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11.0 다시 쓰는 시민 계약

‘사법평의회’로 대법원장 전횡 차단, 법관의 독립 보장해야

2018.02.02 06:00
이범준 사법전문기자

대법원장 제왕적 권한 축소

김영훈 서울고법 판사(오른쪽)가 지난해 3월25일 열린 국제인권법연구회 학술대회에서 법원 인사제도에 관한 판사 500여명의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설문 결과 판사의 71.6%는 대법원장이 제청하게 돼 있는 현행 대법관 임명절차를 수정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또 판사의 88.3%는 대법원장과 각급 법원장 등 사법행정권자의 정책에 반하는 의사표현을 했을 때 보직과 근무평정 등에 불이익을 받을 것을 우려했다. 이석우기자 foto0307@kyunghyang.com 이미지 크게 보기

김영훈 서울고법 판사(오른쪽)가 지난해 3월25일 열린 국제인권법연구회 학술대회에서 법원 인사제도에 관한 판사 500여명의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설문 결과 판사의 71.6%는 대법원장이 제청하게 돼 있는 현행 대법관 임명절차를 수정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또 판사의 88.3%는 대법원장과 각급 법원장 등 사법행정권자의 정책에 반하는 의사표현을 했을 때 보직과 근무평정 등에 불이익을 받을 것을 우려했다. 이석우기자 foto0307@kyunghyang.com

지난 70년 사법 역사에서 법관의 독립은 위기가 아닌 적이 없었다. 군사정부 시절에는 정치권력에 순종했고, 민주화 이후에는 대법원이 법관을 탄압했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는 “우리나라 판사들은 정치권력이 조금만 강해도 저항하지 못했고, 청와대가 간섭하지 않으면 사법왕국을 만들어 내부 통제를 벌였다”고 설명한다. 법관의 독립을 보장해줄 제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란 얘기다. 실제로 같은 사법제도를 쓰면서도 결과가 판이한 나라들이 흔하다. 그럼에도 나라마다 지나온 역사와 공동체의 의지에 걸맞은 시스템이 있을 수 있다.

법관의 독립을 논의하기 전에 우리나라 판사들의 특징을 이해해야 한다. 판사들은 외부의 평가에 그다지 귀 기울이지 않는다. 자기 재판에 대한 비판에는 민감해도 법관에 대한 평가에는 둔감하다. 고도의 전문 직역인 법관의 역할을 사회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같은 법조인인 검사나 변호사의 비판도 영향력이 크지 않은데, 그나마 이들의 평가는 밖에서 보기에 우호적인 면이 많다.

도면회 대전대 역사문화학과 교수는 서울대 국사학과 대학원생 시절이던 1992~1995년 대법원의 법원사 편찬에 참여했다. 도 교수는 “판사들은 자신들이 역사와 사회를 만든다는 자부심이 강하다. 하지만 역사적으로는 권력에 쉽게 순종해왔다”고 했다. 한홍구 교수는 2004~2007년 국가정보원 과거사진실규명위에서 사법부 부문을 담당했다. 한 교수는 “기관원이 판사들을 겁주는 방법이 별다른 게 없었다. 법원 수위에게 판사의 집주소를 물어보는 게 다였다. 판사들은 누군가 주소를 물었다는 얘기를 듣기만 해도 겁을 먹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치권력이 법관 개인들을 직접 협박하는 일은 사라졌다. 지금 벌어지는 법관 독립 침해는 대법원이 청와대와 교감하거나 대법원 스스로 벌이는 내부 통제다. 이러한 상황은 시민의 기본권을 훼손하고 궁극적으로 국가를 위태롭게 한다. 도면회 교수는 “사법권력은 당초 국왕권력과 하나였으나 시민혁명의 결과로 분리됐다. 정치권력을 통제하는 안전장치로 출발한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법권력이 부패하고 작동하지 않으면 시민들은 정치권력을 겨냥한 혁명으로 나아갔던 것이 역사적인 경험”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대법원장을 정점으로 하는 내부의 통제를 막으려면 대법원장의 대법관 제청권부터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헌법 제104조2항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를 없애자는 주장이다. 세계적으로 대법관을 뽑는 데 대법원장이 관여하는 곳은 한국이 유일하다. 우리나라 대법원장의 제왕적 권한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조항이다. 이 조항은 1973년 유신헌법에서 등장했다. 법관들을 장악하는 대법원장의 등장은 박정희 정권의 사법부 통제를 간단하게 만들었다. 대법원장 개인만 잡으면 됐기 때문이다.

대법관 제청권을 없애자는 주장에는 다른 이유도 있다. 우선 대법원이 동등한 합의체로 운영되지 못하고 대법원장이 독주한다는 것이다. 대법관들이 나를 발탁해준 대법원장에게 신세를 졌다는 생각에 심기를 살피기 때문이다. 미국·독일·일본 대법원장의 의견은 소수의견에 몰리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한국의 대법원장 의견만은 거의 100% 다수의견이 된다. 대법관들은 퇴임한 뒤에도 자신을 제청해준 대법원장이 주재하는 모임에만 나간다. 제청해준 대법원장과 1년을 일하고 후임 대법원장과 5년을 일해도 그렇다.

