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부 기자들이 전하는 당최 모를 이상한 국회와 정치권 이야기입니다.”
더불어민주당에서 때아닌 국회 상임위원장 인선 논란이 일었다. 지난 30일 국회 본회의를 앞두고 열린 의원총회에서 민주당 몫 상임위원장(교육위원장, 행정안전위원장, 보건복지위원장) 3명이 추인받지 못했다. 결국 본회의에선 국민의힘 몫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에 장제원 의원이 표결로 선출됐고, 민주당 몫 상임위원장 선출은 6월 임시국회 본회의로 미뤄졌다. 상임위원장 인선이 본회의 직전 당내 의원총회에서 불발된 것은 이례적이다.
민주당은 당초 본회의에서 박홍근 의원(3선)을 교육위원장으로, 정청래 의원(3선)을 행안위원장으로, 한정애 의원(3선)을 복지위원장으로 선출하려 했다. 그런데 본회의 직전 의원총회에서 이같은 원내지도부 결정에 항의가 쏟아졌다.
민주당은 통상 상임위원장을 3선 이상이 돌아가면서 맡아왔다. 이 중 당직을 맡았거나 장관 출신인 경우 상임위원장을 하지 않는 것이 관례였다. 박홍근 의원은 직전 원내대표였고, 정청래 의원은 현직 최고위원이다. 한정애 의원은 문재인 정부에서 환경부 장관을 지냈다. 세 내정자 모두 관례에 어긋난다.
민주당 일부 의원들은 혁신과 맞지 않는 방향의 인선이라고 작심발언했다. 재선인 기동민 의원은 당직을 맡았거나 장관을 지낸 사람들이 상임위원장을 하는 것이 맞느냐는 취지로 발언했다. 당에 불어닥친 도덕성 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쇄신하는 모습을 보여줘도 시원찮을 판에 ‘특권 나눠먹기’로 국민에게 비칠 수 있다는 것이다. 기 의원 발언을 시작으로 10여명이 비슷한 취지로 발언했고, 중간중간 박수도 나왔다고 한다. 한 중진 의원은 31일 통화에서 “당의 혁신과 쇄신은 인사부터 하는 것”이라며 기 의원 발언 취지에 동감했다.
원내지도부가 상임위원장 내정자를 일방적으로 발표하는 관행도 검토하자는 취지의 발언이 나왔다. 한 재선 의원은 통화에서 “어떤 원칙과 기준에 따라 상임위원장이나 당직을 배정할지 인사 기준이 정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한규 원내대변인은 전날 기자들과 만나 “‘훌륭한 재선이면 (상임위원장) 할 수 있는 것 아니냐. 험지에서 고생하는 사람이면 기회를 줄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발언이 있었다”며 “전체적으로 선수 중심으로 가는 기존 관행을 검토해보자는 이야기였다”고 전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2020년 6월 21대 국회 전반기 원 구성 협상 때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고 입을 모았다. 김태년 당시 민주당 원내대표와 주호영 당시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원내대표 사이 원 구성 협상이 최종 결렬된 뒤 민주당은 18개 상임위원장을 독차지했다. 민주당은 당시 장관 출신 3선 의원들을 주로 상임위원장에 앉혔다. 이때 발생한 예외적 상황이 자충수로 돌아온 것이다. 당내에선 “김태년이 사실상 망가뜨린 것”(한 다선 의원)이라는 볼멘소리까지 나왔다.
박광온 원내대표는 상임위원장 선출 기준을 새로 마련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인선이 대폭 바뀔 가능성이 크다. 원내 관계자는 통화에서 “대표단이 지혜를 모아 좋은 방안을 찾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홍근·한정애 의원은 의원총회에서 “의원들 의견이 모이면 그에 따르겠다”고 발언했다고 한다. 반면 정청래 의원은 “꺾이지 않고 제 길을 가겠다”며 상임위원장직을 내려놓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날 민주당 당원청원시스템에는 ‘정청래 의원의 행안위원장 내정을 간곡히 부탁드린다’는 청원이 올라왔다.
민주당은 6월 임시국회에서 교육위원장, 행안위원장, 복지위원장 외에도 자당 몫인 예산결산특별위원장,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장, 환경노동위원장을 선출한다.
이번 상임위원장 인선 갈등을 시작으로 당내 혁신 논쟁이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당 안팎에선 전당대회 돈 봉투 의혹, 김남국 의원의 가상자산 투자 논란 등으로 쇄신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민주당이 지난 14일 쇄신 의원총회에서 결의한 혁신 기구 출범은 2주 넘도록 감감무소식이다. 민주당 의원들은 혁신 기구에 전권을 위임할지 말지, 혁신 안건은 무엇이 돼야 할지 등을 놓고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