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 떠나는 날-라이브 업데이트

임을 위한 행진곡 속 영면···“잘가요, 우리의 영웅”

2018.07.27 10:09 입력 2018.07.27 18:46 수정
정제혁 기자 이재덕 기자 최미랑 기자

[노회찬 떠나는 날-라이브 업데이트] 임을 위한 행진곡 속 영면···“잘가요, 우리의 영웅”

■[라이브 업데이트 마지막] 오후 5시- 추모객들 ‘노란 국화’ 헌화

유족과 장례위원들은 고인의 영정을 향해 잔을 올리고, 절을 했다. 이어 추모객들을 돌아보며 허리를 굽혀 감사 인사를 했다. 추모객들은 봉사단이 마련한 노란 국화를 한두송이씩 손에 들고 고인에게 헌화를 했다. 헌화를 하려는 추모객들의 줄이 길게 이어졌다.

[노회찬 떠나는 날-라이브 업데이트] 임을 위한 행진곡 속 영면···“잘가요, 우리의 영웅”

마석 주민 이은영씨(45)는 초등학교 5학년 딸과 2학년 아들과 함께 모란공원을 찾았다. 하얀 국화꽃 다발을 들고 있었다. “예전에 민주노동당 시절 당원이었어요. 예전에 한번 뵌적도 있고, 평소에도 그분이 하시는 일 응원하고 있었어요. 정의당원으로 가입해야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러기 전에 가셔서 너무도 죄송스러워요. 아이들에게는 좋은 분이라고 얘기해줬어요. 아이들도 지금은 잘 모르는 것 같지만, 크면 고인이 어떤분이셨는지, 그분 가시는 길에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겠죠”

■오후 4시 마석모란공원 - 임을 위한 행진곡 속에 ‘하관식’…“우리의 영웅, 잘 가십시오”

[노회찬 떠나는 날-라이브 업데이트] 임을 위한 행진곡 속 영면···“잘가요, 우리의 영웅”

고인의 영정과 유골이 마석모란공원에 도착했다. 고인의 위패와 영정 뒤로 상여가 따랐다. “너무 너무 죄송합니다~. 너무나 너무나 미안해요~. 우리의 동지들 고맙습니다~ 나의 못한 모든 것들도 동지들이 해주소서. 나는 비록 떠나지만 우리의 동지들이 잘 해 주소” 상여꾼 소리에 눈물을 흘리는 이도 있었다.

유골함을 안장하는 하관식이 진행됐다. 추모객들은 묘소 주변에 빼곡하게 둘러섰다. 추모객들은 상여꾼들의 북·징소리에 맞춰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조용히 노래를 부르던 사람들이 하나둘 주먹을 쥐고 위아래로 흔들기 시작했다.

[노회찬 떠나는 날-라이브 업데이트] 임을 위한 행진곡 속 영면···“잘가요, 우리의 영웅”

나경채 공동장례위원장은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작은 정당이나마 지키려면 이렇게 생을 갈아넣어야 하는지 생각하면 무섭기도합니다. 나 노회찬은 여기서 멈추지만 당은 당당히 나아가라고 이야기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아마도 노회찬 대표를 잃은 우리들은 좌충우돌할 것입니다. 노회찬이 없는데 어떻게 우리가 당당히 앞으로 나아갈수 있다는 말입니까. 다만 따뜻한 복지국가 만들자던 노회찬의 꿈은 우리 모두의 간절한 소망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 간절함에 책임 한조각씩 더 얹어서 갔으면 합니다. 노동자와 서민들도 사회가 이룬 성과를 평등하게 공유하기 위해서는 제대로된 진보정당 꼭 필요하다고 처음으로 말씀하신 사람. 정의감 넘치는 고등학생, 시대의 아픔에 민감했던 대학생, 불꽃으로 쇠붙이 이어붙이던 용접 노동자, 삼성 X파일 폭로로 의원직 잃고도 다시 그런 상황 온다면 똑같이 하겠다는 진정한 정치인. 우리들의 영웅 노회찬 대표님 잘가십시오”

