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려날까봐… 치료실 기피하는 선수들

2010.06.20 17:44 입력 2010.06.21 01:58 수정
루스텐버그 | 김기봉 기자

아파도 아파할 수 없다.

축구선수에게 최고의 무대인 월드컵. 자칫하면 일생에서 단 한 번일 수도 있는 영광의 무대에서 뒤로 밀려날지 모른다는 절박감에 태극전사들이 숨죽이고 있다.

나이지리아전 베스트 11을 놓고 23명의 축구대표팀 선수들이 비장한 각오로 소리없이 치열한 경쟁을 계속하고 있다.

대표팀 관계자는 “요즘 치료실이 너무 한가하다. 하루가 멀다하고 치료실을 찾아오던 선수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며 “주전 선수들은 괜히 아프다고 했다가 자리에서 밀려날까봐 걱정돼서 그렇고, 백업요원들은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다고 하면 뛸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봐 아파도 참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축구선수들에게 몸은 생명이다. 격렬한 축구에서 부상은 다반사다. 그래서 더 큰 부상을 막기 위해 제때 치료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고 부상 예방 효과도 있어 선수들은 치료실을 밥먹듯 찾는다.

대표선수 부상 관리는 주치의인 송준섭 박사가 책임지고 있다. 송 박사는 선수들의 부상 정도를 파악해 매일 허정무 감독에게 보고한다. 선수들은 혹시라도 자신의 안좋은 몸 상태가 허 감독에게 전해져 경기에 뛰지 못할 것을 우려해 최근들어 치료실을 기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치료실은 그동안 선수들의 사랑방이었다. 태극전사들은 베이스캠프인 루스텐버그의 헌터스레스트호텔에서 1인1실을 써서 따분함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치료실에 모여 피로한 근육을 풀며 수다도 떨고 정보교환도 해왔다.

그런데 월드컵 본선에 돌입하면서 발걸음이 하나둘씩 뜸해지더니 아르헨티나전 참패 뒤에는 치료실이 때아닌 ‘불경기’를 맞은 것이다.

이뿐 아니다. 경기 중 선수가 다쳤을 때 종종 볼 수 있었던 팀닥터의 ‘바람 같은 질주’도 본선에서는 볼 수 없었다. 우리 선수들이 크게 다친 적이 없어서 그렇기도 했지만, 괜한 부상 걱정을 일으켜 자칫 허 감독의 눈밖에 날 것을 우려한 것 같다는 게 관계자의 분석이다.

“주치의 송 박사가 ‘오랫동안 쓰러져 있는 선수가 한 명도 없어 TV에 나올 기회가 없다’고 투정한다”는 우스갯소리에서 선수들의 비장한 각오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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