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000년 전 바닷속에서 뿜어나온 용암은 ‘제주의 왕관’이 됐다

2018.07.26 20:55 입력 2018.07.26 21:12 수정
문경수 과학탐험가

성산일출봉과 광치기 해변

제주의 대표적인 명소인 성산일출봉과 일출 모습. 성산일출봉은 앝은 수심의 해저 화산이 폭발하면서 분출한 뜨거운 마그마가 지하수나 바닷물과 만나 물이 끓으며 강한 폭발을 일으켜 터져나온 화산재가 쌓여 만들어진 수성화산이다. 성산일출봉은 수성화산으로서는 드물게 분화구의 내부구조와 침식에 의한 퇴적 과정을 뚜렷하게 볼 수 있다고 한다. 윤종운씨 제공

제주의 대표적인 명소인 성산일출봉과 일출 모습. 성산일출봉은 앝은 수심의 해저 화산이 폭발하면서 분출한 뜨거운 마그마가 지하수나 바닷물과 만나 물이 끓으며 강한 폭발을 일으켜 터져나온 화산재가 쌓여 만들어진 수성화산이다. 성산일출봉은 수성화산으로서는 드물게 분화구의 내부구조와 침식에 의한 퇴적 과정을 뚜렷하게 볼 수 있다고 한다. 윤종운씨 제공

해 뜨는 광경이 가장 아름다워 ‘제주 1경’으로 불리는 성산일출봉
내부구조 훤히 볼 수 있는 ‘수성화산체’…지질학적 가치도 세계적
남쪽으로 이어진 광치기 해변엔 4·3 당시 ‘집단학살’ 슬픈 역사도


탐험을 하며 많은 외국 과학자를 만났다. 그들은 한국에서 온 나에게 “제주도에 가봤냐”는 질문을 자주 했다. 당시 제주의 지질학적 가치를 잘 몰라 경관이 아름다운 제주의 몇 곳을 소개했다. 덧붙여 관광명소와 유명 카페, 레스토랑 정보를 말하니 그들의 표정이 어두웠다. 그리고 되묻기를 “한국에도 제주도처럼 과학적인 가치가 큰 섬이 있는데, 왜 해외를 탐험하느냐”고 물었다. 처음엔 한국에서 온 내게 인사치레로 하는 얘긴 줄 알았다. 하지만 그 후로 어느 지역을 탐험하든 비슷한 질문을 꼭 받았다. “제주도에 가봤냐”고.

매번 제주도는 아름다운 섬이라는 피상적인 답변만 하니 제주도에 대한 알 수 없는 부채감이 들었다. 이를 계기로 기회가 되면 제주도를 제대로 탐험해보기로 결심했다. 그러다 2009년 제주도와 형성 과정이 비슷한 하와이 빅아일랜드로 탐험을 갔다. 두 눈으로 액체 상태의 용암을 보고 싶었다. 지난 5월 다시 분출한 빅아일랜드의 킬라우에아 화산은 여전히 붉은 용암이 바닷물로 유입되는 장엄한 광경을 연출했다. 화산국립공원 내에 있는 재거박물관에 방문했다가 은퇴한 화산학자를 만났다. 그는 죽기 전에 마지막 소원이 제주도에 가보는 거라며 나를 반겼다.

도대체 팔순이 넘은 학자가 그렇게 말한 이유가 뭔지 궁금했다. 그는 세 가지를 얘기했다. 첫째, 제주도는 하와이와 형제 섬이라는 표현을 썼다. 두 섬 중앙에 있는 화산을 측면에서 보면 경사가 완만해 마치 방패를 뒤집어 놓은 모양을 닮았다. 그래서 방패화산 또는 순상화산이라고 부른다. 이는 끈적거리지 않는 현무암질 용암이 굳어졌기 때문이다. 순상화산은 마그마의 점성이 약해 용암이 바로 흘러버리기 때문에 완만한 형태를 만든다. 둘째로 곶자왈에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제주도 같은 화산섬은 내륙의 토양과 성분이 달라 작물 경작에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그 어려움 덕분에 화산섬에서만 자생할 수 있는 곶자왈 같은 독특한 생태 환경을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곶자왈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제주 사람들의 삶을 엿보고 싶다고 했다. 제주도를 경관이 아름다운 곳으로만 생각했던 나에게 그의 대답은 충격이었다. 그는 아름다운 경관 너머에 있는 지질학, 생태학, 인류학적 다양성의 보고로 제주를 바라봤다.