■오후 3시50분 - 경기 남양주 마석모란공원에 놓인‘새 구두와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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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터를 떠난 유족들이 장지인 남양주 마석 모란공원에 도착하기 전. 모란공원에는 고인을 맞이할 준비가 한창이었다. 남양주 지역 시민단체들은 아침부터 나와 추모객들이 헌화할 국화꽃을 다듬고 있었다. 묘소 앞에는 고인의 사진과, 고인을 그린 판화, 그림 등이 놓였다. 옆에는 구두와 꽃, ‘존경하는 노회찬 의원님께’ 라고 적힌 편지 등이 놓였다. 이 중 김주연씨의 편지 일부를 소개한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다 나쁜 놈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국회의원들은 특히 더요. 그런데 의원님은 특별했습니다. 평생 소외된자들 사회적 약자들의 입장을 대변해주시고 그들의 권리를 위해 싸워주시는 모습은 국회의원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고 정치에 대한 희망을 품게 해주었습니다 (…) 의원님 덕분에 우리는 조금 더 편해졌으니, 행복해졌으니,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게 되었으니 이제 우리가 더 많은 사랑을 베풀겠습니다. 정의당을 지키고 사람들을 사랑하고 소외된 자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일게요. 의원님의 삶을 존경합니다.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남양주 주민 윤경희씨(63)는 모란공원에서 봉사자로 일한다. 한달에 한번씩 묘소들 잡초를 제거하고 관리한다. 윤씨가 말했다. “인간 노회찬을 좋아했어요. 평생 정의롭게 사셨고, 약자, 어려운 사람들, 장애인들을 위해 사셨죠. 평생을 헌신하신 분이고, 국민의 한사람으로 고맙게 생각합니다”

■오후 2시20분 - ‘화장 종료’ 소식에 또 오열…‘장지’ 마석모란공원으로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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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 종료 안내말씀 드리겠습니다. 고 노회찬님, 고 노회찬님 화장이 종료됐습니다. 유족분들은 1층 수골실로 오시기 바랍니다” 안내 방송이 나왔다. 유족들이 위패, 영정, 유골함을 들고 1층 수골실로 향했다. 1층은 이미 노 전 원내대표 추모객들로 가득 찼다. 얼핏 수백명은 돼 보였다. 유족들이 수골실에 들어갔다. 유시민 작가, 윤소하 의원, 심상정 의원, 이정미 대표 등이 수골실 입구에서 유골이 수습되기를 기다렸다. 추모객들이 수골실 입구 앞을 가득 채웠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훌쩍이는 소리만 들렸다.

“아이고, 엉엉, 아이고, 어떡해” “회찬아, 엉엉. 가지마, 가지마, 회찬아” 수골실 안에서 유족들이 오열하는 소리가 들리자 말없이 서있던 추모객들이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2시35분 유족들이 황금빛 보자기로 싸인 유골함을 들고 나왔다. 추모객들은 다시 오열했다. 2시50분 유족과 추모객들은 ‘장지’인 경기 남양주 마석 모란공원으로 이동했다.

■오후 2시00분 - 고인 닮은 듯 소박한 영정·위패·유골함…추모객들 “꿈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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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대기실에는 고 노회찬 전 원내대표의 영정과 위패, 화장 후 유골을 담은 함 등이 마련돼 있었다. 추모객들은 대기실에 들려 영정을 마주하거나, 유족과 인사를 나눴다. 전날 광주광역시에서 올라온 정의당원 강은주(51)·성창우(52) 부부는 광주로 돌아가기 전 고인의 영정을 다시 한번 보기위해 대기실을 방문했다. 성씨는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노 의원이 광주에 오시면 모시고 다녔다. 아직도 잘 실감이 나지 않는다. 여전히 꿈꾸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고 했다. 옆에 있던 강씨가 말했다. “노회찬 의원님 덕분에 정의당원인게 행복하고 감사했습니다. 고마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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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2시30분 -서울 원지동 서울추모공원 ‘고 노회찬님, 화장중’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유골이 화장터인 서울 서초구 원지동 서울추모공원에 도착했다. 예정시간인 오후 1시보다 30분 이른 시간이다. 유족들은 영정을 들고 공원 1층 고별실로 들어갔다. 안에는 총 11개의 화로가 있었다. 고인은 ‘4번 화로’로 들어갔다. 다른 추모객들은 고별실 밖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며 흐느꼈다.

