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 마우…’ 가슴친 두번째 이산

2000.12.01 19:16

-김영우씨 가족 동행취재 셋째날-

“역시 핏줄은 못속이는가 봅니다. 멀리서 보는 순간 50년간 한번도 뵙지 못했는데도 바로 ‘아버지구나’ 했어요”

1일 제2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 둘째날을 맞은 영우씨는 개별상봉에서 아버지 김중현씨(69)가 “북에서 가져왔다”며 들쭉술을 건네자 조심스럽게 잔을 받았다.

“술은 아버지나 어른에게 배우라고 했는데 이제야…”. 부자지간에 처음으로 나누는 50년 세월을 담은 술잔. 아버지 김씨가 먼저 실타래 풀듯 살아온 지나날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어머니 유순이 할머니(71) 이름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유예순인 줄 알았다”며 농담을 건넨 아버지는 조금은 민망한 표정으로 “함경남도에 살고있는데 2남3녀를 두었다”고 북쪽 가족의 소식을 전했다.

막내딸은 간호원이고 나머지는 모두 교사로 지내고 있다며 사진을 보이자 영우씨 입가에 뜻모를 미소가 번졌다. 어머니를 빼고는 혈혈단신인 줄 알았는데 하루 아침에 아버지에다 동생이 다섯명이나 생겼다니, 내 혈육이 또 있다니. “혹시 북한에 작은어머니가 생겼으면 어쩌지요” 하고 물었을 때 “여적까지 결혼안했을 거라고는 생각 안혀. 내가 멍청한 거지. 남자가 수절하면 더 불쌍허잖여” 하면서도 내심은 기대했던 어머니….

50년 수절한 아내에게 미안했던지 아버지가 술을 건네자 어머니는 단숨에 잔을 비웠다. “와 이래 술을 잘하네”하는 소리에 어머니는 신혼 첫날 바쳤던 것처럼 온마음을 다해 술을 올렸다. 6개월된 새색시를 두고 의용군으로 가면서도 아버지는 “친정에 가 있어. 꼭 데리러 갈게” 했지만 어머니는 차마 떠나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죽어도 따라가겠다”며 방안에서 흐느껴 울었다는 얘기도 아들은 이날 처음 알았다.

“당신이 떠나고 어머니가 몸져 누우셨지요. 아버님은 고향에서 농사를 짓다 20년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당신을 만나기 전에 청주 선산에 내려가 제사올리고 왔습니다. 함께 가보면 좋으련만”

아들 영우씨가 말을 이었다. “그래도 할아버지는 행복하셨습니다. 할머니 돌아가시고 새 할머니를 세번씩이나 들이셨습니다”.

그러나 우스갯소리에도 아버지의 얼굴은 아내의 50년 세월을 거슬러가느라 펴지지 않았다. 스무살에 혼자된 며느리가 두살 터울의 시어머니를 3명씩이나 모셔야 했을 때 그 속은 얼마나 탔을까. “당신의 고운 마음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구료. 고생 많았지. 고생 안했을 턱이 있나. 애들 데리고 이때까지 살아왔는데…”

하고픈 말은 많아도 차마 입이 열리지 않고 입술을 깨물어도 끝내 흘러내리는 눈물. 다시 헤어져야 할 시간이 하루 앞으로 다가오면서 이들은 되레 말을 잊어갔다. 서로의 체온을 조금이라도 더 느끼느라 손을 부여잡고, 이제는 다시 그 모습을 잊지 않기 위해 바라보느라. 유할머니는 “조금이나마 같이 살 수 있으면 그게 소원이지” 하고 입버릇처럼 말했지만 고개를 떨군 채 말없이 흐느꼈다.

“가지 마우. 3년만 있다고 온다고 해놓고 50년이 걸렸잖우. 여적까지 잘 살아왔지만 이젠 자신없수. 영우야, 아버지와 다시는 헤어지지 말아라. 아버지, 다시는 집 떠나지 못하게 해다오”

그래도 헤어질 시간은 어김없이 다가왔다.

〈정유미기자 youm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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