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세 100년, “이육사 ‘백마 탄 초인’은 항일전사 허형식”…허, 시인보다 다섯 살 어린 외당숙이자 ‘만주 최후의 파르티잔’

2019.01.22 06:00 입력 2019.01.22 06:01 수정

이육사

이육사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이육사(1904~1944)의 시 ‘광야’의 마지막 구절이다. 그는 1942년 중국 베이징 일본총영사관 지하감옥에서 온갖 고문을 견디며 이 시를 썼다.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은 누구일까. 통상 학교에서는 ‘해방된 민족적 자아’로 가르쳐 왔다. 그런데 최근 그 초인이 가상이 아니라 실제 모델을 기반으로 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바로 ‘만주 최후의 파르티잔’으로 불린 허형식(1909~1942)이다. “북만주에서 희생되지 않았다면 북녘 아니면 남녘에서 정권을 잡았거나 통일정부를 세웠을 것”(역사학자 강만길)이라는 그는 누구인가.

허형식

허형식

허형식은 1909년 경상북도 구미 임은동에서 출생했다. 철길 하나 건너가 박정희 전 대통령이 태어난 상모동이다. 그는 구한말 의병지도자로 서대문형무소의 ‘1호 사형자’로 기록된 왕산 허위의 당질(사촌형제의 아들)이다.

10대 시절 만주로 이주한 그는 1930년 하얼빈에서 일본 총영사관을 맨손으로 급습해 1년간 수감됐다. 출소 후 항일전사로 거듭났다. 1935년 동북인민혁명군 단장, 1936년 동북항일연군 정치부 주임, 1939년 동북항일연군 제3로군 군장을 맡으며 만주 항일투쟁을 주도했다. 동북인민혁명군과 이름을 바꾼 동북항일연군은 한·중 통합 군사기관이었다. 그는 동북항일연군의 유일한 남한 출신 지휘관이었다. 그가 300여회 전투를 통해 27개 도시를 점령하고 일본군과 경찰 1557명을 사살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1941~42년 일본군의 토벌이 심해지자 동북항일연군의 상당수 지휘관은 소련으로 피신했다. 그러나 허형식은 끝까지 만주에서 저항했다. 일제는 고액의 현상금과 1계급 특진을 내걸었다. 당시 그가 ‘만주 최후의 항일 파르티잔’으로 불린 이유다. 결국 그는 1942년 8월 북만주 칭안현 계곡에서 일본군의 습격을 받아 전사했다. 일본군은 그의 머리만 떼어가고 시신은 방치했다.

한편 허형식은 이육사 어머니의 사촌동생이다. 이육사가 나이가 다섯살 많았지만 허형식을 존경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둘 다 중국에서 독립운동에 투신했고, 사회주의 성향을 보였다. 이육사가 1930년대 말 만주에서 당시 백마를 탄 허형식을 만났다. 백마를 탄 허형식의 인품에 매료돼 광야를 썼다는 증언이 있다. 허형식 누이의 외손녀인 심송화는 2004년 ‘백마 타고 사라진 허형식 할아버지’란 시를 남겼다. 이 때문에 일부 연구자는 ‘초인’이 허형식을 모델로 한 것이라고 추정한다. 중국 정부는 1998년 허형식기념비를 세웠고, 2014년 항일영웅열사 명단에 올렸다. 만주에서는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다.

※ 참조: 윤태옥 <중국에서 만나는 한국독립운동사>, 장세윤 <허형식, 북만주 최후의 항일 투쟁가-백마 타고 오는 초인>, 박도 <만주 제일의 항일 파르티잔-허형식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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