12시 45분. 유족들은 영정을 들고 2층 대기실로 향했다. 1층을 가득 메운 추모객들이 영정과 유족이 지나가도록 길을 내줬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 심상정·김종대 정의당 의원들이 뒤를 따랐다. 추모객들도 그 뒤를 따랐다.

유족들이 2층에 있는 4번 대기실로 들어갔다. 공간이 넓지 않아 심 의원, 이 대표 등이 대기실 앞에서 잠깐 머뭇거리다가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지 못한 추모객들은 대기실 밖 복도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나머지 추모객들은 2층 카페테리아와 1층 대기실에서 화장이 종료되길 기다렸다.

12시 56분. 화장이 시작됐다. 4번째 화로에 ‘고 노회찬님, 화장중’ 이란 불이 켜졌다. 화장은 오후 2시16분까지 1시간 좀 넘게 진행된다.

근처인 서초구 양재동에 사는 엄모씨(50)도 친구와 함께 화장터를 찾았다. 이미 화장이 진행중인 것을 보고 1층 고별실 앞 복도에 앉았다. “너무 마음이 아파서 왔어요. 너무너무 소중한 분이 가셔서 안타까워요. 이런분이 100명, 아니 10명만 계셔도 좋을텐데…1시에 맞춰서 왔는데 이미 (화장터에) 들어가 계시네요. 혹시나 그래도 장지인 모란공원으로 떠나시기 전까지는 배웅하고 싶어요”

■ 오전 10시 55분 - 곧 의원회관 510호로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 영결식이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가운데 노 의원의 부인 김지선 씨가 고인의 사무실에서 오열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biggun@kyunghyang.com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 영결식이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가운데 노 의원의 부인 김지선 씨가 고인의 사무실에서 오열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biggun@kyunghyang.com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 영결식이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가운데 노 의원 영정이 고인이 머물렀던 의원회관 사무실을 둘러보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biggun@kyunghyang.com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 영결식이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가운데 노 의원 영정이 고인이 머물렀던 의원회관 사무실을 둘러보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biggun@kyunghyang.com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 영결식이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가운데 노 의원 영정이 고인이 머물렀던 의원회관 사무실을 둘러보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biggun@kyunghyang.com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 영결식이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가운데 노 의원 영정이 고인이 머물렀던 의원회관 사무실을 둘러보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biggun@kyunghyang.com

각계 인사들이 고인의 영정 앞에 마지막 인사를 한 후 영결식은 오전 11시4분쯤 끝났다.

고인은 생전 일하던 국회 의원회관 510호를 마지막으로 들른 후 정의당 당사를 거쳐 화장장으로 이동한다.

고인은 서울 서초구 원지동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 후 장지인 경기도 남양주 마석 모란공원에 안치된다.

■ 오전 10시 45분 - 큰아버지의 조언 “가장 힘들고 어려운 길을 걸어라, 그것이 최선일 것이다”

유족 추도사에 앞서, 고인이 사랑하던 악기인 첼로 선율로 가수 김광석의 ‘맑고 향기롭게’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고 노회찬 의원 생전 모습을 담은 영상이 상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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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 추도사는 노 의원의 큰조카 노선덕씨가 했다.

