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힘과 지혜의 상징’ 긴 머리카락…삼손은 수학도 잘했을까

2017.11.02 21:27 입력 2017.11.02 21:39 수정
최영식 한국뇌연구원 책임연구원

수학을 보는 뇌

[전문가의 세계-뇌의 비밀] (13) ‘힘과 지혜의 상징’ 긴 머리카락…삼손은 수학도 잘했을까

숨은그림찾기에 열중하고 있는 친구들 사이에서 혼자 뭔지 모를 숫자와 기호를 긁적이고 있는 아이가 있다면 혹시 천재일지도 모른다. 숫자는 예전부터 보통 사람과 특별한 사람을 구분 짓는 기준이 되곤 했다. 고대의 천재들은 숫자를 통해 사고의 우주를 탐험하곤 했다. 특히 소수, 즉 1과 자기 자신으로만 나눠지는 특별한 수가 자주 등장한다.

다른 한편에는 유독 숫자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있다. 대략 인구의 7%쯤 된다. 모든 학자들이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들의 뇌는 숫자를 담당하는 회로에서 다른 사람과 차이가 날 가능성이 높다.

■ 숫자 장애로 힘들어하는 아이들

숫자 장애로 잘 알려진 사람이 영국의 정치학자 폴 무어크래프트다. 그는 자신이 숫자에 약한 걸 알기에 평생 휴대전화 번호를 한 가지만 사용한다고 한다. 여자친구의 번호를 기억할 수 없어 관계를 오래 유지하지 못한 적도 있다고 한다.

뇌의 어느 부위에서 숫자를 이해하는지 안다면 이들을 도울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예전에는 언어와 숫자를 비슷한 곳에서 처리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최근 수학에 뛰어난 사람들의 뇌활성 영상을 조사한 결과, 언어와 전혀 상관이 없는 두정엽, 전전두엽 등이 활발한 것으로 나타났다. 폴 무어크래프트 역시 숫자는 잘 이해하지 못하지만 10권의 책을 쓴 걸 보면 글을 쓰는 데에는 숫자 장애가 전혀 문제없었던 것 같다.

반대로 두정엽 아래쪽이 크게 발달해서 숫자에 민감한 친구들이 있다. 이들은 한 페이지 넘는 긴 숫자를 눈 한번 깜박일 때마다 쉽게 더하고 뺀다. 혹시 이런 사람을 인위적으로 만들 수 있을까?

이와 관련해 흥미롭지만 위험할 수도 있는 연구가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발표된 적이 있다. 연구팀은 뇌의 두정엽을 전기로 자극한 뒤 숫자 감각을 테스트하는 실험을 했다. 흥미롭게도 실험 참가자 일부가 반년이 지나도 여전히 숫자 감각이 좋았다. 참고로 두정엽은 크고 작은 것을 구분하는 데 중요한 부위다. 물론 숫자 장애를 보이는 어린이에게 두정엽을 직접 전기로 자극해서 수학 진도를 따라가게 하는 일은 가까운 미래에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부작용의 우려 때문이다.

하지만 훨씬 안전한 방법들이 현재 연구되고 있다. 예를 들어 지금도 가벼운 기억 증진이나 우울증 개선에 자기장을 이용한 뇌자극 치료기술이 사용되고 있다. 특히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의 에드워드 보이덴 교수 연구팀은 정확하게 뇌를 자극하는 기술을 개발해 주목받고 있다.

연구팀의 아이디어는 주파수 상쇄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즉, 두 가지 고주파가 상쇄되면서 만들어내는 저주파를 뇌 속으로 보내는 것이다. 이 기술은 지금처럼 전기자극기를 뇌 속에 삽입할 필요가 없으며, 현재 임상 연구가 진행 중이다.

가까운 미래에 전기자극 모자를 쓰고 병원에 앉아 뇌 속에 쌓인 침전물을 제거하거나 기억력을 높이고, 심지어 수학 실력까지 올리는 모습이 상상된다. 8~9세 아이를 대상으로 뇌 발달 시기에 숫자 회로를 자극하자 수를 판단하는 감각이 발달했다는 연구 결과를 보면 터무니없는 상상은 아닌 듯하다.

