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출범한 ‘김기현호’를 두고 당권 낙선자들이 저마다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천하람 당협위원장(전남 순천갑)은 김기현 신임 대표 측의 회동 제안을 거절한 반면 안철수 의원와 황교안 전 대표는 각각 전날과 14일 김 대표와 만났다. 회동 두 전임 후보 사이에도 미묘한 입장차가 엿보인다. 지지 기반과 정치적 지향에 따라 김 대표와의 거리 계산에 돌입한 것으로 해석된다.
안 의원은 전날인 13일 당권주자 중에선 처음으로 김 대표와 회동했지만, 김 대표가 제안한 과학기술특위 위원장 자리는 “쉬고 싶다”는 이유를 들며 고사했다. “이번 (전당대회)엔 당심 100%(퍼센트)로 했지만, 내년 총선은 민심 100프로”라며 쓴소리도 남겼다.
안 의원이 김 대표와의 만남 자체를 거부할 이유는 없었다. 오히려 합당으로 국민의힘 소속이 된 지 1년이 채 되지 않은 상황에서 김 대표와의 만남은 당내 안착을 돕는 접근으로 여겨졌다. 안 의원이 낙선 직후 “당의 화합”을 강조한 것도 같은 이유로 풀이됐다.
다만 김 대표에게 흡수되는 모습은 곤란하다는 전략적 판단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차기 대선 주자로서 안 의원의 입지를 고려할 때 현 지도부와 차별성을 보여야 한다는 분석이다. 김 대표가 제시한 과학기술특위 위원장 자리가 안 의원에게 매력적이지 않은 선택지이기도 했다. 당 의원들과의 교류엔 도움이 될지 모르나, 공천 등 결정에 영향을 주는 당직 등의 추천 권한과는 무관한 자리라는 진단이다. 안 의원은 이날 부산·울산·경남(PK) 지역부터 일주일 간 전국 각지의 지지 당원과 만나며 지지세를 재정비한다.
황 전 대표는 이날 김 대표와 오찬 회동한 뒤 “(김 대표를) 적극 돕겠다고 답했다”며 긍정 기류를 전했다. 그러면서도 전당대회 기간 중 언급한 ‘대여투쟁’과 관련해 “제가 가는 길은 변함이 없다”며 갈등 가능성을 남겼다. 김 대표에 대해 제기했던 ‘울산 땅투기 의혹’ 관련해서도 “김 대표도 본인에게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 알 것”이라고 비판 뉘앙스를 드러냈다. 황 전 대표는 전당대회 이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조작이 의심되지 않느냐”며 전당대회 투표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한 바 있다.
당내 의원들은 황 전 대표가 ‘부정선거’ 주장을 거듭한다면 정치적 입지가 위태로울 것으로 보고 있다. 경북의 한 의원은 “전당대회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시스템을 이용해 치러졌는데, 선관위가 특정 정당의 누군가를 위할 이유가 있느냐”며 “(부정선거 주장이) 지지 기반인 팬덤을 향해선 먹힐지 모르나, 확산력을 갖긴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대구의 한 의원은 “확장성을 가질 때 정치적으로 목표를 이룰 수 있는데, (황 전 대표는) 극우적 주장에만 머무르며 스스로 발목을 잡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천 위원장은 김 대표와의 만남을 유보하고 있다. 최근 김 대표 측에서 김 대표와의 회동 제안이 있었지만 거절했다. 당 지도부가 출범 직후부터 “‘이준석 정치’의 완전한 청산 계기” 등 극언한 데 대한 반작용이다. 현 지도부 구성과 당직 인선이 ‘친윤(석열)’ 일색이란 평가를 받는 것도 ‘거리두기’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최근 김재원 수석최고위원이 전광훈 목사의 예배에 참석해 “(5.18 정신의 헌법 수록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내놓아 ‘극우’ 논란에 휩싸이는 일도 벌어졌다. ‘당 개혁’을 선거 명분으로 내걸었던 천 위원장 입장에서도 전당대회 이후에도 스탠스를 유지해야 중도 개혁 성향의 젊은 당원 지지를 ‘굳히기’ 할 수 있단 계산이 가능하다.
당의 한 인사는 통화에서 “최고위원들이 (이준석계를) 공격하는 와중에 만나자는 건, 화합 분위기 내는 사진만 연출하겠다는 것”이라며 “천 위원장이 (만남을) 거절한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