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석균 “깨진 대형 병원의 안전신화… 지역사회 공중방역체계도 전무” 황승식 “3번째 실수 없다면 열흘이 고비… 역학조사관 실질 권한 줘야”

2015.06.18 22:13 입력 2015.06.18 23:11 수정
정원식 기자

메르스 한 달, 전문가 대담 -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황승식 인하대 교수

한국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는 향후 7~10일이 마지막 고비가 될 것으로 전망됐다. 초기 대응이 부실했고 2차 확산을 막지 못한 정부와 의료계에서 ‘3번째 실수가 없어야 한다’는 전제가 붙었다.

메르스 발병 30일째를 맞는 18일 질병역학 전문가인 황승식 인하대 의대 교수(예방의학과)와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가정의학 전문의)이 경향신문사에서 만났다. 보건복지부에도 메르스 정책자문을 하고 있는 황 교수는 “정부가 1차 유행과 2차 유행을 부른 첫번째 환자와 14번째 환자 때와는 달리 강력한 대응을 취하고 있어 3차 유행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본다”며 “강동경희대병원 투석실 환자를 잘 막아야 3차 유행 발생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우 위원장은 “총체적 난맥상을 보이는 공공의료체계를 제대로 수립하는 것이 근본적인 메르스 대책”이라고 지적했다. 두 사람의 대화는 황 교수가 복지부 대책회의에 참석하고 서울에 올라온 오후 4시부터 경향신문 박효순 부장(의학담당)의 진행으로 1시간30분 동안 이뤄졌다.

황승식 인하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오른쪽)와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이 18일 경향신문사 5층 ‘여적향’에서 만나 첫 국내 환자가 나온 지 한 달이 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다. | 김정근 기자 jeongk@kyunghyang.com

황승식 인하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오른쪽)와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이 18일 경향신문사 5층 ‘여적향’에서 만나 첫 국내 환자가 나온 지 한 달이 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다. | 김정근 기자 jeongk@kyunghyang.com

- 오늘 복지부 대책회의에서는 어떤 내용이 논의됐나.

황 교수 = 3차 유행이 없다는 전제하에 메르스 종식 시점이 지금으로부터 7~10일 이후가 될 것으로 본다는 의견을 제출했다. 오늘 강동경희대병원 투석실에서 감염된 환자에게 (입원·외래 환자) 111명이 노출됐다고 하는데 잘 대응하는 게 관건이다. 정부가 첫번째, 14번째 환자 때와는 달리 강력한 대응을 취하고 있어 3차 유행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그러나 3차 유행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당장 메르스 사태가 종식된다고 보긴 어렵다. 이달 말까지는 봐야 한다.

- 메르스 사태가 한 달째 이어지고 있다. 그간 보건당국 대응의 문제점은 무엇이었나.

우 위원장 = 정부가 위험정보 공유를 너무 늦게 했다. 위험 소통에서 완전히 실패했고, 정보 공유를 실패한 것은 정부가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 두번째 잘못은 똑같은 실수를 반복했다는 것이다. 14번째 환자가 5월27~29일 삼성서울병원에 있었는데 역학조사를 초기에 빨리하고 전파경로를 넓게 잡아서 차단했어야 한다.

황 교수 = 정부도 그 점을 뼈아프게 생각하고 있다. 경험 많고 유능한 역학조사관의 부재가 가장 큰 원인이다.

- 한국 의료가 세계적 수준이라고 하지만 방역 수준은 후진적인 게 노출됐다.

우 위원장 = 신종플루 때 훈련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국가지정격리병상 100여개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그 후 사회적 인프라를 제대로 만들지 못했다. 또 다른 문제는 지역사회의 공중방역체계가 아예 없다는 점이다.

황 교수 = 보건소는 지방자치단체 관할이다. 선거로 뽑히는 지자체장들은 보건소를 방역보다는 의료서비스 제공 장소로 본다. 또 하나의 문제는 식품의약품안전처 식품위생감독관은 준사법경찰관의 권한을 갖고 있는 반면 역학조사관은 실질적 권한이 없다는 점이다. 법률을 개정해 역학조사관의 책임과 권한을 명시해야 한다. 사스 발생 이후 질병관리본부가 생겼다. 그런데 그 이후에 신종 외래감염병에 대한 대응체계가 충분히 갖춰졌는지 시험해볼 기회가 없었다.

우 위원장 = 감염병에 대응할 지역거점공공병원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평택의 경우 6개 병원 중 공립병원이 하나도 없다. 이번에도 평택 환자들이 다 서울로 오면서 문제가 생겼다.

- 메르스 사태로 우리가 얻은 것과 잃은 것은 뭔가.

우 위원장 = 대형병원은 안전하다는 신화가 깨졌다. 국가가 국민의 안전을 지켜주지 못할 때 국가란 뭔가에 대한 성찰의 계기가 됐다.

황 교수 = 이번 사태는 빅5 병원으로 환자가 몰리는 일종의 과적 상황에서 메르스를 맞아 나라가 기우뚱하게 된 것이다. 오히려 대형병원에 가면 감염병에 걸릴 위험이 커진다는 교훈을 얻었다.

- 한국에서의 메르스 확산 과정은 외국과 다른 점이 있나.

황 교수 = 바이러스의 생물학적 측면에서는 차이가 없다. 외국보다 빨리 확산된 것은 한국 의료환경 탓이다.

