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파묘’의 과학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는 탈레스와 ‘질병은 악령의 장난’이라 생각한 히포크라테스…다르지만 닮은 명리학과 뉴턴역학
영화 <파묘>가 불러일으킨 ‘반일 논쟁’에 풍수 전문가들도 “쇠말뚝만으로 한 나라 기운 바꾸지 못해” 주장
우리를 더욱 아프게 하는 건 ‘제3자 변제’·‘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같은 동족이 박은 쇠말뚝이다
묫자리를 둘러싼 기묘한 사건을 다룬 영화 <파묘>가 올해 첫 천만관객을 돌파한 영화로 기록되었다. 초자연적인 현상을 다룬 오컬트 영화가 한국에서 관객 1000만명을 돌파한 것은 이례적이다. 게다가 <파묘>는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에서도 연일 한국영화 흥행기록을 갈아치우며 무서운 기세로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파묘>가 처음 개봉했을 때는 소위 ‘좌파영화’니 ‘반일영화’니 하는 논란도 있었고, 사실도 아닌 일본 쇠말뚝 이야기를 영화에 끌어들였다는 비난도 있었다. 일본의 잘못을 지적하는 행위가 ‘반일’로 비난을 받아야 하는 일인지도 궁금하거니와, 원래 허구인 영화에 다큐멘터리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사실이 아닌 것으로 치자면 쇠말뚝보다야 일본 오니가 걸어 다니고 도깨비불이 되어 하늘을 날아다니는 장면이 더욱 심각하지 않을까? 결과적으로는 그런 논란들이 오히려 노이즈 마케팅 역할을 하며 흥행에 더 큰 도움이 된 듯하다.
풍수나 무속행위가 과학적이지 않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뭔가가 과학적이다, 또는 과학적이지 않다는 판정을 내리는 일이 항상 쉽지는 않다. 과학이란 대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정의하는 일이 어렵기 때문이다. 과학은 좁게 말해 서유럽이라는 지역에서 16~17세기에 형성된 특정한 지식체계이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오래전 고대 그리스에서는 자연철학자라 불리는 사람들이 ‘과학의 원조’를 정립하고 있었다.
철학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기원전 7세기 밀레토스 지방의 탈레스는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는 유명한 명제를 남겼다. 놀랍게도 탈레스는 어지간한 교양과학책이나 과학사 교과서에서도 앞부분을 장식하는 인물이다. 과학이 철학에서 완전히 갈라지기 전에는 이른바 자연철학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탈레스는 과학의 역사에도 당당히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과학의 연원을 탈레스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이유는, 사람들이 여전히 신화나 주술적인 이야기에 매몰돼 있을 때 탈레스는 자연의 근원적인 요소(‘아르케’)가 무엇인지 따져 물었기 때문이다. 탈레스 이후의 철학자들도 탈레스의 기획에 따라 만물의 근원이 무엇인지 자신만의 답을 내놓았다. 엠페도클레스가 제시한 4원소설(흙, 물, 불, 공기)은 중세 이후까지 오랜 세월 서구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다.
놀랍게도 만물의 근원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은 20세기를 거쳐 21세기에도 나처럼 입자물리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질문으로 남아 있다. 20세기의 과학자들이 제시한 ‘표준모형(standard model)’이라는 모범답안에 따르면 이 세상을 구성하는 기본입자는 쿼크와 전자 등 무려 17종에 이른다. 2600여년 전과 비교해 답은 달라졌으나 질문은 여전히 똑같다.
후대의 플라톤은 여기에다 수학적인 구조물을 도입했다. 즉, 플라톤은 다섯 개의 정다면체(정사면체, 정육면체, 정팔면체, 정십이면체, 정이십면체)를 4원소와 우주 전체에 대응시켜 그 성질을 설명했다. 예컨대 흙은 4원소들 중에서 가장 덜 움직이고 안정적이어서 정육면체를 대응시키는 식이었다. 현대적인 감각과는 전혀 맞지 않지만, 자연의 대상물에 수학적인 구조물을 대응시킨다는 발상은 지금도 여전히 과학자들이 고수하고 있다.
