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몬·건포도·후추·생강·꿀 머금은 아주 특별한 ‘쌀술’··· 오묘한 맛으로 ‘술스타그램’ 달구는 마포 구름아양조장

2020.02.14 14:31 입력 2020.03.03 17:09 수정
글·사진 김형규 기자

서울 마포의 구름아양조장에서 만든 술 ‘사랑의 편지’와 ‘만남의 장소’. 두 술 모두 약주와 탁주라는 전통주의 범위를 훌쩍 뛰어넘는다.

서울 마포의 구름아양조장에서 만든 술 ‘사랑의 편지’와 ‘만남의 장소’. 두 술 모두 약주와 탁주라는 전통주의 범위를 훌쩍 뛰어넘는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만 예약을 받고 완성되면 직접 양조장에 찾아가 받아야 하는 술이 있다. 모든 공정을 수작업으로 진행해 한 번 술을 담그면 많아야 300여병이 나오는데, 지난달 예약 공지가 뜨자마자 이틀 만에 동이 났다고 한다.

클릭 한 번이면 뭐든 문 앞까지 배달되는 세상에 누가 그렇게 술을 사먹을까 싶은데 술 찾으러 손님들이 귤이며 잣이며 선물까지 싸들고 온단다. 한 병에 2만7000원으로 가격도 비싼 편인데 인기가 대단하다. 어떤 술인지 너무 궁금해 서울 마포구 구름아양조장을 직접 찾아가 맛봤다.

술 이름이 ‘만남의 장소’다. 사람들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술의 본질을 짚었다. 라벨에 새겨진 사람 얼굴은 반가사유상에서 따왔다는데, 기쁜 건지 슬픈 건지 둘 다인지 쉽게 가늠하기 힘든 표정이 꼭 술 마신 뒤 우리들 모습 같다.

술맛은 더 오묘했다. 작은 잔에 따라 조금씩 홀짝이니 산뜻한 신맛에 톡 쏘는 느낌이 강렬했다. 쌀에서 우러나온 짜고 쌉쌀한 맛도 느껴졌다. 큰 잔에 얼음을 타서 희석하니 한 모금 넘길 때마다 맛과 향이 미묘하게 달라졌다. 허브 같은 냄새도 나고 마시고 나면 은근하게 몸이 달아올랐다.

분명 막걸리인데, 지금껏 맛본 막걸리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마구 들이켜는 술이 아니었다. 섬세했다. 만든 사람은 ‘쌀술’로 불러달라고 했다. 막걸리에 덧씌워진 여러 부정적 편견 없이 새로운 술처럼 음미해달라는, 그러면 더 많은 장점이 보일 것이라는 당부와 기대이리라.

‘쌀술’인 만남의 장소에는 레몬과 건포도, 후추와 생강, 꿀 등 다양한 부재료가 들어간다. 술잔에 통후추를 갈아 뿌리고 트러플 오일 한 방울을 더하니 맛과 향이 증폭되며 ‘한 잔의 요리’로 변했다.

‘쌀술’인 만남의 장소에는 레몬과 건포도, 후추와 생강, 꿀 등 다양한 부재료가 들어간다. 술잔에 통후추를 갈아 뿌리고 트러플 오일 한 방울을 더하니 맛과 향이 증폭되며 ‘한 잔의 요리’로 변했다.

‘만남의 장소’는 삼양주로 빚는 탁주다. 멥쌀가루를 뜨거운 물에 익반죽한 쌀범벅에 누룩을 더해 두 번 발효시키고 중간에 고두밥을 한 번 더 넣어 총 세 번 발효를 거친다.

쌀은 철원 오대미를 쓴다. 한 달간 이어지는 마지막 발효 직전에 레몬과 건포도, 통후추와 생강 등 부재료를 넣는다. 일반적인 탁주에서 보기 힘든 재료다. 독특한 향과 복합적인 맛이 거기서 나온다. 발효 안정성을 위해 꿀도 조금 넣는다.

구름아양조장의 첫 술이었던 ‘사랑의 편지’도 분류상으론 전통주 중 약주에 속하지만 그런 범주를 우습게 벗어나는 술이다. 멥쌀과 찹쌀을 바탕으로 하면서 천도복숭아로 맛을 잡고 꿀과 건포도, 레몬으로 풍미를 더한 술은 ‘한국판 내추럴와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해 12월 출시되자마자 250병이 전부 강남의 파인다이닝 레스토랑과 전통주 전문점 등에 비싼 값에 팔려나갔다. 매장에서 맛을 보고 ‘어떻게 구하냐’고 묻는 손님이 지금도 많다. 운 좋게 양조장에 남아있던 원주를 한 모금 시음해봤는데 복숭아 한 알을 그대로 응축한 것 같은 녹진한 단맛이 입안에 밀려들었다. 복숭아 나오는 올여름까지 기다리기에는 조바심 나는 맛이었다.

서울 마포구 구수동 주택가에 자리 잡은 구름아양조장

서울 마포구 구수동 주택가에 자리 잡은 구름아양조장

구름아양조장은 지난해 초 문 연 젊은 회사다. 술은 양유미(33)·이두재(34) 양조사가 제조부터 판매까지 도맡는다. 두 사람은 전통주를 빚기 전 서양의 꿀술인 ‘미드’(mead)를 만들어 큰 성공을 거둔 바 있다. 이들이 ‘곰세마리양조장’에서 만들어 판 ‘어린 꿀술’은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SNS에 소개하며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미쉐린 가이드에 소개된 유명 레스토랑들에도 술을 납품했다.

구름아양조장은 요즘 잣, 단호박, 감귤 등 다양한 부재료를 활용한 술을 내놓기 위해 실험 중이다. 고객과 함께하는 ‘나만의 술 빚기’ 같은 체험프로그램도 준비 중이다. 추억이 담긴 음식이나 함께 마시고 싶은 사람 등 개인의 취향과 사연을 반영해 1:1로 술을 만들어보는 코스다.

구름아양조장의 술을 구입하려면 인스타그램(@gurumabrewery) 계정을 유심히 살펴야 한다. 술이 완성돼 공지가 올라오면 잽싸게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 양조장을 방문해 술을 구입하면 종이상자 대신 여러 용도로 재활용할 수 있는 예쁜 면주머니에 담아 준다. 함께 주는 엽서는 한마디 적어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하기 딱 좋다.

우리나라에 술을 빚는 양조장이 2000곳이 넘는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전통주인 막걸리와 청주·소주, 그리고 와인에 맥주까지 우리땅에서 난 신선한 재료로 특색 있는 술을 만드는 양조장들이 점차 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이 전국 방방곡곡 흩어져 있는 매력적인 양조장을 직접 찾아가 소개하는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맛좋은 술은 물론 그 술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한 사람들, 술과 어울리는 지역 특산음식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맛난 술을 나누기 위한 제보와 조언도 언제나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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