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기자가 전하는 ‘노대통령 호남발언’ 의 전말

2003.10.01 10:18

안녕하십니까. 경향신문에서 청와대를 출입하고 있는 정치부 박래용기자입니다.

저는 노무현대통령의 ‘호남 표심 창 싫어 나 찍었다’ 는 제하의 기사를 맨 먼저 쓴 기자입니다. 지난 9월 25일자입니다. 이 기사는 다음날 일부 언론에서 인용보도(언론계에서는 이를 ‘타사 기사를 받는다’ 고 표현합니다) 하면서 살이 붙거나 재가공됐습니다.

이 문제를 둘러싼 모든 논란의 불씨를 최초로 제공한 당사자인 셈입니다.

기사가 보도된 이후 인터넷을 중심으로 노대통령의 ‘호남 비하 발언’ 여부를 놓고 심각한 논란이 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주말을 지나며 온라인상의 불꽃 논란을 보고 걱정의 말씀을 주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일요일 출근해서 곧바로 글을 띄우려 했으나 당일 업무가 적지 않아 뒤늦게 기사의 취재 경위 및 진실을 밝힙니다. 좀더 일찍 해명을 하지 못한 점, 죄송합니다.

모쪼록 제 글이 잘못된 팩트를 근거로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소모적 논쟁을 종식시키는데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먼저 취재경위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노대통령과 광주·전남지역 언론 회견은 지난 9월 17일에 열렸습니다. 오전에는 합동 인터뷰가 있었고, 점심에는 편집·보도국장들과 오찬 간담회가 있었습니다. 오전 합동회견 내용은 녹취록으로 정리돼서 오후에 나왔습니다. 다변인 노대통령은 이날 회견에서도 많은 말을 쏟아내 질의·응답의 전문은 원고지로 157매 분량이었습니다.

기억하시겠지만 이날 노대통령 발언의 핵심은 “기존의 낡은 질서가 와해되고 새로운 정치질서로 변화해가는 과정으로 본다” “현재 민주당은 개혁을 찬성하는 사람과 찬성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갈라지는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노대통령의 이 발언은 민주당 분당과 신당 태동에 대해 처음 언급한 것이어서 각 언론에서는 모두 이를 비중있게 다뤘죠.

점심때 오찬간담회서 오간 대화는 비공식 일정이어서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청와대측은 “별 내용없었다”고만 했고, 150매가 넘는 방대한 양의 오전 발언에 질린 기자들은 “더 하려 해도 보탤게 없겠다”는 심정으로 넘어갔습니다.

다음날(18일) 사고가 터졌습니다. 광주의 모방송국 보도국장이 이날 오찬간담회를 정리한 내용을 사내용으로 띄워놓은게 내부 실수로 자사 인터넷 홈페이지에 게재됐고, ‘오마이뉴스’ 등에서 인용보도된 것입니다.

그 내용은 노대통령이 지난 대선 당시 후보 단일화 파트너였던 정몽준의원에 대해 “다시 만날 수는 있겠지만 동업할 일은 없을 것” “(정동영의원은) 참으로 고마운 사람으로, 경쟁자의 위치에서 나를 돕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는 것 등이었습니다.

이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뒤늦게 안 것이지만 당일 오찬간담회서는 대통령과 국장들 사이 편안한 분위기속에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고, 대변인은 참석자들에게 ‘오프 더 레코드(비보도)’ 를 요청했다고 합니다. 이때도 청와대측에서는 ‘다른 내용은 더이상 없느냐’ 는 질문에 “이제 정말 없다” 고 했습니다.

그 며칠뒤(24일)에는 정치뉴스사이트인 `e 윈컴`에서 문제의 기사의 단서가 된 내용이 떴습니다. 민주당 김경재의원이 ‘e 윈컴’ 과의 인터뷰를 통해 밝힌 내용입니다.

“(노대통령이) 엊그제 전남광주 언론인과 간담회 끝나고 식사하면서 헤드테이블에 앉아서 밥을 먹었던 편집국장 말을 들었더니 노통이 ‘호남 사람들이 나를 위해서 찍었나요. 이회창이 보기 싫어서 이회창 안 찍으려고 나를 찍은 거지’ 이러시더라는 거예요. 경악해 밥을 못 먹었다는 거죠. 이것이 노통의 진심이 아닌가 생각하고, 그러니까 요새 저런 행태가 보여지지 않을까...”
저는 24일 오전 민주당을 나가는 동료기자가 이 기사를 먼저 보고 알려줘서 비로소 알게됐습니다. 이 내용을 처음 접했을 때 기자로서는 ‘노대통령이 자신에 대한 호남 지지를 이렇게 얘기할 수 있나’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게 사실이었습니다.