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히포크라테스의 경우도 비슷하다. 그때까지 사람들은 질병이란 악령의 장난이나 신의 형벌로 생각했다. 이런 생각은 유럽에서 무려 17세기까지도 지속되었다. 히포크라테스는 혈액, 황담즙 등의 네 가지 체액이 균형을 잃으면 질병에 걸린다는 4체액설을 주창했다.
중세 이후까지 2000여년 동안 서구 사회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자연철학자는 역시 아리스토텔레스였다. 코페르니쿠스와 케플러, 갈릴레이를 거쳐 뉴턴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과학혁명’이 완성되는 과정은 아리스토텔레스를 극복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관에서 보이는 중요한 특징은 목적론적인 세계관이다. 만물은 자신들만의 고유한 목적, 즉 그 본성을 위해 존재한다. 물체가 자신의 본성을 따라 움직이는 운동을 본성적 운동이라 한다. 흙은 무겁다는 그 본성을 따라 무거움의 중심인 지구로 향하고, 불은 가볍다는 그 본성을 따라 천상으로 올라간다. 본성적 운동에서 물체의 운동을 야기하는 것은 그 운동의 목적이라는 내적 동인이다.
갈릴레이나 뉴턴은 목적론적인 세계관을 벗어나 기계적이고 인과적인 방식으로 자연현상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왜’라는 목적론적 방식이 아니라) 기술하는 방식으로 접근했다. 예컨대 뉴턴의 유명한 운동 제2법칙에서는 힘을 운동량의 시간에 대한 변화라는 식으로, 운동에 대한 현상적 효과를 기술하는 방식으로 힘을 정의한다.
이런 맥락에 비추어 보자면 묫자리를 잘 쓰면 조상님의 은덕이 후손까지 이어진다거나 귀신과 소통해 현상을 파악한다는 주장은 고대 그리스의 자연철학 이전의 세계관에 해당한다. 영화 <파묘>에서도 나오는 이야기로, 오행(금수화목토) 사상의 이른바 상생상극 관계에 따라 금(金)이 목(木)을 극(剋)한다거나 그와 반대로 역극(逆剋)이 일어난다거나 하는 주장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인 세계관과 닮았다.
물론 서구에서도 주술적이고 신화적인 논리가 중세 이후까지 매우 오래 (어쩌면 지금까지도) 큰 영향을 끼쳤다. 근대과학을 확립한 뉴턴조차도 역학이나 천체의 운동보다 연금술에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보냈고 성경 속에 숨겨진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었다. 신앙심이 깊었던 뉴턴이 자신의 역작인 <프린키피아>를 쓴 것은 다소 역설적이게도 신의 위대함을 증명해 보이기 위함이었다. 뉴턴 같은 위대한 과학자가 연금술에 매진했던 것이 이상하다기보다, 마지막 세대의 연금술사이면서 독실한 신앙인이었던 뉴턴이 <프린키피아>라는 위대한 과학서를 남긴 것이 오히려 놀랍다고 하는 것이 현실에 더 가까울 것이다. 17세기의 영국에서는 여전히 신의 저주와 심판, 그에 따른 세상의 종말, 잔인하고 야만적인 형벌 등이 횡행했었다.
그렇게 과학의 전성시대를 열었던 뉴턴역학도 원리적으로는 사주명리학과 닮은 구석이 있다. 바로 결정론적이라는 면에서 그렇다. 뉴턴역학에서는 모든 물체의 초기조건과 거기 작용하는 모든 힘을 알고 있으면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 사실 우리가 ‘과학’이라고 하면 쉽게 떠올리는 심상은 대체로 뉴턴역학의 결정론적인 세계관이다. 실제로 뉴턴역학은 행성의 미래 위치를 정확하게 예측하며 심지어 아직 관측되지 않은 천체의 존재와 그 위치까지도 정확하게 알아내기도 했다. 이런 식의 결정론은 한 사람이 태어난 생년월일시의 정보로 그 사람의 인생 길흉화복을 예견하는 사주명리학에서도 비슷하게 작동한다.