“하루는 고민이 있어 큰아버지께 조언을 구하러 간 적 있습니다. 큰아버지께서는 ‘선택의 기로에서 어떤 선택이 최선의 선택인지 알 수 없을 때는 가장 힘들고 어려운 길을 걸어라, 그것이 최선의 길일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오전 10시 35분 - 김호규 금속노동자 “선배와 함께했던 노동자의 길을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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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 선배께

‘노동자도 인간이다, 인간답게 살고싶다’는 너무나도 소박한 요구를 밤새 ‘가리방’을 긁어 유인물로 만들어 새벽찬 어둠을 뚫고 인천 부천 지역 공단 지역 집집마다 돌리고 먼 길 돌아 출근했던 노동자 생활이 떠오릅니다

서로 얼굴도 모르고 가명으로 활동한 1986년 늦가을이 생각 납니다

벅찬 가슴 안고 뚜벅뚜벅 걸었던 노동자의 길을 기억합니다

그 길에서 만난 노회찬 선배

30년이 지난 오늘 영원한 안식의 길에서 만나게 되는군요

제가 부족했습니다

노동운동의 노선과 조직이름은 바뀌어도 함께했던 선배였기에 노동자 정치세력과 산별노조 양날개로 증명해보자 실천한 선배였기에

온갖 시련과 갈등이 혼재된 진보정당서 대중적 정치인으로 우뚝 선 선배였기에 그저 저는 믿었습니다

그리고 안일했습니다

예전 조직화 활동할 때처럼 분명하고 비판하고 조직적으로 결정했다면 이렇게 허망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제가 필요할 때만 전화했던 이기심이 부끄럽습니다

바쁘다는 이유로 선배의 고민을 함께하지 못했던 얄팍함을 반성합니다

선배님

노동자 민중의 정치를 위해 희망을 만들었던 선배를 존경합니다

푸근한 호빵맨으로 적절한 비유로 비판의 정치를 한 단계 높여 대중정치 새로운 길을 열어낸 선배의 열정을 사랑합니다

낮은 울림의 큰 첼로를 연주할 수 있는 정치인으로 온 국민이 악기 하나쯤은 할 수 있는 나라를 꿈꿨던 선배의 열정을 배우겠습니다

1986년 부천에서 노동자의 길을 시작한 저에게 지난 30년동안 선배와의 인연은 일선의 현장 활동가로서 가까웠지만 사안에 따라 다소 멀기도 한 것 같습니다

그래도 울산에서 다양한 활동에 대한 선배의 지도는 늘 좋았고 명쾌했습니다

갈등했던 기억은 잠시 뒤로 미루고 울산 바닥과 의기투합했던 도원결의는 간직하겠습니다

선배를 보내는 이 자리는 회한과 슬픔이 앞서지만 넋 놓지 않고 다시한번 진보정당과 노동운동 후배로서 유지를 받아 산 자의 결기로 나아가겠습니다

더이상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는 선배를 통해 체득한 실사구시를 활동하는 동안 놓치지 않고 노동자의 길로 나아가는 데 발걸음마다 나즈막히 퍼져나가도록 더욱더 노력하겠습니다

장례기간동안 선배를 추모하는 긴 추모행렬을 보았고 다양한 국민들의 목소리도 들었습니다

선배님

이제 노동자의 길을걸었던 노동운동가에서 진정한 정치인으로 우뚝 선 선배이기에 영원한 안식의 길에서 하고싶은 것 가고싶은 곳 자유롭게 하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이 글 쓰기위해 정동길 금속노조 사무실 옥상에서서성이는데 붉은 고추잠자리가 제 주위를 맴도네요

씩 웃는 선배 모습 보이는 듯하여 퍼뜩 내려와 기로 라는 노래 들으며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노래에 이런 대목이 제 가슴에 다가옵니다

무지개가 뜨는 언덕을 찾아 넓은 세상 멀리 헤매 다녔네

그 무지개 어디로 사라지고 높던 해는 기울어 가네

새털구름 머문 파란 하늘아래 푸른 쉼을 쉬며 천천히 걸어서 나 그리운 그 곳에 간다네

먼 길을 돌아 처음으로

엄혹했던 노동운동가에서 치열한 진보적인 대중 정치인으로 이제는 자유로운 인간으로 국민들 가슴 속에 첼로의 운율을 남긴 만큼 먼 길 돌아서 다시 왔습니다

