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정신’과 ‘봅슬레이 빌려준 죄’

2014.03.04 21:03

올림픽에서 상대 선수를 돕는 것은 진정한 올림픽 정신의 구현일까, 아니면 반국가적 행위일까.

독일 봅슬레이연맹은 2014 소치 동계올림픽 봅슬레이 2관왕에 오른 알렉산더 주브코프(러시아)에게 썰매를 빌려준 마누엘 마하타(30·독일)에게 지난 3일 1년 자격정지와 벌금 5000유로(약 735만원)를 부과하는 중징계를 내렸다. 마하타는 2011년 세계선수권에서 4인승 금메달을 딴 독일의 간판 봅슬레이 선수다. 소치올림픽 출전권을 따는 데 실패한 마하타는 이후 개인 소유 장비를 주브코프에게 임대해줬는데, 이 사실을 독일 연맹에 알리지 않은 게 징계의 빌미가 됐다.

소치올림픽 개막식 때 러시아 기수로 나선 주브코프는 빌린 썰매로 2인승과 4인승을 휩쓸며 단숨에 최고 스타가 됐다. 반면 독일 대표팀은 1964년 인스부르크올림픽 이후 처음으로 노메달에 그쳤다.

독일의 마누엘 마하타에게 장비를 빌린 러시아 봅슬레이 4인승 대표팀이 소치올림픽에서 1위가 확정되자 환호하고 있다.  소치 | AP연합뉴스

독일의 마누엘 마하타에게 장비를 빌린 러시아 봅슬레이 4인승 대표팀이 소치올림픽에서 1위가 확정되자 환호하고 있다. 소치 | AP연합뉴스

독일 봅슬레이연맹 트라우트만 회장은 “마하타의 행위가 연맹의 이익을 심각하게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독일 자동차 산업의 첨단기술을 적용해 자국 선수들에게 지원한 썰매를 유출했기 때문이다. 그는 “봅슬레이 장비가 과거에 국제적으로 거래됐다는 사실을 잘 안다”면서 “하지만 우리는 이번 사례를 독일 스포츠 선수들이 지켜야 할 확실한 규율을 세우고 국가의 이익을 지키는 첫 발걸음으로 삼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독일 연맹은 곧바로 비판에 직면했다. 이 조치가 부당하다고 여기는 팬들이 페이스북을 통해 ‘올림픽 정신에 어울리는 정당한 행위’라며 마하타를 보호하기 위한 청원을 벌이고 있다.

올림픽에서 경쟁 선수들을 돕는 일은 ‘올림픽 정신’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다. 당장 이번 소치올림픽에서도 그런 사례가 여러 차례 있었다. 독일 바이애슬론 선수가 러시아 선수들로부터 장비를 받아 무사히 경기를 치렀고, 캐나다 크로스컨트리 코치는 경기 중 장비 고장으로 곤경에 빠진 러시아 선수에게 스키를 빌려줘 박수를 받았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독일의 루츠 롱그가 제시 오웬스(미국)에게 멀리뛰기 비법을 알려줘 그에게 금메달을 내주고 정작 자신은 은메달에 머문 이야기는 독일인들이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올림픽 정신 실천 사례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1964년 인스부르크올림픽 때 장비 고장을 일으킨 영국 봅슬레이 대표 선수들에게 자신의 썰매에서 볼트를 빼 빌려준 유제니오 몬티(이탈리아)의 올림픽 정신을 높이 사 이때부터 쿠베르탱 메달을 수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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