최고 법관인 대법관까지 고르는 헌법적인 권한은 대법원장이 판사들을 해마다 인사하는 것을 합리화한다는 이유도 있다. 우리나라 판사들은 2년마다 인사발령을 받아 법원을 옮기고 사무분담도 바꾼다. 독일을 비롯한 대부분의 선진국 법관들은 지역법관이다. 자신의 뜻에 반해 법원을 옮기지 않는다. 인사 자체가 법관 독립을 침해한다고 본다. 우리나라에는 인사이동에 더해 법관을 승진시키는 제도까지 있다. 판사들이 대법원과 행정처의 눈치를 보고 순응하는 이유다.

판사의 임명권자가 대법원장인 것을 바꿔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헌법 제104조3항 ‘대법원장과 대법관이 아닌 법관은 대법관회의의 동의를 얻어 대법원장이 임명한다’이다. 미국의 연방법원 판사는 대통령이 임명하는데 연방상원 동의를 거친다. 독일은 지방정부 법무장관과 재판관선출위원회가 함께 결정한다. 이들은 모두 지역법관이어서 임명 뒤에는 인사가 없다. 프랑스는 각급 법원장이 임명하며 재판관 분과위원회 동의를 받는다. 영국은 2005년 헌법 개정으로 만들어진 법관인사위원회가 주도한다. 일본에서는 내각이 임명하는데 최고재판소 재판관회의가 추천한 명부를 참조한다. 대법원장이 임명하는 곳은 찾아보기 어렵다.

새로운 판사 임명권자로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위원회는 유럽식 사법평의회를 제안했다. 이곳에서는 대법관 추천과 법관 임명 외에도 사법행정 전반을 맡게 된다. 이렇게 되면 대법원은 사법행정에서는 손을 떼고 재판에만 집중할 수 있다. 제왕적 대법원장의 존재가 낳는 각종 폐해를 없애자는 것이 자문위가 제시하는 궁극적인 목표다. 16명인 사법평의회 위원은 대통령이 2명, 국회가 8명을 뽑고, 판사들이 선출하는 법관대표가 6명이다. 판사들은 대체로 반대하는데, “정부와 국회의 영향이 커진다”는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법원도 국민의 민주적 통제는 거부할 수 없다는 반론이 나온다.

법관의 독립성을 강화하기 위해 10년인 판사의 임기를 없애자는 논의도 있다. 헌법 제105조에 따라 판사의 임기는 10년이다. 이때 연임을 받아야 11년째, 21년째에도 판사를 계속한다. 그동안은 연임 불가 대상자에게 행정처가 사전에 연락, 연임 신청을 자제하라고 권유했다. 대부분의 판사들은 수용했다. 자발적으로 퇴직한 모양새가 되어야 변호사로서도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요구를 거부하고 연임을 신청해 공개적으로 대법원의 판단을 문제 삼은 경우는 서기호 전 판사를 비롯해 극소수다. 미국의 연방법원 판사는 대부분 종신이며, 독일과 프랑스는 67세 정년만 있다. 일본이 임기 10년으로 우리와 비슷하다.

국회 개헌특위 자문위안은 임기를 폐지하고 정년만 두기로 했다. 자문위는 “법관 재임용 제도는 언제든 악용될 우려가 있다. ‘해임 사유’가 없는 법관이 대법원장에 의해 해임될 수 있다. 대법원장에 대한 법관의 심리적 예속을 심화시키는 요인이다. 법관의 임기를 삭제하고 정년만 남긴다. 이를 통해 평생 법관을 장려하고 전관비리를 막는다”고 했다. 다만 임기를 없애는 대신 법관도 징계 해임이 가능하게 했다. 현재는 정직이 가장 강한 징계다. 물론 법관은 대통령 등과 함께 탄핵 대상이다.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는 헌법 제103조에 대한 논의도 있다. ‘그 양심에 따라’라는 부분이 애매하다는 이유 때문이다. 특히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는 제19조의 양심과 혼동된다는 주장이 있다. 헌법학계는 103조의 양심은 직업상 양심이므로 19조의 양심과는 다르다고 설명한다. 일본 학계의 학설과 똑같다. 실제로 재판에 양심을 요구한 경우도 일본 헌법이 유일하다. ‘모든 재판관은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그 직권을 행하며, 이 헌법 및 법률에만 구속된다’는 제76조3항이다.

일본에서는 직업상 양심이라는 것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이 꾸준히 나온다. “양심이 올바른 것인지 가려낼 객관적인 기준은 법률에도, 사회도덕에도 없다. 그렇다면 주관적(개인의) 양심과 다른 객관적(직업상) 양심이 존재하는지 의문이다”라는 니시하라 히로시 전 와세다대 교수의 주장이 대표적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특별히 의미가 없는데 없애자”거나 “ ‘직업상 양심’으로 명확히 해주자”는 의견이 나온다. 국회 개헌특위 자문위안은 현행 조항을 그대로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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