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섭 출국 논란에 가려진 본질은 ‘채 상병 수사 외압·은폐’ 의혹

2024.03.20 20:40 입력 2024.03.20 20:41 수정

‘런종섭’ 사태의 핵심은

[뉴스분석] 이종섭 출국 논란에 가려진 본질은 ‘채 상병 수사 외압·은폐’ 의혹

VIP 격노 전화 수신자로 지목
대통령실·해병대 연결 ‘의혹’
사건 이첩 전후 긴박한 연락
임성근 안위 수차례 확인도

‘중간 고리 역할’ 잇단 보도 속
잡음 감수하면서까지 해외로
안보실 보고라인도 모두 교체

주호주대사로 부임한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사진)이 연일 정치권 이슈로 등장하고 있다. 피의자 신분인 그의 ‘호주런’이 총선 악재로 떠오르자 여권은 이 전 장관의 출국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수사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며 논란 진화에 애쓰고 있다. 이 전 장관이 ‘자진 귀국’하거나 공수처 소환 조사에 ‘성실하게’ 응하면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일까.

이 전 장관은 채모 상병 사망 사건과 관련, 해병대 수사단에 외압을 가했다는 의혹을 받고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로 공수처에 고발됐다. 국방부와 해병대는 ‘국방부 장관은 해병대 수사단을 지휘·감독할 책임과 권한을 가진다’며 장관의 지시는 외압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국방부 장관이 대통령실과 해병대의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면, 다시 말해 장관이 자신의 판단이 아니라 대통령실의 정무적인 결정과 지시에 따라 해병대 사건에 관여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 ‘VIP 격노’의 진위

지난해 7월30일 이 전 장관은 해병대 수사단의 결론과 이첩 시기 등에 대한 보고를 받고 보고서를 결재했다. 같은 날 저녁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은 해병대로부터 수사단의 결론이 담긴 언론 브리핑 자료를 전달받고는 “이쪽에 전달했다는 이야기를 하면 안 된다”고 당부했다. 7월31일 이 전 장관은 해병대 수사단에 경찰 이첩 보류와 당일 예정된 언론 브리핑 취소를 지시했다. 이 지시를 내리기 직전 이 전 장관은 대통령실로 발신자가 찍힌 유선전화를 받았다고 MBC는 보도했다.

해병대 수사단장이었던 박정훈 해병대 대령은 같은 날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에게 브리핑 취소 이유를 물었고 이른바 ‘VIP 격노’ 답변을 들었다고 주장한다. VIP(대통령)가 아침 회의에서 해병대 수사단 조사 결과를 보고받고는 격노해서 이 전 장관에게 전화해 ‘이런 일로 사단장까지 처벌하면 대한민국에서 누가 사단장을 할 수 있겠냐’는 취지로 질책했다는 설명을 김 사령관이 했다는 주장이다.

이후 국방부는 여러 경로를 통해 해병대 수사단에 경찰 이첩 자료에서 혐의자를 특정하지 말라고 종용했다. 사건을 넘겨받은 국방부 조사본부가 경찰에 최종 이첩한 서류에는 임성근 당시 해병대 1사단장 등은 제외되고 대대장 2명의 혐의만 적시됐다.

이 부분은 대통령실 외압 의혹을 풀어나갈 핵심 단서들이다. 이 전 장관이 대통령실의 뜻을 중간에서 해병대에 전달했다는 의혹이 시작된 지점이기도 하다. 물론 김 사령관과 이 전 장관, 대통령실은 박 대령의 주장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다른 해병대 수사단원들도 7월31일 박 대령으로부터 ‘VIP 격노’ 내용을 전해 들었다고 군검찰에서 진술했다. 그러자 군검찰은 윤 대통령 관련 내용의 사실 여부에 대해 확인한 적이 있느냐고 되물었다. 한 단원은 “제가 확인할 수 없는 부분이라 못했다”고 답했다. 박 대령은 대통령 관련 주장을 뒷받침할 정황 증거를 담은 의견서를 지난 14일 중앙지역군사법원에 제출했다.

■ ‘자진 귀국’하면 문제없어지나

대통령실은 왜 해병대 수사단의 언론 브리핑 자료를 미리 전달받고는 관련 사실을 이야기하지 말라고 했을까. 대통령실은 왜 7월30일부터 해병대 수사단이 경찰 이첩을 강행한 8월2일까지 수차례 이 전 장관·해병대와 연락했는지, 이 전 장관은 왜 윤 대통령의 휴가 복귀일인 8월9일을 언급하며 해병대 수사단에 이첩을 늦추라고 한 것인지, 또 왜 유독 임성근 전 사단장의 안위를 해병대에 여러 차례 확인한 건지 등 규명돼야 할 사항이 너무 많다.

그런데 대통령실은 이 전 장관을 주호주대사로 임명해 출국시켰다. 이 전 장관이 대통령실과 해병대의 중간고리로서 행동한 것으로 추정되는 다수의 정황이 나오는 상황에서 대사 임명과 출국이 이뤄지자 ‘런종섭’ 의혹이 제기됐다.

외압 의혹의 중심에 선 대통령실은 사건 당시 안보실 보고 라인에 있던 사람들과 국방부 장차관을 교체했고 심지어 장관은 해외로 보냈다는 게 이 전 장관 출국 논란의 핵심이다. 이 전 장관은 ‘공수처 소환조사에 성실하게 응할 것’이라고 했고 조만간 자진 귀국한다고 하지만, 이는 사안의 본질과는 거리가 있다.

■ 공수처 압박하는 대통령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12일 이 전 장관의 출국 과정과 관련한 특검법안을 당론으로 발의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민주당이 검찰을 못 믿는다며 출범시킨 것이 공수처인데 이젠 공수처를 못 믿어 특검을 하자는 것인지, 굉장히 아이러니한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그래도 논란이 가라앉지 않자 대통령실은 공수처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왜 이 전 장관을 출국금지시켜놓고도 소환하지 않았냐는 것이다. 대통령실은 이 전 장관의 출금 조치가 언론에 새어나간 것을 문제 삼더니 “이 대사 검증 과정에서 고발 내용을 검토한 결과 문제 될 것이 전혀 없다고 판단했다”고도 했다. 엄연히 공수처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 ‘문제 될 것이 없다’고 단정지어 사실상 수사 지침을 제시한 것이라는 비판까지 제기됐다.

대통령실은 “공수처에서도 출국 허락을 받았다”고 했으나 공수처는 “출국을 허락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여당이 이 대사를 즉각 소환하라고 하자 공수처는 수사팀이 결정할 문제라고 일축했다.

공수처장은 두 달째 공석이다. 지난달 29일 처장 후보가 2명으로 추려졌지만 윤 대통령은 3주 가까이 지명하지 않고 있다. 정권이 수장 자리는 비워두고 수사기관 조사 일정까지 압박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니 “공수처를 못 믿나” “특검은 낭비적”이라는 대통령실의 말을 신뢰하기 어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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