처음처럼 아가처럼 편히 쉬십시오

노동자의 길을 선배와 같이 걸었던 용접사 금속노동자 김호규가 드리겠습니다

■ 오전 10시 25분- 심상정 의원 “나의 영원한 동지” 눈물의 조사에 영결식 곳곳서 흐느낌

27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정현관에서 열린 故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영결식에서 심상정 의원이 조사를 하던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 권호욱 선임기자 biggun@kyunghyang.com

27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정현관에서 열린 故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영결식에서 심상정 의원이 조사를 하던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 권호욱 선임기자 biggun@kyunghyang.com

[노회찬 떠나는 날-라이브 업데이트] 임을 위한 행진곡 속 영면···“잘가요, 우리의 영웅”

“당신을 잃은 오늘, 우리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당신이 끝끝내 지켜내고자 했던 진보정치의 꿈, 정의로운 복지국가, 저와 정의당 당원들이 함께 기필코 이뤄낼 것입니다.”

[故 노회찬 대표 영결식, 심상정 추도사 전문]

노회찬 대표님!

나의 동지, 사랑하는 동지, 영원한 동지여!

지금 제가 왜? 왜? 대표님께 조사를 올려야 한단 말입니까? 저는 싫습니다. 꿈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저 뒤로 숨고만 싶습니다. 생각할수록 자책감에 서러움이 밀려옵니다.

쉬운 길 놔두고 풍찬노숙의 길을 자임한 우리들이었기에, 수많은 고뇌와 상처들을 기꺼이 감당해왔던 믿음직한 당신이었기에, 우리 사이의 침묵은 이심전심이고 믿음이며 위로였기에, 지금껏 그래왔듯 그저 침묵으로 기도하면 될 줄 알았습니다. 저의 아둔함에 가슴을 칩니다. 칠흙같은 고독 속에, 수 없는 번민의 밤을 지새웠을 당신을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집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노회찬 동지여!

돌아보니 우리가 함께 한 세월이 30년이 되었습니다. 당신은 인천에서, 저는 구로공단에서 노동운동가로 알게 되어 이후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통합진보당 그리고 정의당에 이르기까지 노회찬, 심상정은 늘 진보정치의 험준한 능선을 걸어 왔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패배로 점철되었던 진보정치의 역사에서 함께 좌절하고, 함께 일어섰습니다. 그 간난신고의 길,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던 시간이었습니다. 당신이 열어주셨기에 함께할 수 있었고 당신과 함께였기에 견딜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역사와 국민의 부름 앞에서 주저 없이 고난의 길을 마다하지 않고 여기까지 왔지 않습니까? 이제 우리의 뜻을 국민들께서도 널리 공감해주시기 시작한 이 때, 이렇게 황망하게 홀로 떠나시니 원통합니다. 당신 없이 그 많은 숙제를 어찌 감당해야 합니까?

그러나 이제 슬픔을 접으려 합니다.

당신을 잃은 오늘, 우리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깨끗하고 정의로운 정치를 위해 당신이 감당했던 천근만근 책임감을 온몸으로 받아 안을 것입니다. 저와 정의당이 그 유지를 가슴깊이 아로새기겠습니다. 당신이 목숨보다 아꼈던 진보정치, 정의당은 더 강해지겠습니다.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아름답고 품격있는 정당으로 발돋움 하여 국민의 더 큰 사랑 받겠습니다.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 당은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고 당부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럴 수 없습니다. 노회찬 없는 진보정당, 상상할 수 없습니다. 가능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앞으로도 노회찬과 함께 할 것입니다. 당신이 끝끝내 지켜내고자 했던 진보정치의 꿈, 정의로운 복지국가, 저와 정의당 당원들이 함께 기필코 이뤄낼 것입니다.

사랑하는 노회찬 동지여! 나의 동지여!

마지막으로 생전에 드리지 못한 말을 전합니다. 노회찬이 있었기에 심상정이 있었습니다. 가장 든든한 선배이자 버팀목이었습니다. 늘 지켜보고 계실 것이기에 ‘보고 싶다’는 말은 아끼겠습니다. 대신 더 단단해지겠습니다. 두려움 없이 당당하게,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2011년 대한문 앞에서 함께 단식농성하며 약속했던 그 말, ‘함께 진보정치의 끝을 보자’던 그 약속, 꼭 지켜낼 것입니다. 정의당이 노회찬과 함께 기필코 세상을 바꿔낼 것입니다. 노회찬 대표님, 이제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편히 쉬소서. 국민들과 함께 소탈하고 아름다운 정치인 노회찬을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영원히 사랑할 것입니다.

