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의 자유 억압하는 ‘가처분 신청’

2013.06.02 21:33 입력 2013.06.03 11:03 수정
허지웅 | 영화평론가

다음의 세 가지 사례를 보자. 지난 2005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인 박지만씨가 영화 <그때 그 사람들>의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그때 그 사람들>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시해사건을 다룬 영화다. 법원은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 가운데 일부만을 받아들여 영화 속에 삽입된 다큐멘터리 장면을 삭제하고 상영하라 판결했다. 영화는 3분30초가량이 암전된 상태로 관객에게 공개됐다. 당시 조선일보는 사설을 통해 “영화가 작품의 소재가 된 개인이나 집단의 반발에 부딪힐 때마다 소송에 부쳐지고, 법률적 판단을 따라야 한다면 창작과 표현의 자유는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다음은 최근의 일이다. 지난달 8일 국방부는 다큐멘터리 <천안함 프로젝트>에 대해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하기로 결정했다. <천안함 프로젝트>는 북한 어뢰에 의해 천안함이 침몰했다는 합동조사단의 결론에 의문을 제기하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원래는 국방부 단독으로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하는 방안이 검토됐다. 그러나 국방부나 해군은 명예훼손 등 본안 소송의 대상이 될 수 없어, 국방부가 천안함 유족들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유족들은 이달 말에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할 예정이다. 국방부는 “이 영화는 천안함 폭침의 원인을 좌초 또는 충돌이라는 식으로 호도해 국민에게 혼란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며 “영화관뿐만 아니라 DVD나 인터넷 등 어떤 식으로라도 상영이 되어선 안된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천안함 프로젝트>는 구체적인 상영 배급 시기가 결정되지 않았으며, 지난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된 바 있다. <부러진 화살> <남영동 1985>의 정지영 감독이 기획하고 제작한 작품이다.

[허지웅의 영화로 세상읽기]표현의 자유 억압하는 ‘가처분 신청’

마지막으로 가장 최근의 일이다. 지난달 22일 민주당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폄훼하는 등 선정적인 게시물을 올린 일간베스트저장소(이하 ‘일베’)를 상대로 운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하기로 결정했다. 민주당 미디어홍보특별위원인 신경민 의원은 “도를 넘었다. 엄중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일베에 해당 글을 작성한 분들은 표현의 자유를 수백 배 뛰어넘어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었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미국은 ‘표현의 자유’가 대단히 넓다, 성조기를 태울 권리도 인정한다. 목사가 방송에 나가서 쌍욕을 해도 인정한다. 그런데 미국도 인정하지 못하는 표현의 자유가 있다. 최소한의 악이다. 군사 기밀, 인종차별적, 반인륜적, 반역사적 언사나 범죄 옹호는 표현의 자유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세 가지 가처분 신청 사례에 있어 여러분은 저마다 가치판단을 할 수 있다. 본인의 취향과 정치적 지향에 따라 해당 가처분 신청의 내용을 옹호하거나 반대할 수 있다. 혹은 자신이 경험한 바에 근거해 더욱 적극적으로 의견을 피력할 수 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타인의 의견을 법적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 또한 다양한 의견의 교환이라는 가치 자체를 인정할 때 존립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세 가지 가처분 신청 사례는 결국 공히 표현의 자유에 관한 문제다. 표현의 자유는 해당 표현에 대한 긍정이 아니다. “표현의 자유를 인정한다”고 했을 때 그것은 ‘표현’을 인정한다는 것이 아니라 ‘자유’를 인정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각 사안의 정치적 성격에 따라 의견이 나뉘는 것은 한국사회에서 표현의 자유라는 화두가 진영논리에 의해 규정되고 침해당해 왔다는 것을 방증한다.

신경민 의원은 일베에 대한 운영금지 가처분 신청에 있어 미국을 예로 들며, 그 나라에서 표현의 자유에 해당되는 것과 해당되지 않는 것이 매우 명쾌하게 정리되고 있는 것처럼 말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신 의원이 주장하는 것은 이른바 혐오언론(여기서 ‘언론’은 media가 아니라 speech다. hate speech)에 대한 규제인 듯 보이는데, 이는 미국 내에서도 평등이나 다원주의 이슈와 더불어 가장 골치 아픈 사안으로 받아들여진다. 표현의 자유를 전제하면서 혐오언론을 법적으로 규제하는 것은 까다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1992년 연방 대법원의 R A V 판례 이후 수정헌법 1조가 보호하는 범위를 혐오언론에까지 확장시켰다. 여기서 대법원은 “(그 내용이)선호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러한 언사에 대해 예외로 규제하는 것이야말로 바로 수정헌법 1조가 금지하는 것”이라 선언했다.

특히 온라인 게시판 등 인터넷에서의 혐오언론은 그것이 과연 타인에게 즉각적인 폭력과 공포를 유발했는지 규명하기 어렵고, 사용자가 그것을 회피하거나 무시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규제의 대상이 되기 어렵다. 신 의원이 지나치게 단순화, 일반화시킨 것과 달리 미국에서 인터넷상에서의 혐오범죄로 처벌받은 사례는 대개 인종주의자가 특정인에게 위협적인 협박이나 살인 메시지가 담긴 메일을 보낸 것들이었다.

표현의 자유 문제에 있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지는 가처분 신청은 위험하다. 그것이 ‘보호’보다 ‘억압’의 의지를 우선적으로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의 정치사회 환경 안에서 각 진영의 편의에 따라 매번 검열수단으로 악용돼왔다. 일베는 어떤 의미에서 한국사회의 화장실이다. 명예를 훼손당한 당사자는 이를 법에 호소할 수 있다.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내용에 대해 누구나 어디서든 비판할 수 있다. 뜻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연대하여 광고주에게 압박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불편하고 부당하다는 이유만으로 그 표현의 자유 자체를 억압할 수는 없다. 밀로스 포먼의 <래리 플린트>에는 “나 같은 쓰레기의 자유가 보장될 때 여러분의 자유 또한 보장될 수 있다”는 대사가 나온다. 표현의 자유란 그 사회의 가장 역겹고 더럽고 끔찍한 곳에서 증명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더 이상 민주사회가 아니다. 최근 북한의 대남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는 일베에 대해 다음과 같은 비판논평을 내놓았다. “ ‘일간베스트’와 같은 추악하고 더러운 홈페이지에 붉은 신호등을 올려야 할 것이다.” 전체주의자들끼리는 통하는 게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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