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세 100년, 반공 이데올로기가 가린 역사적 진실…사회주의 독립운동가의 서훈을 확대해야

2019.01.22 06:00 입력 2019.01.22 06:02 수정
임경석 | 성균관대 교수

임경석 성균관대 교수 기고

[신년기획]다·만·세 100년, 반공 이데올로기가 가린 역사적 진실…사회주의 독립운동가의 서훈을 확대해야

순국선열조차 이념 잣대로 재단
군사독재 정권의 모순 아직 남아

심지어 순국선열조차도 독립유공자가 되지 못했다. 군사독재정권 시절의 얘기다. 독립운동을 하기 위하여 항거하다가 순국한 분인데도 독립유공자 서훈 대상자로는 부적합하다고 보곤 했다. 왜 그랬을까? 왜 이처럼 앞뒤 모순된 현상이 나타났을까. 이념 탓이었다. 군사독재정권은 그분이 생전에 마음속에 품었던 생각을 문제 삼았다. 독립유공자 서훈에 필요한 모든 요건과 증빙을 갖췄다 하더라도 그분이 행여 사회주의 운동에 참가했었다면, 어김없이 ‘부적격’이라고 판정했다. 군사독재의 통치수단이던 반공 이데올로기가 역사적 진실을 가렸다.

6월 민주항쟁이 이 부조리를 고쳤다. 1987년 체제가 들어선 이후에 비로소 이치에 맞지 않는 일들이 바로잡히게 됐다. 민주주의의 힘이 역사적 진실을 드러내게 했다. 다만 일거에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그 교정은 더디게 단계적으로 이뤄졌다.

김영삼 정부 시절에 작지만 유의미한 첫 진척이 있었다. 사회주의 경력이 있는 독립운동자라 하더라도 해방되기 전에 사망한 분이라면 독립유공자로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다시 말하면 해방 이후에는 사회주의 운동을 하지 않았어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또 있었다. 서훈 등급을 한 단계 낮춰서 그리하기로 했다. 두 가지 조건을 붙인 셈이었다. 덕지덕지 조건이 붙은 채였지만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도 유공자 서훈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후 서훈을 받은 사회주의자들이 점차 늘었다. 노무현 정부 때에는 사회주의 계열을 대대적으로 서훈한 사실이 언론에 크게 보도되기도 했다.

3·1운동 이후의 독립운동가들
대거 사회주의 수용 직시해야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에 또 한 걸음 진척이 있었다. 2018년 6월 정부는 독립유공자 포상심사 기준 개선 방안을 확정했다. 그에 따르면 해방 이후 사회주의 활동에 참여한 인사도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하지 않은 경우에는 독립유공자로 선정해 포상이 가능하도록 했다. 1945년 이후 사회주의 신념을 버리지 않은 독립운동가에게도 유공자 서훈의 길이 열렸다. 역사적 진실에 일보 더 다가가는 조치라 하겠다.

그러나 아직 부족해 보인다. 예컨대 총독부 관료들과 친일파를 전율케 했던 의열단장 김원봉은 어찌 하려는가? 중국에 망명했던 그는 해방 후 남쪽으로 귀향했다. 그러나 친일파가 부활하는 현실에 실망하고 월북했으며, 북한 정권에 참여했다. 그는 1950년대 말경 북한 정권의 갈등 와중에서 사라졌고, 이후 그의 독립운동 역사는 잊힌 상태에 놓여 있다. 그는 아직 독립유공자로 인정받고 있지 못하다.

그뿐인가. 3·1운동 이후 독립운동가들이 대거 사회주의를 수용했고, 1930년대 독립운동을 탄압하던 치안유지법 위반자의 대다수가 사회주의자였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해방 직전까지 옥중에서, 지하에서 항일투쟁을 계속하던 사회주의자들 가운데 대다수가 독립유공자 서훈에서 배제되고 있다.

독립운동 여부로만 서훈 따지고
사후적 추가 기준 세워선 안돼

당연한 말이지만, 독립유공자 선정 여부는 그 사람이 독립운동을 했는지 여부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 뒷날 훼절해서 친일한 경력이 있는 경우만 제외되어야 한다. 그 외에는 달리 사후적인 추가 기준을 세워서는 안된다. 신념, 종교, 성별, 국적 여부에 상관없이 단일한 보편적 기준에 의거해서 유공자 선정이 이뤄지길 기대한다. 설령 사회주의자라 할지라도 그가 독립운동에 참가한 공로가 있다면, 아무런 제한 없이 독립유공자로 예우하는 것이 우리 후손들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 특별취재팀

강병한(정치부), 유정인(문화부), 심진용(국제부), 박광연(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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