■ 10시 20분- 이정미 정의당 대표 조사 전문 “노회찬의 꿈은 정의당의 꿈이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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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대표님!

수만의 시민들이 전국 곳곳에서 대표님을 추모해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초등학생부터 구순 어르신까지. 막 일을 마치고 땀자국이 선연한 티셔츠를 입고 온 일용직 노동자부터 검은 정장을 정중히 입은 기업 대표까지. 남녀노소 각계각층의 많은 분들이 오셔서 원내대표님의 마지막 가는 길에 함께 했습니다.

나이도 성별도 하는 일도 다르지만 이 분들이 저의 손을 잡고 울먹이며 하시는 말씀은 모두 같습니다. “대한민국에 꼭 필요한 사람이었다.” ‘꼭 필요한 사람’. 이보다 노회찬을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말은 없을 것입니다. 노회찬 원내대표가 세상을 떠나자 많은 단체가 추모 성명을 냈습니다. 그들은 해고 노동자이고, 산재로 자식을 잃은 어미이자 아비였으며, 장애인, 여성, 성소수자였습니다. 노회찬이 우리 정치에 없었다면 간절한 외침을 전할 길이 없었던 약자들이 노회찬의 죽음에 누구보다 슬퍼하고 있습니다.

노회찬의 정치 이력은 바로 이들을 대변하고, 이들의 삶을 바꾸는 길이었습니다. 대학생 노회찬은 노동 해방을 위해 용접공이 되어 인천으로 향했고, 일하는 사람을 대변하는 진보정당을 만들기 위해, 이제는 이름조차 기억하기 힘든 진보정치 단체들을 두루 이끌며 청춘을 바쳤습니다. 진보정당 탄생 후에는 그 성공에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생의 마지막 순간, 그가 만들고 키워 온 정의당을 위해 그의 삶을 통째로 바쳤습니다.

그래서 노회찬을 잃은 것은 그저 정치인 한명을 잃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약자들의 삶을 바꿀 수 있는 민주주의의 가능성 하나를 상실했습니다. 노회찬, 당신은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치인은 아닐지라도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되는 단 한 사람이었습니다.

2013년 2월 14일 삼성 X파일 대법원 선고로 의원직을 상실한 날, 억장이 무너진 당직자들에게 당신이 처음 했던 말이 “물의를 일으켜 죄송합니다”였습니다. 분노의 눈물을 삼킨 동료들에게 오히려 웃음과 유머를 보였습니다. 당신은 하늘이 주신 이 재능으로 시민들에게 정치의 통쾌함과 즐거움을 안겼습니다. 그 유쾌함은, 위기와 역경을 낙관으로 이겨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내면의 단단함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나 노회찬은 불같은 분노와 강직함을 함께 갖고 있었습니다. 2013년 의원직 상실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다시 그날로 돌아가도 삼성 X파일을 공개 하겠다”고 말하는 지독한 고집쟁이였습니다. 마지막 유품인 10년이 넘은 양복 두벌과 낡디 낡은 구두 한 켤레에서, 스스로에게 엄격했지만 너무도 소박했던 노회찬을 봅니다. 우리 정치를 이상적이고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노회찬을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국민들은 이런 노회찬을 보며 저기 국회에도 자기 편이 한명 쯤은 있다고 안심할 수 있었습니다. 한결 같은 노회찬을 보며, 많은 정치인들은 정당과 정견은 다르더라도 그를 존중했습니다.

이처럼 소중한 노회찬이, 무겁고 무거운 양심의 무게에 힘겨워 할 때 저는 그 짐을 함께 나눠지지 못했습니다. 당신이 오직 진보정치의 승리만을 염원하며 스스로가 디딤돌이 되겠다는 선택을 할 때도 그 곁에 있어주지 못했습니다. 당원들과 국민들께 너무나 죄송합니다.

