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오염수가 안전하다는 주장이 ‘과학적이지 못한’ 이유들

2023.06.15 22:18 입력 2023.06.15 22:20 수정
이종필 교수

(43) 후쿠시마 오염수와 과학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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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30여년 전 대학에 입학해 지금까지 과학을 공부하고 연구해왔지만 과학이란 대체 무엇인지, 과학의 본질은 무엇인지, 과학적이란 것은 대체 어떤 것인지 누가 묻는다면 한마디로 답을 내놓기가 어렵다. 단편적으로 떠오르는 단상들부터 모아보자면, 과학은 자연현상 속에서 보편적인 특성을 추구하는 학문이다. 보편성은 과학의 시작과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학과 철학의 구분이 없던 시절, 고대 그리스의 탈레스는 만물의 근원(arche)은 물이라는 명제로 신화와는 구분되는 자연철학의 시대를 열었다. 만물의 근원을 따져 물었다는 것은 만물의 보편적인 속성을 추구했다는 뜻이다. 후대의 자연철학자들은 탈레스와는 다른 답을 내놓았으나 탈레스의 기획만큼은 충실하게 따랐다. 내가 연구하는 입자물리학은 자연의 가장 최소단위에서 탈레스의 질문에 대한 답을 추구하는 분야이다. 근대과학을 확립한 뉴턴은 ‘보편중력의 법칙’을 발견했다. 예나 지금이나 과학자들은 궁극적으로 자연의 보편적인 법칙을 찾는 사람들이다.

과학의 본질이 보편성과 맞닿아 있기 때문에 과학활동은 보편성을 담보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 과정에서 보편성을 의심할 만한 요소가 있으면 최종적인 결과물을 ‘과학적’이라고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래서 과학은 결과라기보다 과정이며 방법론이다. 보편성이 담보되려면 나 이외의 다른 누구라도 나와 똑같은 조건에서 똑같은 과정을 따랐을 때 똑같은 결과를 얻어야만 한다. 이를 흔히 재현 가능성이라 부른다. 따라서 과학활동의 기본은 ‘레시피의 투명한 공개’라고 할 수 있다. 과학자들은 자기만의 레시피를 공공연하게 떠벌리기를 좋아한다. 그래야만 다른 사람들을 통해 자기가 얻은 결과의 보편성을 증명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과학자의 보람이다. 나의 결과가 임의의 제3자를 통해 재현 가능하려면 나의 레시피가 다른 누구에게나 재현 가능한 방식으로 공개돼야만 한다. 그래서 과학활동에서는 정량분석이 중요하다.

특정 시료만 채취해 일본 장비 투입하고 원전 단체가 검증 참여
과정 불투명하고 제3자 재현 가능하지 않다면 ‘일방적’일 뿐

‘레시피의 투명한 공개’는 자기만의 비법을 숨기려고 하는 마술사나 음식점 주인 또는 기업 사장들과는 전혀 다른 과학자들만의 독특한 특성이다. 이는 과학과 사이비 과학을 가르는 일차적인 기준이 되기도 한다. 나만의 비법으로 이런 결과를 얻었으니 믿으라고 하는 것은 전혀 과학적이지 않다. 과학은 열린 과정을 전제로 한다. 닫힌 과정은 과학과 상극이다.

최근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놓고 ‘과학적’이라는 말이 세간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사고가 난 후쿠시마 원전에서 녹아내린 핵연료를 식히기 위해 투입된 물이 오염물질을 머금고 나온 것이 오염수이다. 여기에는 주변을 지나는 지하수도 일부 포함돼 있다. 일본은 다핵종제거설비(ALPS)라는 장치를 거친 오염수는 안전하다고 주장한다. 또한 ALPS로 걸러지지 않는 방사성탄소와 삼중수소는 기준치 이하로 묽게 희석시켜 바다로 방류하면 괜찮다는 입장이다.

