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쪽짜리 셰익스피어는 가라”

2003.04.01 19:03

“우리는 정말 셰익스피어를 제대로 아는가. 셰익스피어와 우리시대가 소통할 수 있는 접점은 무엇인가”

53년 전통 국립극단의 첫 예술감독 김철리씨(50)가 셰익스피어의 잔혹극 ‘타이터스 앤드러니커스’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무대(18~25일)에 올린다. 지난해 2월 예술감독으로 취임한 그가 국립극단에서 처음 연출하는 작품이자 평소 꼭 무대화하겠노라고 벼르던 연극. 인적·물적으로 비교적 안정된 국립극단이 아니면 다시는 이런 대작을 만들 수 없을 것 같다는 절박감도 작용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김감독이 연극인으로서 10여년째 본격적으로 매달려온 화두다. 역사상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문학·연극·무용 등 다양한 예술분야의 고전 텍스트로 활용되는 셰익스피어. 하지만 정작 그의 작품을 우리가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다는 고민에서 출발했다.

“지금까지의 (국내) 셰익스피어 극은 크게 두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번째는 원본에 기반해 문학성에만 치중한 작품. 두번째는 연극성을 살리는 것을 목적으로 과감한 첨삭과 해체, 편집을 가한 실험적 작품. 전자는 다소 보수적인 느낌이 들고 후자는 파격적이고 혁신적이라 할 수 있죠”

하지만 이게 전부일까. 김감독은 이러한 이원적인 작품 경향에 한계를 느끼며 탐구를 시작했다.

희극·비극·사극 등 총 37편에 이르는 셰익스피어 극 중 ‘타이터스 앤드러니커스’를 고른 이유는 “문학성이 살아 있으면서 다른 작품에 비해 전개가 빠르고 언어에 힘이 넘치며 액션이 많은 등 연극적 요소가 강하기 때문”이다. 또 “극 속의 잔혹한 현실은, 우리가 직접 겪고 있지는 않지만 이라크 전쟁 등의 형태로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점에서 시대 보편성을 갖기 때문이기도 하다.

로마시대의 퇴폐적인 궁정생활이 배경인 연극은 용맹스런 타이터스 앤드러니커스 장군을 중심으로 살인, 강간, 수족 절단, 고문, 식인(食人) 등 모든 악행이 난무하는 잔혹 복수극이다. 셰익스피어의 초기 작품이자 유일한 잔혹극으로 ‘리어왕’ ‘오델로’의 기초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잔인무도한 이야기가 활개를 쳤던 영국 엘리자베스 시대에 하늘을 치솟을 듯한 인기를 누렸지만 시대와 유행이 변하면서 오랫동안 공연이 기피되기도 했다.

셰익스피어 본고장인 영국에서는 1950년대 이후 전설적인 연출가 피터 브룩 등에 의해 그 가치가 재발견돼 무대에 올려졌고 국내에서는 지난 2000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출신들이 모여 처음 무대화한 바 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지루해지기 쉬운 것이 고전입니다. 보통 조명, 음악, 무대, 의상 등을 화려하게 사용해 단조로움을 탈피하려 하죠. 하지만 저는 기본으로 돌아가 전적으로 배우들의 움직임에 의존하려 합니다. 배우들이 가만히 서 있는 ‘스틸사진’의 느낌이 아니라 대사와 상황에 맞게 끊임없이 움직이는 ‘활동사진’ 느낌으로”

신문방송학과 3학년 재학시절 교양으로 들은 극작수업에서 우연히 이근삼 교수의 눈에 들어 연극계에 발을 들여놓은 김감독은 올해로 연극인생 28년째를 맞았다. 그동안 배우, 연출가, 번역가로 활발히 작업하며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해 왔고 국립극단에 들어온 이후로는 보수적·폐쇄적이라는 지적을 받아온 국립극단 개혁에 앞장서고 있다. 그의 일생의 목표는 ‘김철리 다운’ 연극을 완성하는 것.

“행운과 노력이 겹치면 언젠가 그렇게 되겠죠. 이번 작품도 그러한 노력의 일환입니다”

〈이상주기자 sjlee@kyunghyang.com〉

추천기사

기사 읽으면 전시회 초대권을 드려요!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