등이다. 갈등에 편승해서 우리가 마치 미국의 선봉대 같은 행태를 보인다면 중국의 반감은 매우 클 것이다. 중국이 모든 운명을 걸고 미·중 전략경쟁에 뛰어들었는데,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이 붙어 있고, 경제발전에서도 중국의 혜택을 가장 많이 본 우리가 앞장선다면 화풀이 대상이 될 수도 있다.”

김흥규 교수는 “미·중 전략적 경쟁 속에서 한국 외교가 공간과 여지를 두는 외교적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흥규 교수는 “미·중 전략적 경쟁 속에서 한국 외교가 공간과 여지를 두는 외교적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그런 점에서 수교 이후 한·중 외교에서 가장 큰 패착은 사드 배치라고 보나.

“한·중 관계로만 봤을 때는 그렇다. 중국이 북한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가 높은 상황에서 2016년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 직후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전화를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받지 않았다. 이전까지는 사드를 고려하지 않는다, 들은 바도 고려한 바도 없다고 얘기하던 한국은 사드 배치로 급격히 방향 전환해버렸다. 미·중이 전략적 경쟁 관계로 전환하는 지점에 한국이 미국의 대중 억제 정책 최전선에 선다는 선언을 한 셈이다. 시 주석이 권력 정당성과 결부해 접근했던 사안이었기 때문에 체면이 크게 손상됐고, 오늘날까지도 시 주석이 직접 풀지 않으면 중국의 어떤 관리도 사드와 관련한 합리적 정책 제안을 할 수 없는 상황으로 빠졌다.”

지난 2017년 9월 사드  잔여 발사대 4기가 경북 성주 사드기지에 반입된 뒤 설치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지난 2017년 9월 사드 잔여 발사대 4기가 경북 성주 사드기지에 반입된 뒤 설치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 사드 문제를 어떻게 하면 우리에게 유리하게 끌어올 수 있나.

“사실 사드는 우리의 주권적 결정이 아니다 한·미동맹에 의해 미국이 결정한 것이고 지금도 2023년까지 미국의 인도·태평양 사령부의 미사일 방어체계하고 한국의 사드 체계를 연동시키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사드는 한국이 중국을 적대시하는 정책이 아니고, 미·중이 소통할 문제로 이해시키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우리로서는 사드를 이슈화 시키지 않는게 유리하다.”

- 한·중관계가 급냉될 수 있는 불씨는 사드 외에도 대만 문제 등 여러 가지가 있다.

“다른 문제도 마찬가지지만 대만 문제도 미·중 전략경쟁의 기치를 우리 스스로 들어서는 안 된다. 대만 문제는 미·중이 해결해야 할 사안이고, 우리는 다른 주요 중견국들과 함께, 엄밀한 의미에서는 한 발짝 살짝 뒤에서 그들의 스탠스(입장)를 따라가는 외교가 가장 적은 비용을 들이면서도 국격을 손상시키지 않는 외교다.”

미·중 전략경쟁의 기치를 들기보다는 중견국들과 함께 대처해야

- 중국 전문가가 부족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도 적다.

“4강(미·일·중·러) 외교가 중요하다고 하는데 대사들 면면을 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우리의 메시지를 당사국에 전하는 것보다 강대국 내부의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고 본국에 빨리 전달해 전략을 수립할 수 있게 하는 고도의 전문가적 능력과 전략적 안목을 가진 최고의 인재가 필요하다.”

- 중국의 북한 문제 역할에 대한 기대수준을 낮춰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어디까지 낮춰야 하나.

“중국은 한반도 안정을 원하고, 북한의 군사적 도발은 원치 않는다. 이는 우리와 같다. 중국은 유엔 체제를 국제 질서의 핵심으로 존중하기 때문에 유엔 결정 사항을 먼저 깨지는 않을 것이다. 중국이 유엔 대북 제재를 먼저 파기할 생각은 없다는 점에서 우리와 이해가 맞는다. 그러나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거나 개혁개방을 하는 것은 북한의 주권적 결정 사항으로 중국도 어쩔 수 없다. 더구나 북한이 핵을 가진 상황에서는 중국의 말을 듣지 않는다. 그간 우리는 중국이 북한에 핵을 포기하거나 혹은 핵실험을 못 하도록 저지할 수 있다는 기대치를 갖고 접근해왔는데 그런 기대는 버려야 한다.”

우리가 아무리 싫어해도 중국은 없어지지 않는다. 상생할 수 있는 전략적 소통과 비전을 공유해야 한다.

- 중국을 ‘이사 갈 수 없는 이웃국’으로 뒀다는 것은 우리에게 위기인가, 기회인가.

“지난 30년은 엄청난 기회였다. 세계 최대 시장을 가진 중국이 평균 10%대의 경제성장을 했고, 우리의 경제발전 단계와도 딱 맞아 떨어졌으니 우리에겐 신의 축복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앞으로의 30년은 덩치도, 자부심도 커져서 대단히 위협적 존재로 변한 중국이 우리에게 대단히 큰 굴욕을 줄 수 도, 또 상당한 비용을 치르게 할 수도 있다. 이전까지는 중국이 ‘우리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면, 지금은 중국이 얼마나 우리에게 비용을 많이 치르게 할 수 있는 국가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 미·중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가 가능했던 시기가 지나고 있는데, 우리의 외교 방향은 어떻게 해야 하나.

“그동안 한국이 ‘줄타기 외교’를 했다고 생각지 않는다. 보수든 진보든 한국의 모든 정부가 미국과의 동맹을 근간으로 하는 외교·안보·경제 정책을 해왔다. 현 구조 하에서 한·미동맹을 중심으로 외교·안보, 경제 정책이 진행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다극화로 전환하는 시기에 있어서는 그것이 맞느냐는 근본적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 중국과 어떤 관계를 설정해야 할 것인가, 미래 30년은 적대관계로 가야 할지, 협력 속에서 이익을 공유할지, 최소한 공존을 위한 토대를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우리가 아무리 싫어해도 중국은 없어지지 않는다. 해법이 쉽지 않겠지만 한국과 중국이 국제관계가 지닌 악마성을 이해한다면, 그 속에서 악마와 악마끼리는 서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상생할 수 있는 전략적 소통과 비전을 공유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다가오는 수많은 변수들을 어떻게 관리하면서 현재의 온기를 유지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새로운 기회가 왔을 때 태세를 전환할 수 있는 공간과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 중요하고, 외교적 상상력을 갖는게 필요하다. 수많은 악마들이 있는 국제정치라는 정글에서 여러 변수들에 대한 회복력과 대응력을 우리 외교가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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