우 위원장 = 한국 정부는 병원을 20여년 동안 시장에 맡겼다. 병원들은 군비경쟁하듯 덩치를 불렸다. 매출액 1조원이 넘는 이른바 ‘빅5’ 병원은 그 결과다. 보건의료 관련 시민단체들이 병상허가제를 주장해온 이유는 병원들이 병상을 무분별하게 키우면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병상 과잉에 따른 의료비 증가를 걱정했을 뿐 병상 과잉이 병원 감염의 문제를 일으킬 거란 생각은 못했다.

황 교수 = 응급실 과밀화는 하나의 연구 분야이기도 하다. 외국에선 고열이 있고 감염성 폐렴이 의심되는 중증환자는 응급실 단계에서 별도로 분류한다. 지금 병원 밖에 천막이 있어서 그런 역할을 하는데, 일시적으로 하지 말고 상시 운용할 필요가 있다.

우 위원장 = 의료전달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병상이 가장 빨리 늘어난 국가다. 빅5 병원이 모두 서울에 있다. 환자들이 전국에서 KTX를 타고 올라온다. 이번에 삼성서울병원에서 감염자들이 나오니 전국에서 다 나오고 있지 않나. 정상적인 경우라면 부산 환자들은 부산지역 병원, 대구 환자들은 대구지역 병원에 있어야 한다.

황 교수 = 대형병원은 일단 병상을 늘리고 보려 한다. 늘리는 족족 환자가 차기 때문이다.

우 위원장 = 공급을 늘리면 수요는 따라온다는 경제논리다. 1인당 병상 수는 일본에 이어 2위인데 1인당 공공병상 수는 OECD 꼴찌다. 의료 공공성이 줄다보니 정부가 정책을 취할 수 있는 장치가 없다. 다 병원협회 협조를 구해야 한다. 병원명 공개가 늦어진 것도 발표하는 순간 병원 운영에 타격을 받을 게 분명해 정부가 망설인 것이다. 병원의 수익 추구를 방치하면 이번 같은 재앙을 또 맞을 수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병원 부대사업 확대를 허용하려 한다. 병원이 헬스장, 수영장, 쇼핑몰, 호텔 등을 부대사업으로 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병원 내 감염관리를 포기하겠다는 소리다.

- 국가적으로 비상상황이다. 방역과 보건의료 전문가로서 어디서부터 문제를 풀어가야 하나.

황 교수 = 의료진 감염이 높다. 의료진 안전에 좀 더 신경써야 한다는 말을 꼭 하고 싶다.

우 위원장 = 이번에 드러났듯이 병원 비정규직 노동자가 방역 사각지대에 있다. 이들이 차별당하고 정규직이 못 되면 안전이 위험해진다는 점을 반드시 짚어야 한다.

■ “방역 후진국 전락 위기… 의료 관광·수출 공든 탑도 흔들”
“훈련 안 한 매뉴얼은 오답을 만들 가능성이 매우 크다”


황승식 교수와 우석균 위원장은 해외 환자들의 눈과 귀를 잡아온 의료관광과 의료수출의 공든 탑도 흔들릴 분기점에 섰다고 짚었다.

어느 정도는 메르스 사태의 후폭이 불가피하고, ‘의료 한류’를 일으켜온 나라에서 방역·질병역학의 후진국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다.

우 위원장은 대담에서 “2003년 중국의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 창궐 이후 국내에 질병관리본부가 새로 설립됐고, 2009년 신종플루를 겪으면서 그나마 국가지정격리병상이 100여개 만들어졌다”며 “하지만 지난해 에볼라 출혈열 사태 때에는 (정부가) 거의 아무것도 한 게 없다”고 말했다. 황 교수도 “에볼라 사태 때 일본은 자위대 군의관과 전문가들을 파견해서 현지에서 많은 노하우를 얻어왔다”면서 “우리는 에볼라를 ‘서아프리카병’이라고 생각해 의료진이 구호 활동을 하는 정도에 그쳤다”고 덧붙였다. 감염병 경험을 쌓고 대비하는 데 국가적으로 소홀했다는 뜻이다.

지난 4월 박근혜 대통령이 중동 순방 때 찾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은 메르스가 가장 많은 나라였다. 복지부 장관이 직접 수행하고 국내 주요 대학병원장들도 대거 따라갔다. 당시엔 중동의 ‘큰손’ 환자들을 데려와 국부를 창출하자는 전략이었다.

황 교수와 우 위원장은 “메르스의 본거지인 중동은 지리적으로 멀지만 현지 환자들이 국내에 많이 들어오고, 최근엔 그곳에 직접 병원까지 설립하고 있다”며 “이 과정에 방역에 대한 대책과 관심은 있었는지 묻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우 위원장은 “의료관광 등 중동과 긴밀한 교류를 추진하면서 당연히 ‘메르스 대책’을 수립했어야 했다”며 “국내 공항의 출입국 방역신고 요청서(일명 징구)에서 메르스가 빠진 것으로 알고 있다. 이것은 거꾸로 간 것”이라고 말했다.

황 교수는 “신종 외래감염병은 매뉴얼만 만든다고 되는 게 아니라 훈련이 필요하다”면서 “훈련을 안 한 매뉴얼은 오답을 만들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지적했다.

<박효순 기자 anytoc@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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