만약 여기서 말하는 ‘과학적’이라는 단어가 어떤 물질이 기준치 이하라서 괜찮다는 의미로 쓴 거라면 이는 ‘과학적’이라는 본래 의미의 극히 일부만 참칭한 것에 가깝다. 과학의 본질은 어떤 숫자 형태로 제기된 결과물이 아니라 그 결과의 보편성 여부이다. 일본의 그런 주장이 어떤 과정을 거쳐 나왔는지, 그 과정과 결과가 임의의 제3자에 의해 검증되고 재현 가능한 것인지 따져봐야 비로소 과학적이라는 판정을 내릴 수 있다. 그전까지는 그저 누군가의 일방적인 주장에 불과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과연 일본이 자기 주장의 보편성을 확보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가이다. 그것이 과학의 본질이다. 일본의 ALPS는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업체가 만든 장비로 후쿠시마에 처음 투입되었다. 그렇다면 ALPS를 거친 오염수에 위험물질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더욱 엄격하게 검증할 필요성은 높아진다. 실제로 도쿄전력에서도 인정했듯이 ALPS를 거친 오염수 속에서 위험물질이 제대로 걸러지지 않았다. 도쿄전력은 오염수를 ALPS로 여러 차례 거르면 위험핵종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완전히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다.

원전사업자와 이해관계에 있는 IAEA가 괜찮다는 건 ‘안 괜찮아’
과학의 본질인 보편성 담보 위해 ‘해야 할 것’ 당당히 요구해야
일본에 아무 말도 못하면서 괴담 운운…이게 나라냐 묻고 싶어

마침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이 작업을 수행하고 있으며 곧 최종결과가 발표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IAEA의 검사결과가 괜찮다고 나오면 오염수는 ‘과학적’으로 안전한 것일까?

다시 과학의 본질인 보편성의 관점에서 평가하자면, IAEA의 결과는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염수의 안전성을 보편적으로 확증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IAEA는 원전 사업자들과 특수한 이해관계에 있는 국제기구이기 때문이다. IAEA는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권장’하는 국제기구이다. 이는 마치 월드컵 결승전 주심이 특정팀과 같은 나라 출신인 것과도 비슷한 상황이다. 그 심판이 아무리 공정하게 경기를 운영하는 지구 최고의 심판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그 경기의 결과를 공정하다고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현실에서는 애초에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심판이 배정된다. 따라서 보편성이 확보되려면 원전사업과 이해관계에 있지 않은 다른 과학자들, 심지어 원전사업이나 일본에 가장 비우호적인 전문가들의 검증을 이겨내야 한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의 검증을 이겨냈다면 다른 어떤 제3자의 검증도 통과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그런 시도가 없지 않았다. 일본의 오염수 방류를 반대하는 태평양 도서국들의 자문단 과학자들은 일본의 데이터 자체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했으며 객관적인 검증을 위해 더 광범위한 자료 공개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와 관련해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몇 가지 있다.

첫째, 국내 언론 보도(JTBC, 6월6일)에 따르면 IAEA가 일본의 오염수 처리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중간 보고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시료 채취에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간단히 말해 시료를 채취할 때 오염수를 충분히 섞지 않고 오염수 탱크의 윗부분에서만 시료를 채취했다는 것이다. 이는 도쿄전력 관계자도 시인한 사실이다. 이렇게 되면 시료가 ‘오염수의 보편성’을 확보했다고 보기 어렵다.

둘째, 일본이 오염수 샘플 채취를 자유롭게 허용하지 않고 있다. 한국 시찰단도 원하는 시료를 가져오지 못했다. 이는 ‘레시피의 투명한 공개’를 거부하는 마술사나 식당 주인의 입장과 다르지 않다.

셋째, 결국엔 그렇게 ALPS로 처리한 오염수가 바다로 흘러갔을 때 해양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제대로 연구되지 않았다. 일본의 오염수 방류는 앞으로 거의 30년 가까이 진행될 예정이다. 유해핵종이 걸러졌다 하더라도 100% 제거되지 않은 상태에서 오랜 세월 지속적으로 방류했을 때 해양생물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일본의 오염수 방류 자체가 인류 역사상 최초의 사건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불확실한 데이터로 막연하게 훗날 어떠하리라 추정하는 것은 과학적으로 완전하지 못하다. 궁극적으로 자연에서 실제 일어나는 현상과 비교해야만 한다. 그게 과학이다.