■ 수성화산체의 성지 성산일출봉

제주여행 일번지로 성산일출봉을 꼽는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성산일출봉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다. 살면서 한번은 여행을 통해 이곳을 거쳐 간다. 2007년 제주가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제주를 찾는 외국인 여행자에게도 성산일출봉은 특별한 장소가 됐다. 매표소 앞에서 올려다본 웅장한 분화구는 저절로 경건해지게 만든다. 성산일출봉은 약 5000년 전 현재와 비슷한 환경에서 얕은 수심의 해저 화산이 분출해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 뜨거운 마그마가 분출하다가 지하수나 바닷물을 만나 물이 끓으며 강한 폭발을 일으켜 터져나온 화산재가 쌓여 만들어진 수성화산이다. 분출 당시 마그마가 만나는 물의 양이 많으면 화산분출물은 젖은 채 하늘로 솟구치며 천천히 떨어져 경사가 가팔라진다. 이를 ‘응회구’라고 부른다. 성산일출봉은 대표적인 응회구 지형이다.

1963년 아이슬란드 남쪽 바다에서 대규모 화산 폭발로 만들어진 쉬르트세이섬을 통해 제주도 주요 화산체의 형성 과정을 엿볼 수 있다. 바닷속에서 용암이 분출해 섬이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고 물을 머금은 화산재와 수증기가 거대한 분수같이 솟구치며 몇 달간 격렬한 분출이 계속됐다. 화산학자들은 쉬르트세이섬의 분출 과정을 지켜보며 수성화산 활동이 무엇인지 처음으로 알게 됐다. 쉬르트세이섬이 만들어진 시간을 감안하면 성산일출봉이나 수월봉 같은 수성화산체가 만들어진 시간과 과정을 가늠할 수 있다.

지구상에 유사한 형태의 수성화산이 많지만 성산일출봉의 지질학적 가치는 가히 세계적이다. 연구에 따르면 대부분의 응회구는 한 차례의 분출로 생기는데, 성산일출봉은 세 번의 분출로 생겼다. 성산일출봉 동쪽에 있는 작은 바위섬인 새끼청산 부근을 중심으로 1차 화산이 분출돼 하부를 만들고, 서쪽에서 분출한 화산으로 중간부가 생겼다. 마지막으로 3차 분출에 의해 현재 왕관 모양을 하고 있는 정상부가 생겼다. 그 뒤 수천년간 성산일출봉은 매서운 제주바다의 파도, 바람의 영향으로 화산재 층이 깎여 나가 분화구의 내부구조와 침식에 의한 퇴적 과정을 뚜렷하게 볼 수 있다. 화산학자들에 따르면 성산일출봉처럼 수성화산체의 내부구조를 볼 수 있는 곳은 드물다고 한다. 하와이 오하우섬에 있는 다이아몬드헤드 화산은 규모 면에서 성산일출봉을 압도하지만 파도에 의한 침식작용이 덜해 화산체 내부구조를 자세히 볼 수 없다. 재거박물관에서 만난 화산학자가 왜 그토록 제주를 보고 싶어 했는지 어렴풋이 이해됐다.

정상부를 둘러보고 일출 명소로 유명해진 광치기 해변으로 자리를 옮겼다. 성산일출봉은 제주에서 해 뜨는 광경이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예로부터 제주 1경으로 불릴 만큼 아름다운 일출 광경은 보는 이로 하여금 뜨거운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광치기 해변은 일출 못지않게 성산일출봉 남쪽 해안 절벽의 뛰어난 자태를 볼 수 있는 포인트다.

일출봉에서 가장 쉽게 관찰할 수 있는 구조는 응회암 층들이 무수히 쌓여 만들어진 층리구조다. 화구에서 터져나온 화산재와 크고 작은 돌 부스러기들이 분화구 근처에 겹겹이 쌓이면서 점점 급경사를 이루는데, 이때 만들어질 수 있는 경사는 한계가 있다.