정의당은 약속드립니다. 조문 기간 백발이 성성한 어른께서 저의 손을 잡고 “정의당 안에서 노회찬을 반드시 부활시키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저와 정의당은 그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노회찬의 정신은 정의당의 정신이 될 것이며, 노회찬의 간절한 꿈이었던 진보집권의 꿈은 이제 정의당의 꿈이 될 것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문희상 의장님과 선배 동료 의원 여러분!

노회찬 대표의 2012년 정의당 창당대회 연설을 기억합니다. 노 대표는 투명인간들에 대해 말했습니다. 매일 새벽 4시 서울 구로구에서 6411버스를 타고 강남의 빌딩으로 출근하는 여성노동자들은 진보정당에서조차 투명인간이었다고, 그는 반성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분들이 냄새 맡을 수 있고, 손에 잡을 수 있는 곳으로, 이 당을 함께 가져가자”고 했습니다.

노회찬의 이 다짐이 정의당만의 다짐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한국 정치가 너나 없이 투명 인간으로 취급해 온 일하는 사람들, 소수자들, 약자들을 향해 이제 함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되도록 정치개혁과 시민의 삶을 바꾸는 개혁에 나서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여기서 멈추겠다.”고 했던 노회찬은 결코 멈추지 않고 우리와 함께 “당당히 나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한국 정치 변화의 상징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우리의 벗, 존경하는 나의 선배 노회찬 이시여. 부디 영면하십시오. 먼 훗날 다시 만나면, 수많은 노회찬의 부활로 진보정치의 큰 꿈을 이루고 이 나라가 평등 평화의 새로운 대한민국이 됐다고 기쁘게 이야기 나눌 것입니다.

■ 오전 10시 10분-문희상 국회의장 추도사 “당신은 정의로운 사람”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 영결식이 국회장으로 28일 오전 10시부터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청 앞에서 열렸다.

다음은 문희상 국회의장의 추도사 전문이다.

노회찬 의원님!

이곳 국회에는 한여름 처연한 매미 울음만 가득합니다

제가 왜 이자리에 서있는 겁니까

어떻게 하다가 이 자리에서 노 의원님을 떠나 보내는 영결사를 읽고 있는 것입니까

태양빛 가득한 계절이건만 우리 모두는 어둔 터널에 들어선듯 참담한 심정으로 모여있습니다

둘러보면 의원회관 입구서 본청 입구서 노 의원 모습 보일 듯 합니다

삶에 대한 치열한 고민 속에서도 여유 가득한 표정의 우리 동료 노의원님을 만날 것만 같습니다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믿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이 현실이란 것에 황망함과 비통함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깊은 슬픔입니다

설명할 수 없는 엄청난 충격이 가시질 않습니다

노회찬 의원님

당신은 정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당신은 항상 시대를 선구했고 진보정치의 상징이었습니다

정의를 위해서라면 계란으로 바위치기란 만류에도 거대 권력과 싸움을 마다 않았습니다

마지막 남긴 메시지서도 노동자의 삶을 함께 아파했고 사회적 약자의 승리를 함께 기뻐했습니다

정치의 본질이 못 가진 자 없는 자 슬픈 자 억압받는 자 편에 늘 서야한다 생각했던 당신은 정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노 의원님

당신의 삶은 많은 이들의 이정표가 될 것입니다

경기고 재학 시절부터 서슬 퍼렇던 유신에 항거했습니다

보장된 주류의 편안한 삶 대신 민주주의와 노동 현장에서 온몸을 던져 투쟁하셨습니다

낡은 구두 오래된 셔츠 넥타이가 말해주는 대중 정치인의 검소함과 청렴함은 젊은 세대에게 귀감이 되었습니다

한국 정치사에 진보 정치와 생활정치의 깃발을 세워 사회적 약자와 노동자 서민의 버팀목이 되어 주셨습니다

눈 덮인 들판 걸어갈 때 함부로 걷지 마라

오늘 내가 걸어가는 이 발자취는 뒷사람의 이정표가 된다

마치 이 말씀을 온 몸으로 실천하듯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권력에 굴복하지 않았으며 명예를 중시하고 신중했던 삶이었습니다

당신의 삶은 많은 이들의 이정표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노회찬 의원님!