■ 10이 넘는 숫자 계산이 어려운 이유

두정엽에 존재하는 ‘숫자 회로’에 대한 연구는 아직 충분하지 않다. 흔히 신문이나 방송에서 보는 뇌활성 영상(fMRI로 찍었다면서 어떤 생각을 하면 어떤 부위가 파랗고 빨갛게 나오는 영상)은 복셀이라 부르는 3차원 이미지가 기본 단위다(복셀을 카메라의 픽셀로 이해하면 쉽다). 한 개의 복셀에 최소 60만개가 넘는 신경세포와 그보다 훨씬 많은 신경교세포가 들어 있다.

현재 뇌영상 기술은 복셀 단위로 신경회로의 활성을 관찰하는 것이다. 실제로 신경신호가 전달되는 부위, 즉 신경세포의 연결부위인 시냅스에서 일어나는 전기적이고 화학적인 대화 내용을 듣기에는 한계가 크다. 하나의 복셀에 대략 4억개가 넘는 시냅스가 반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10진수에 대해 반응하는 10만개 정도의 시냅스가 두정엽의 4층 대뇌피질에 있다고 가정하자. 1, 2, 3, 이렇게 숫자를 늘려가면 해당하는 신경세포가 활성을 보이며 시냅스에서 정보를 읽을 것이다. 문제는 10을 넘을 때다. 11, 12, 13은 1, 2, 3번 숫자에 반응하던 신경세포가 다시 정보를 주고받는지, 전혀 다른 11, 12, 13 신경세포가 있는지 우리는 아직 모른다.

대부분의 문명이 10진수 혹은 12진수를 선호하는 이유를 뇌 안에 있는 신경회로에서 유추한다면 적어도 1부터 12까지는 서로 다른 신경세포나 간단한 신경회로가 반응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아마도 13이 넘는 숫자는 훨씬 복잡하고 거대한 신경회로를 거쳐서 처리될 것이다. 실제로 아이들은 대개 1부터 10까지는 빠르게 이해한다. 하지만 11에서 100까지는 시간이 꽤 걸린다. 큰 숫자와 관련된 신경회로가 천천히 성숙되기 때문일 것이다.

뇌의 두정엽에서는 2~5세 무렵 시냅스가 두꺼워지기 때문에 이때가 숫자 신경회로를 키우는 적기일지도 모른다. TV와 유튜브를 통해 어린아이들은 이미 수십 년 전의 인류가 체험하지 못했던 훨씬 많은 숫자에 노출되고 있다. 영어로, 일어로, 한글로 일, 이, 삼, 사와 같은 숫자가 다양하게 자라는 뇌를 자극한다. 엄마, 아빠, 언니를 배울 때 동시에 하나, 둘, 셋을 배워 숫자 신경회로도 함께 자란다. 숫자의 뇌와 언어의 뇌, 관계의 뇌가 서로 발달하며 얼기설기 회로가 복잡해진다.

어린이 시력 검사처럼 숫자 장애를 가진 아이의 뇌도 빨리 발견하고, 적절하게 자극해 정상적으로 자라도록 도울 수 있을까. 숫자를 담당하는 신경세포는 영어와 한국말로 된 숫자도 동시에 처리해야 한다. 적은 수의 신경세포가 숫자를 담당하고 있으니 너무 많은 말로 숫자를 가르치는 것보다 숫자의 논리적인 알고리즘을 신경회로에 담는 것이 나을 것이다. 수학하는 뇌는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신경회로에 학습시켜 스스로 작동하게 만들어야 한다.

■ 스스로 숫자 놀이를 하는 뇌

[전문가의 세계-뇌의 비밀] (13) ‘힘과 지혜의 상징’ 긴 머리카락…삼손은 수학도 잘했을까

뇌는 컴퓨터와 달리 스스로 규칙을 만들고, 학습하고 해답을 찾아간다. 뇌는 가장 보상이 큰 방법을 찾아서 해답에 가까이 다가간다. 어른 두뇌가 전체 에너지의 20% 정도를 소비하는 것에 비해 뇌가 가장 발달하는 시기의 아이들은 60% 가까이 뇌에서 에너지를 소비한다. 이 에너지는 대부분 새로운 신경회로를 만들고, 기존에 만들어진 신경회로를 고치거나 수정하는 데 사용된다.

뇌는 이 과정을 통해 가장 보상이 큰 신경회로만 남긴다. 이때 선택과 집중의 원리가 적용된다. 뇌의 모든 부위가 고르게 뛰어날 수 없는 이유는 뇌가 기본적으로 너무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기 때문일 것이다. 뇌의 한 부분이 과다하게 발달한다면 다른 영역은 에너지를 빼앗겨 발달이 더딜 것이다.

