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는 철거, ‘김동아’는 방치…서대문구청, 현수막 규제 ‘편파’ 논란

2024.05.28 14:55 입력 2024.05.28 18:41 수정

서울 서대문구청 맞은편 별관 앞에 28일 국민의힘의 ‘더불어민주당 김동아 당선인은 학교폭력 의혹 해명하고 책임져라’라는 내용이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다. 강한들 기자

서울 서대문구청 맞은편 별관 앞에 28일 국민의힘의 ‘더불어민주당 김동아 당선인은 학교폭력 의혹 해명하고 책임져라’라는 내용이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다. 강한들 기자

‘김건희를 수사하라’는 내용의 현수막을 강제 철거해 논란이 됐던 서울 서대문구청이 ‘산하기관의 직장 내 괴롭힘 문제를 구청장이 해결하라’는 현수막도 “비방을 조장한다“며 자진 철거하라고 요청했다. 반면 김동아 더불어민주당 서울 서대문갑 국회의원 당선자의 ‘학교폭력 의혹’ 관련 현수막은 그대로 뒀다. 구청이 입맛에 따라 관련 조례를 해석해 철거한다는 비판과 함께 현수막 내용을 규제하는 서울시 관련 조례 자체가 위헌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28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서대문구청은 진보당에 지난 27일 정당 현수막을 자진 철거해달라는 협조 요청 공문을 보냈다. 진보당은 지난 21일 ‘서대문구 도시관리공단 직장 내 갑질·괴롭힘 문제, 진짜 사장 구청장이 직접 해결하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걸었다.

서울 서대문구청 맞은편에 28일 진보당의 ‘서대문구 도시관리공단 직장 내 갑질·괴롭힘 문제 진짜 사장 구청장이 직접 해결하라’라는 내용이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다. 강한들 기자

서울 서대문구청 맞은편에 28일 진보당의 ‘서대문구 도시관리공단 직장 내 갑질·괴롭힘 문제 진짜 사장 구청장이 직접 해결하라’라는 내용이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다. 강한들 기자

공문을 보면 서대문구청은 “‘직장 내 갑질·괴롭힘 문제’가 실제로 발생했는지 여부가 명백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진실로 발생한 것처럼 전제하고, 구청장을 ‘진짜 사장’이라고 빗대서 표현해 책임 소재가 구청장에게 있는 것처럼 단정해 구청장을 비방했다고 볼 수 있다”며 철거 요청 이유를 설명했다.

서대문구청이 철거의 법적 근거로 든 규정은 지난해 12월부터 시행된 ‘서울시 옥외광고물 등의 관리와 옥외광고 산업진흥에 관한 조례’다. 해당 조례에는 ‘특정인의 실명을 표시해 비방하거나 모욕해서는 안 된다’ ‘혐오, 비방, 모욕, 인종차별, 불법을 조장하는 내용이 없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서대문구청은 국민의힘이 지난 16일 내건 ‘더불어민주당 김동아 당선인은 학교폭력 의혹 해명하고 책임져라’라는 내용의 현수막에 대해서는 자진 철거 요청 공문을 보내지 않았다. 그러다가 민원이 들어오고 나서야 공문을 보내 철거를 요청했다.

황호완 서대문공동체라디오 제작본부장이 구청 측에 이유를 물었다. 황 본부장은 “구청 측에서 ‘단순 실수’로 국민의힘에 철거 요청 공문을 보내지 않았다고 말했다”며 “서대문구청장이 공정하게 정책을 집행하는 것 같지는 않아 우려된다”고 말했다.

지난 1월 서대문구 북가좌동에 진보당이 건 ‘김건희를 수사하라’ 현수막이 걸려 있다. 진보당 제공

지난 1월 서대문구 북가좌동에 진보당이 건 ‘김건희를 수사하라’ 현수막이 걸려 있다. 진보당 제공

서대문구청의 엇갈린 강제 철거 요청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서대문구청은 지난 1월 진보당의 ‘김건희를 수사하라’는 내용의 현수막을 강제철거했다가 논란이 됐다. 지난 2월 ‘국정농단 김기춘, 댓글공작 김관진 국민이 심판한 국정농단 풀어주는 윤석열 대통령도 공범이다’라는 현수막도 강제 철거했다. 윤 대통령이 댓글 공작 등 혐의로 유죄가 확정됐던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 등으로 유죄가 확정됐던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사면한 것을 비판하는 현수막이지만 시 조례를 어기고 ‘실명’을 거론했다는 이유로 철거했다. 김연희 진보당 서대문구위원회 부위원장은 “당시 구청은 ‘직책을 걸고 비판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주장했지만, 이번 ‘진짜 사장 구청장’ 현수막에는 실명이 없는데도 왜 자진 철거 요청을 한 건지 의아하다”고 말했다.

진보당은 지난 1월 17일 현수막 강제철거 취소 소송을 냈다. 시 조례가 상위법인 현행 옥외광고물법에서 위임하지 않은 ‘내용 규제’를 담고 있어 법치주의에 위배되고 헌법상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약한다는 이유를 댔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미디어언론위원회 소속 이강혁 법무법인 H&K 변호사는 “소수자에 대한 혐오 표현은 따져볼 여지가 있지만, 비판 대상으로서의 자유가 특별히 강조·보장돼야 할 공인에 대한 비방 모욕 등까지 무조건 금지하는 것은 위헌적”이라며 “상위 법률인 옥외광고물법도 표현 방법에 대한 규제만 정해놨는데도, 법률적 근거 없이 내용까지 규제하는 서울시 조례는 명백한 위법”이라고 말했다.

서울 서대문구청 맞은편에 28일 국민의힘의 ‘더불어민주당 김동아 당선인은 학교폭력 의혹 해명하고 책임져라’ 현수막과 진보당의 ‘서대문구도시관리공단 직장 내 갑질·괴롭힘 문제, 진짜 사장 구청장이 직접 해결하라’ 현수막이 걸려있다. 강한들 기자

서울 서대문구청 맞은편에 28일 국민의힘의 ‘더불어민주당 김동아 당선인은 학교폭력 의혹 해명하고 책임져라’ 현수막과 진보당의 ‘서대문구도시관리공단 직장 내 갑질·괴롭힘 문제, 진짜 사장 구청장이 직접 해결하라’ 현수막이 걸려있다. 강한들 기자

서대문구청 관계자는 “(진보당이 건 ‘직장 내 괴롭힘’ 현수막에 대해) 법률 자문을 받은 결과 ‘구청장을 비방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검토 결과를 받았다”며 “(국민의힘 현수막은) 특별히 민원이 접수되거나 하지 않아서 공문을 보내지 않았다가 지난 27일 전화를 받은 뒤 철거 요청 공문을 보냈다”고 말했다.

이성헌 구청장 당적은 국민의힘이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