당신은 22일 저녁 어머님의 병상을 찾아뵙고 동생의 집을 찾았지만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마지막 밤을 보내고 홀연히 떠나셨습니다

차마 이 길을 택한 노 의원님을 고뇌와 번뇌 회한과 고통을 생각하면 주체할 수 없는 눈물만 흐를 뿐입니다

노회찬 의원님!

이제 평생을 짊어지셨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영원한 평안을 누리십시오

당신이 한국 정치사에 남긴 발자취와 정신은 우리 국회와 대한민국 역사 속에 길이 빛날 것입니다

부디 영면하소서

2018년 7월 28일 장례위원장 국회의장 문희상

■ 오전 10시-노회찬의 ‘마지막 등원’

[노회찬 떠나는 날-라이브 업데이트] 임을 위한 행진곡 속 영면···“잘가요, 우리의 영웅”

국회장으로 치러지는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 영결식이 27일 오전 10시부터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청 앞에서 시작됐다.

오전 9시 세브란스병원에서 발인한 후 9시58분쯤 노 의원 영정이 국회로 들어왔다.

국회장 장의위원장인 문희상 국회의장을 비롯해 여야 정치권 인사들이 자리한 가운데 시민들도 노 의원의 마지막 길에 함께하기 위해 본청 앞에 모였다.

[노회찬 떠나는 날-라이브 업데이트] 임을 위한 행진곡 속 영면···“잘가요, 우리의 영웅”

김병준 자유한국당 혁신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영결식에 참석하지 않고 같은 시각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리는 ‘6·25전쟁 유엔군 참전의 날 기념식’에 참석했다. 대신 당을 대표해서는 김성태 원내대표가 영결식에 참석했다.

영결식이 끝나면 고인은 서울 서초구 원지동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 후 장지인 경기도 남양주 마석 모란공원에 안치된다.

■ 여야 “노회찬의 꿈을 잊지 않겠다” 추모 물결

27일 오전 국회에서 정의당 고 노회찬 의원의 영결식이 열린 가운데 영결식을 마친 운구차량이 국회를 나서고 있다. / 권호욱 선임기자 biggun@kyunghyang.com

27일 오전 국회에서 정의당 고 노회찬 의원의 영결식이 열린 가운데 영결식을 마친 운구차량이 국회를 나서고 있다. / 권호욱 선임기자 biggun@kyunghyang.com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국회 영결식이 열리는 27일, 여야는 한 목소리로 고인을 추모했다.

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한평생 힘없는 노동자와 서민을 위해서 그들의 아픔을 대변한 그의 감명깊은 삶을 우리는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한다”며 “그가 이루지 못한 평등한 사회의 꿈을, 약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그가 발의한 법안 노력 을헛되게 하지 않을 책무가 우리에게 남겨져 있다”고 말했다.

홍영표 원내대표는 “고인의 추모를 위해 빈소를 찾은 수많은 시민을 보면서 참 많은 것들을 우리에게 남기고 떠나셨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며 “당신께선 노동자와 약자의 진정한 벗이자 민중의 대변인이었다. 평생을 정의로움과 올바름 가치 지키기 위해 치열하게 싸운 고인의 뜻을 잊지 않겠다”고 추모했다.

민주평화당 장병완 원내대표는 최고위에서 독일 시인 브레히트 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인용한 뒤 “오늘처럼 이 시구가 마음에 사무친 적이 있었나 싶다”며 “국회 내 소수정당의 역할을 함께 모색했던 파트너로서 상실감이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크다”고 했다.

장정숙 의원은 “우리는 정말로 안타까운 동지를 잃었으며 정치적 큰 자산을 잃었다”며 “노 의원의 심정을 헤아리려면 가슴이 먹먹하고 눈시울이 뜨거워진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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