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무용수 김용걸 “동양풍으로 파리점령”

2000.08.01 23:39

‘이젠 눈물을 흘려도 되겠지. 파리에서의 고통스러운 나날. 이제는 괜찮다. 따뜻한 눈물은 흘려도 되는거야’. 지난 달 5일 밤. 파리오페라발레단 정식단원에 뽑힌 김용걸(26)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센강변을 걷고 있었다. 같이 기뻐해 줄 사람이 없다는 게 안타까웠던 이국의 밤.

그날 김용걸은 3차에 걸쳐 진행된 파리오페라발레단 정식단원 오디션에서 50명의 후보를 물리치고 1등으로 정식단원이 됐다. 남몰래 흐르는 눈물을 훔쳐내며 홀로 기쁨을 맛보아야 했던 김용걸. 역사 339년의 세계최초 직업발레단에서 동양인 남성무용수로는 최초의 영광인 만큼 감격은 더했다.

“공연장 뒷벽에 최종 오디션 통과 10위까지의 명단이 붙어있었어요. ‘프리미에르(1등) 용걸 킴’이라는 글자를 보는 순간 온 몸에 소름이 돋았죠. 저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어요”

지난 2월14일 파리오페라발레단 수습단원으로 첫 출근한 후 정식단원이 되기까지 다섯달 동안의 담금질은 일생 가장 긴 터널이었다.

그의 파리입성은 서울에서도 뉴스였다. 외국유학은 커녕 한국에서만 발레를 익힌 김영걸의 성공은 국내 무용계의 화제였다.

“오디션 응시제한연령이 26세였는데 제가 올해 만 26세잖아요. 오디션에서 저 혼자만 정식단원이 되었어요. 좋은 결과를 안고 돌아와 기쁩니다”

김용걸은 국립발레단의 신작 현대발레 ‘로미오와 줄리엣’(9월)에 로미오로 출연하기 위해 일시 귀국했다. 파리오페라발레단에 입단하기전까지 자신의 터전이었던 국립발레단에 돌아와 파트너 김지영과 마음껏 기량을 펼친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애절한 사랑을 현대적인 움직임으로 풀어가는데 “처음 해보는 현대발레여서 기대가 크다”고 했다.

실상 이제부터 시작이다. 수습단원일 때는 ‘레이몬다’와 ‘신데렐라’ 군무에 출연했을 뿐이다. 한국에선 자신이 주인공으로 출연했던 작품이었는데 파리에선 줄반장은커녕 줄 맨뒤에 서서 작품의 뒷배경처럼 서있어야 하는 신세. “군무라도 쉽지 않아요. 그나마 군무중 한명이 아프기라도 해야 저에게 그 역이 주어졌죠. 아침 10시부터 밤 8시까지 강훈련을 했어요”.

그러나 고된 연습보다 더욱 괴로운 건 자꾸 떠오르는 한국무대였다. 발레스타로 대접받다 대기무용수로 강등된 현실이 그를 괴롭혔다.

“파리오페라 발레단의 단원 120명이 모두 저를 성원했습니다. 제가 재작년 파리국제발레콩쿠르 듀엣 1등상을 받았던 무용수임을 기억하고 힘들어하는 저를 격려해주었어요”

그동안 김용걸은 많이 배웠다. 그의 특기인 빠른 회전과 공중점프외에 알레그로(빠른 동작)도 자신있다고 했다. 체중은 반년동안 4㎏이 줄었다. 그래도 키 180㎝, 몸무게 66㎏의 근육질 체격은 발레리노로서 최적의 조건.

“체력적인 열세는 느끼지 못했습니다. 우리 무용수들의 테크닉과 체력은 서양인들 못지 않아요. 다만 차이는 무용수들을 위한 지원시스템에 있어요”

우리처럼 한명의 분장사가 50명이나 되는 출연진을 모두 분장해주는 사례는 없다는 것. 무용수 한명마다 1~2명의 분장·의상·신발 담당자 등이 배치되는 그들의 문화의식이 부럽다고 했다.

“7등급 단원에서 최고무용수인 에트왈르(1등급)까지 올라가는데 평균 10년이 걸리죠. 저는 정년인 40세까지 파리오페라발레단에서 활동하고 싶습니다. 외모때문에 무대에서 튀는 편인데 오히려 그점을 부각시켜 특유의 동양풍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요. 그후에는 유럽에서 안무수업을 받을 계획이죠”

월급은 1만5천프랑(약 2백40만원)선. 그는 9월3일 공연을 끝내고 4일 파리로 돌아가 ‘레이몬다’에 출연한다.

〈유인화기자 rhe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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