뇌가 에너지를 과다하게 소비하도록 유도하는 자극 중 하나가 언어다. 인간의 뇌는 언어를 통해 자극받고 스스로 학습한다. 인간의 언어는 인간의 뇌가 다양한 소프트웨어(기능을 가진 신경회로)를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운영 언어’인 셈이다. 예를 들어, 아이들은 지하철에서 이정표를 그대로 외우거나, 말로 자기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면서 관련된 신경회로를 갖추게 된다.

또 하나 중요한 뇌의 ‘운영 언어’가 숫자다. 숫자는 언어가 만들어지기 훨씬 전부터 존재했다. 2013년 스탠퍼드대 연구팀이 뇌전증 환자의 측두엽 근처에서 숫자를 보는 신경세포가 언어를 담당하는 세포와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보고한 적이 있다. 수는 언어와 독립적인 뇌의 운영 언어로 측두엽과 후두정피질, 전전전두엽에 이르는 신경회로가 숫자를 통해 세상을 볼 수 있도록 만든 뇌의 발명품일 것이다.

■ 뇌를 자극하는 머리카락

숫자를 처리하는 측두엽, 두정엽 바로 위에 사람만 특별히 긴 머리카락을 갖고 있다. 델릴라에게 머리를 깎여 힘을 잃어버렸던 삼손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긴 머리카락은 힘과 지혜를 상징해왔다. 베트남전쟁에 차출되었던 인디언 병사들이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자, 특유의 직관을 잃어버려 적군의 위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반대로 머리를 기르게 했을 때 한밤중에 잠을 자면서도 적군의 침투를 쉽게 눈치챘다고 한다.

우리도 얼마 전까지 긴 머리카락을 소중하게 여겨왔다. 머리카락은 사람만이 유일하게 가진, 뇌를 둘러싸고 있는 털이다. 머리카락은 신경이 피부 바깥으로 나온, 또 다른 신경조직이라 믿는 문화도 존재한다니 사람의 머리카락에 뭔가 중요한 것이 있을 것도 같다.

미국에서 박사후 연수과정을 밟을 때 마우스의 뇌 발달을 연구하던 중 피부에서 자라는 모낭세포에 흥미를 가진 적이 있다. 뇌가 가장 발달할 때 두피에서 모낭세포가(머리카락을 만듦) 폭발적으로 자랐다. 모낭세포는 뇌를 발달시키는 필수 성장단백질을 만들고 있었다. 연구 결과가 머리카락이 길어야 뇌가 좋아진다는 내용은 아니었다. 하지만 머리카락이 자라고 빠지는 데 관계되는 모낭 줄기세포가 피부뿐만 아니라 신체의 많은 장기가 필요로 하는 중요 성장단백질을 평생 만들어내 우리 몸을 보호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세상은 발달 중인 뇌를 자극하는 것이 똑똑한 아이로 키우는 방법이라며 선행학습을 시킨다. 다양한 놀이에 참여시키고, 운동 프로그램에 억지로 등록하라고도 한다. 그러나 뇌는 언어와 숫자를 통해 스스로 학습하며 발달한다. 특별한 장애가 없다면, 외부 자극이 아주 적어도 뇌는 스스로 충분히 발달한다.

학교도 가기 전에 억지로 공부를 시킬 생각이라면 차라리 아침 식사가 끝나고 유치원 다니는 아이의 머리카락을 묶어주면서 머리카락을 살짝 당겨주자. 머리 끝 피부가 자극되고 아래로 전달돼 귀밑 두개골을 지나 숫자 신경회로가 흥분할지도 모른다. 한국뇌연구원 책임연구원

▶필자 최영식

[전문가의 세계-뇌의 비밀] (13) ‘힘과 지혜의 상징’ 긴 머리카락…삼손은 수학도 잘했을까


1994년 서울대 분자생물학과를 졸업하고 2001년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에서 신경줄기세포 연구를 수행했다. 현재는 한국뇌연구원 책임연구원으로 뇌질환을 연구하고 있다. 줄기세포 연구와 초고해상도 이미징 기법을 접목하기 위해 전력을 쏟고 있으며, 마우스의 뇌를 아주 세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미래를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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