바로 확인취재에 들어갔습니다. 광주의 모 신문사에 전화를 걸어 교환에게 편집국장을 부탁했더니 공교롭게도 국장께서 직접 받았습니다. 저는 그 분과 일면식도 없습니다. 경향신문 청와대 출입하는 아무개라고 제 신분을 밝히고 김경재의원이 ‘e 윈컴’ 과 인터뷰에서 이런 내용을 말했는데 그게 사실인지 확인하고 싶다고 물었습니다.

그 분의 답변은 제 수첩에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그런 말을 들은 것 같다. 호남 민심이 안좋은 것에 대한 서운함 같은 것을 비추면서 한 얘긴데 듣기에 거북하게 느껴졌다. 95% 호남지지를 이런 식으로 평가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식 자리에서 한 것이었다면 크게 썼을 것이나, 밥먹는 자리에서 인포멀하게 한 얘기라 문제삼지않고 넘어갔다.”

저는 이어 그날 오찬 자리에 배석한 윤태영대변인에게 확인을 요청했습니다. 똑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윤대변인은 “수첩을 봐야 알겠다”면서 일단 전화를 끊은 뒤 잠시후 다시 전화를 걸어와 그 대목을 이렇게 불러줬습니다. 역시 제 수첩에 적힌 내용입니다.

“경선 때 저를 지지해준게 호남이 이회창을 이길 사람이 필요했다. 호남 사람들이 대 이회창 후보 경쟁력 기준으로 전략적 선택을 한 것이지, 결코 지역감정을 거론한 것은 아니다. 내가 얼마나 잘 나서 지지했겠느냐. 그런 뜻이다.”

윤대변인의 얘기는 노대통령의 발언과 자신의 해명이 섞여 있습니다. 요체는 그런 발언을 한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경향신문 9월25일자 ‘호남 표심 창 싫어 나 찍었다’ 는 기사는 이렇게 해서 기사화된 것입니다.

이제 제 얘기를 할 차례입니다. 김경재의원의 전언과 현장에 있었던 참석자들의 얘기를 종합하면 그런 말이 나온 것은 사실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이 기사는 ‘오보’ 라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당일 발언의 전후 흐름에서 보면 노대통령의 이 부분 발언은 거두절미된 채 특정 부분만 부각된 셈이 됐습니다. 노대통령은 이날 호남사람들에 대해 애정을 갖고 있으며,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호남에 대해 반드시 의리를 지키겠다고 했습니다.

결국 제가 쓴 기사는 한 부분만을 떼어서 살펴봄으로써 노대통령의 진의를 다른 의미로 전달한 셈입니다. 광의적으로 봤을 때 제 기사는 ‘오보’ 입니다. 고의적으로 그럴 의도가 전혀 없었지만 결과적으로 코끼리 다리 한짝만 보고 문제를 삼았다는 비판을 받아도 마땅합니다.

저는 뒤늦게나마 당시 현장에 있었던 여러 사람들의 메모, 기억들을 종합하는데 노력했습니다. 이를 토대로 당일 노대통령 발언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봤습니다 이로써 꼬리에 꼬리를 무는 소모적이고 불필요한 논란은 이제 종지부를 찍을 수 있기 바랍니다. 특히 일각에서 이를 끊임없이 쟁점화함으로써 호남의 민심을 악화시키고, 특정 목적하에 호남 민심을 악용하려는 의도마저 엿보이는 것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질문:“대통령께 서운한 심정을 갖고 있는 것이 보편적인 호남의 민심이다. 하지만 대통령께서도 호남에 대해 서운한 점이 있을 것 같은데 서운한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무등일보 편집국장)

▲노대통령:“민심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냐. 호남사람들은 노무현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이회창후보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경선 당시 한때 호남의 민심이 나와 정몽준 후보를 놓고 방황하지 않았느냐.
결국 내가 이회창후보를 이겨 호남의 소원을 풀어줬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어느 정도 빚을 갚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대통령을 만들어주었는데 어떻게 호남을 배신할 수 있겠는가. 내가 호남을 홀대하고 배신한다는데 기회가 된다면 광주 시내 한 복판에서 시민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호남출신이 아닌 정치인 가운데 나보다 더 호남을 이해하고 잘 아는 사람이 있으면 대보라고 배포있게 말하고 싶다. 그런 사람이 있어 대통령을 바꿔달라면 바꿔주겠다.”

〈박래용 기자/정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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