따라서 ALPS를 거친 오염수가 방사성탄소나 삼중수소를 제외한 나머지 유해핵종을 걸렀으니 안전하다는 일본의 주장은 지금 수준에서는 과학적으로 검증된 팩트라고 보기 어렵다. 세간에서 주로 논란이 되는 것은 이런 근본적인 문제라기보다 삼중수소에 집중돼 있는 듯하다. 일본이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삼중수소는 후쿠시마 오염수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를 가리는 성동격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삼중수소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삼중수소는 반감기가 12년 남짓이다. 오염수를 10여년 더 탱크에 저장해두면 삼중수소를 절반 가까이 줄일 수 있다. 돈이 더 들기는 해도 그게 인류 전체에 이득이다. 그러니까 일본의 오염수 방류는 가장 값싸고 쉬운 방법으로 오염수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에 불과하다. 오염수 방류는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다.

과학의 영역을 벗어나 또 하나 생각해볼 문제가 있다. 일본의 오염수 방류는 대단히 좋지 못한 선례를 남긴다는 점이다. 만약 중국의 황해 연안에 위치한 핵발전소에서 문제가 생겨 심각한 오염물질을 일본과 마찬가지로 물로 희석해 바다에 버리겠다고 하면 그땐 국제사회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핵발전소를 운영하는 나라들이 너도나도 일본의 사례를 따라 위험물질을 바다에 버리기 시작하면 어떻게 될까?

어느 한 시점을 정해서 바닷물 속 오염물질의 농도가 얼마 이하로 낮다고 말하는 것은 그 자체로 과학적 사실이다. 그러나 그걸 바다에 버려도 괜찮은가 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한순간의 파편적인 과학적 사실이 이후에 벌어질 모든 현상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은 아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 생태계 영향 등 또 다른 과학의 문제도 따져봐야 하는 데다 해양투기라는 행위는 그 자체로 정치외교적인 사안이기 때문이다.

사실 일본은 1990년대에 러시아가 핵폐기물을 몰래 동해에 버리는 행위에 대해 강력하게 항의한 바가 있다. 그 결과로 런던협약이 강화돼 핵폐기물의 해양투기는 금지돼 있는 실정이다.

일본의 오염수 방류를 앞두고 보이는 한국 정부와 언론의 태도 중에 아쉬운 점이 하나 있다. 오염수 방류가 우리에게 정말로 해를 끼치든, 끼치지 않든 방류한다는 사실 자체 때문에 우리가 지불해야 할 비용이 막대할 것이라는 점이 간과되고 있다. 당장 수시로 우리 해역의 바닷물과 수산물, 그리고 일본산 수산물에 대한 방사능 검사를 강화해야 한다. 여기에는 세금과 행정력이 투입된다. 벌써 여기저기서 소금이나 해산물을 비축하는 움직임도 보인다. 바다에서 작전을 수행하는 해군도 예외는 아니라고 한다. 이 모든 가시적인 비용 말고도 한국 어민과 국민들이 느끼는 불안감은 수치로 환산할 수 없는 또 다른 비용이다. 그렇다면 한국 정부는 적어도 이와 관련해 일본 정부에 보상을 요구해야 하지 않을까? 일본에는 아무 말도 못하면서 의혹을 제기하는 국민들에게 오히려 왜 괴담을 유포하냐고 협박하는 모습에 ‘과연 이게 제대로 된 나라냐’고 묻고 싶다.

이종필 교수

[전문가의 세계 - 이종필의 과학자의 발상법] 후쿠시마 오염수가 안전하다는 주장이 ‘과학적이지 못한’ 이유들


1971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1990년 서울대 물리학과에 입학했으며 2001년 입자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연세대·고등과학원 등에서 연구원으로, 고려대에서 연구교수로 재직했다. 2016년부터 건국대 상허교양대학에서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신의 입자를 찾아서> <대통령을 위한 과학 에세이> <물리학 클래식> <이종필 교수의 인터스텔라> <빛의 속도로 이해하는 상대성이론> 등이 있고, <최종이론의 꿈> <블랙홀 전쟁> <물리의 정석> <스티븐 호킹의 블랙홀> 등을 우리글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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