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앙코르와트

2003.02.02 18:36

자존심이란 남에게 굽히지 않고 자기 몸이나 품위를 스스로 높이는 마음을 뜻한다. 개인의 경우 이런 마음은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나름대로 꿋꿋하게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하다 하겠다. 그러나 자존심이 갈등이나 싸움의 원인이 되는 경우도 많다. 남의 자존심을 인정하지 않거나, 일부러 무시하는 탓이다.

자존심이 자만(自慢)으로 빠지기 쉬운 것도 문제다. 이 때문에 자존심을 장려하는 명언 못지않게 경계해야 한다는 경구도 많다. “자존심 없는 사람처럼 비굴하고 가엾은 사람은 없다” “자존심이란 결코 배타가 아니다. 또 교만도 아니다. 다만 자기 확립이다” “자존심은 어리석은 자가 가지고 다니는 물건이다” 등의 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자존심은 개인뿐 아니라 집단 차원에도 있다. 국민, 민족, 국가도 마찬가지다. 이은상 선생은 “나 자신의 힘으로 살아간다는 강력한 신념, 그것이 곧 자존심이다. 위대한 개인과 위대한 민족이 필경 다른 것이 아니다. 오직 자존심 하나로 결정되는 것이다”라고 갈파했다. 그러나 집단의 자존심은 자칫하면 강하면서 부정적 폭발력으로 나타나기 쉽다. 게다가 감정까지 작용하면 엄청난 파괴력을 발휘한다.

태국의 한 여배우가 “캄보디아는 앙코르 와트를 태국에 반환해야 한다”고 말했다는 보도가 양국간 외교보복 사태로 번진 모양이다. 앙코르 와트를 ‘국가의 자존심’으로 여기는 캄보디아 국민이 격분해 태국대사관을 점거한 데서 비롯됐다 한다. 이번 사태의 배경에는 양국간 역사적 ‘원한’ 관계도 깔려 있는 듯하다. 7~15세기 앙코르 지역에는 동남아 전체를 지배한 크메르 왕국이 앙코르 와트를 세우고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으나 태국왕국에 정복당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캄보디아는 그동안 외세 침략과 내전을 겪으면서도 줄곧 크메르왕국의 부활을 꿈꿔왔고, 앙코르 와트가 그 꿈의 상징이고 보면 캄보디아 국민의 마음도 이해할 만하다. ‘우리 민족의 앙코르 와트’는 뭘까.

〈노응근 논설위원 han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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