20세기에 형성된 현대물리학은 사뭇 다르다. 원자 이하의 미시세계를 관장하는 원리인 양자역학은 결정론적이지 않고 모든 것이 확률론적이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어떤 현상이 일어날 확률분포뿐이다. 또한 불확정성의 원리 때문에 임의의 정확도로 어떤 입자의 초기조건을 모두 정확하게 알 수도 없다.
1000만이 넘는 관객이 영화 <파묘>를 즐긴 것은 쇠말뚝의 진실을 몰라서도, 풍수나 무속이 비과학적임을 몰라서가 아니다. 심지어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은 ‘듄’과 같은 과학을 가장한 허구적인 이야기(Scientific Fiction)도 즐긴다.
실제 풍수전문가들도 쇠말뚝을 박는 정도로는 한 나라의 기운을 바꾸지 못한다고 한다. 풍수의 논리는 제쳐두고, 간단한 물리적인 추론으로 쇠말뚝의 영향을 예상해 볼 수도 있다.
한반도의 길이는 남북으로 대략 1000㎞다. 여기에 지름 30㎝, 길이 10m짜리 쇠말뚝을 박았다고 해 보자. 이를 사람 크기로 환산해 보면 어떻게 될까? 계산의 편의상 사람의 크기를 간단하게 1m라 하면 한반도의 길이와 100만배 차이가 난다. 따라서 지름 30㎝에 길이가 10m인 쇠말뚝은 지름 0.3㎛에 길이가 0.01㎜인 금속조각에 해당할 것이다. 이 정도면 눈에도 잘 보이지 않는 아주 조그만 가시 같은 물체가 피부에 박히는 상황이다. 다소 불쾌한 기분이 들 수는 있겠지만 한 사람의 건강 상태를 크게 바꿀 정도는 아닐 것으로 예상된다. 사람을 호랑이로 바꾸더라도, 그렇게 조그만 가시가 호랑이의 허리를 끊어버릴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우리가 눈감지 말아야 할 또 다른 진실도 존재한다. 일제가 풍수목적이 아닌 이유로 쇠말뚝을 박아 측량을 하려고 했다면, 그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역사가 증명하듯 그것은 바로 식민지 조선을 체계적이고 ‘과학적으로 수탈’하기 위함이었다. 일제가 차라리 오직 풍수 목적으로만 쇠말뚝을 박고 ‘과학적인 수탈’을 하지 않았다면 우리 선조들의 삶이 그리 모질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우리에겐 미신적인 쇠말뚝보다 과학적인 쇠말뚝이 더욱 아프다.
더더욱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은 같은 동족이 박은 쇠말뚝이다. 일제강제징용피해자들에게 일본 전범기업이 배상하라는 우리 대법원의 판결을 정부가 무시하고 제3자 변제라는 해괴한 방책을 제시한 것도 쇠말뚝에 해당한다. 이것은 현재진행형인 고통이며 피해자에 대한 정부의 명백한 2차 가해이다. 육군사관학교가 홍범도 장군 등 독립지사들의 흉상을 철거한 것도 국민들의 가슴에 쇠말뚝을 박은 행위였다.
그뿐인가.
국립묘지에는 아직도 수많은 친일파들이 정말 쇠말뚝처럼 양지바른 곳에 묻혀 있다. 얼마 남지 않은 총선에서 그런 쇠말뚝을 모조리 ‘파묘’하겠다는 공약을 내거는 정당이 하나도 없다는 현실이 내 가슴에 또 다른 쇠말뚝으로 박힌다.
1971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1990년 서울대 물리학과에 입학했으며 2001년 입자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연세대·고등과학원 등에서 연구원으로, 고려대에서 연구교수로 재직했다. 2016년부터 건국대 상허교양대학에서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신의 입자를 찾아서> <대통령을 위한 과학 에세이> <물리학 클래식> <이종필 교수의 인터스텔라> <빛의 속도로 이해하는 상대성이론> 등이 있고, <최종이론의 꿈> <블랙홀 전쟁> <물리의 정석> <스티븐 호킹의 블랙홀> 등을 우리글로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