일반적으로 모래의 경우 30도, 자갈은 35도 이상의 경사가 만들어지면 물질이 그 위에 더 이상 쌓이질 못하고 무너져 내린다. 이러한 경사 각도를 안식각이라고 하는데, 일출봉의 응회암 층들이 보여주는 경사는 최대 45도에 이른다. 이는 일출봉의 화산재들이 분출할 때 물기를 머금었기 때문이다. 물기를 머금은 물질은 어느 정도의 끈기를 갖게 되고 안식각보다 가파른 경사를 만든다. 해변에서 축축한 모래로 다양한 모양을 만들 수 있는 것과 같은 원리다. 일출봉의 가파른 경사도 수성화산 활동의 산물인 셈이다.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 르 클레지오(작은 사진)의 제주기행문 가운데 4·3을 다룬 부분을 새긴 ‘제주 4·3기행문 기념비’. 성산일출봉 일출 명소인 광치기 해변에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성산읍사무소 제공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 르 클레지오(작은 사진)의 제주기행문 가운데 4·3을 다룬 부분을 새긴 ‘제주 4·3기행문 기념비’. 성산일출봉 일출 명소인 광치기 해변에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성산읍사무소 제공

■ 아름다움 뒤에 새겨진 슬픈 제주의 역사

광치기 해변의 아름다움 이면에는 슬픈 역사가 존재한다. 제주 4·3사건 당시 성산읍 주민들이 이곳에 끌려와 집단학살을 당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르 클레지오가 쓴 제주 4·3 기행문 기념비가 없다면 이토록 아름다운 해변에서 학살이 자행됐다는 사실을 믿기 어렵다.

그는 2008년 4·3사건과 제주 해녀, 돌하르방을 주제로 유럽 최대 잡지인 GEO 창간 30주년 특별호에 기고를 했다. 그는 “나는 그들이 순간에 느꼈을, 새벽의 노르스름한 빛이 하늘을 비추는 동안 해안선에 우뚝 선 바위의 친숙한 모습으로 향한 그들의 눈길을 상상할 수 있다. 냉전의 가장 삭막한 한 대목이 펼쳐진 곳이 여기 일출봉 앞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1948년 4월3일에 제주에서 군대와 경찰이 양민 학살을 자행한 진부한 사건으로 시작되었다”며 슬픈 감정을 표현했다. 우리도 잘 몰랐던 우리의 슬픈 역사가 이방인의 눈에 사무치게 느껴진 까닭은 무엇일까.

4·3사건 70주년인 올해 들어 국민적인 공감이 생겼지만 4·3은 뿌리 깊은 슬픔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많은 이들은 제주 일부 지역의 양민이 학살당한 사건 정도로 4·3을 이해했다. 어느 곳 하나 슬픈 역사를 간직했다고 보기 힘들 정도로 제주의 자연은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렇게 제주의 자연은 말없이 우리의 아픈 기억을 치유해 주고 있다. 제주에서 20년 가까이 사진기자로 활동한 제주민예총 강정효 이사장의 저서 <한라산 이야기>에 따르면 르 클레지오는 “새가 날다가 아름다운 곳을 찾았을 때 매일 오고 싶어 하는 마음으로 제주를 찾는다”는 문장으로 제주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이처럼 국경과 이념을 떠나 제주 자연이 발산하는 아름다움과 가치는 다르지 않다.

이쯤에서 생각해볼 문제다. 제주도는 왜 국내보다 해외에서 그 가치를 더 알아주는 걸까. 우리는 왜 비행기를 타고 한 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제주도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 걸까.

탐험가의 시선으로 생각해보면, 제주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크다. 서울 면적의 세 배에 달한다. 서울 사람 중에도 남산에 가보지 않은 사람이 태반이다. 자주 갈 수 없는 곳이니 해안도로 주변에 있는 관광지만 들르기에도 시간이 부족했을 거라고 명분을 찾아본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제주를 바라보면 되느냐고 누군가 물어볼 것이다. 과학자나 탐험가처럼 제주를 연구하고 탐험하라는 말은 아니다. 그저 제주의 과학자와 탐험가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들의 목소리를 내 가족에게, 친구에게 전달하는 작은 행동부터 시작해보면 어떨까. 작은 행동이 모인다면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섬 제주에 그치지 않고 전 세계인이 제주의 가치를 알게 되지 않을까. 우리가 지금 마주하고 있는 제주의 자연은 모진 풍화와 난개발 속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자연유산이다. 제주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귀한 섬이다.

▶필자 문경수

[전문가의 세계 - 문경수의 탐라도 탐험] (12)5000년 전 바닷속에서 뿜어나온 용암은 ‘제주의 왕관’이 됐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과학동아’에서 기자로 일한 과학탐험가다. 지난 10여년간 과학을 주제로 서호주·몽골·알래스카 등 지질학적 명소들을 탐험했다. 아시아인 최초로 미국 항공우주국(NASA) 우주생물학그룹과 과학탐사(2010년)를 했고, <효리네민박>(JTBC), <어쩌다 어른>(tvN), <세계테마기행>(EBS) 등에 출연했다. 저서로 <문경수의 제주과학탐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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