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미나리’가 불편하다

2021.03.12 16:15 입력 2021.03.12 23:25 수정
성우제

성우제의 ‘경계인’

영화 <미나리> 스틸 사진. 얼굴에 수심이 가득한 남편 제이콥(스티븐 연)과 웃고 있어도 슬퍼보이는 아내 모니카(한예리). 두 사람의 표정은 영화의 내용을 압축해 잘 보여주고 있다. 판시네마 제공

영화 <미나리> 스틸 사진. 얼굴에 수심이 가득한 남편 제이콥(스티븐 연)과 웃고 있어도 슬퍼보이는 아내 모니카(한예리). 두 사람의 표정은 영화의 내용을 압축해 잘 보여주고 있다. 판시네마 제공

요즘 한국에서도 개봉되어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미나리>를 며칠 간격을 두고 두 번 보았다. 토론토에 사는 내 선배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이게 무슨 영화냐, 다큐멘터리지”라고 했다. 짜증이 담긴 목소리였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으나 나 또한 처음 볼 때는 많이 불편했다. 시대와 장소, 구체적인 내용은 다르지만 ‘미나리 가족’의 미국 정착기는 우리 가족이 캐나다에 살러와서 겪은 것과 비슷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이민 초기의 신산함·외로움·고통·갈등 등 내가 경험한 현실이 생생하게 펼쳐지는 것 같았다. 뭔가 드라마틱하고 심금을 울리는 신파조의 내용을 기대했다가 날벼락을 맞은 기분이니 “저게 다큐멘터리지 영화냐”라고 불평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달리 말하자면 현실을 실제 현실보다 더 밀도있게 그려낸 영화라는 얘기다. 나 같은 이민 1세들은 지금도 여전히 낯선 문화에 적응 중이다. 그런 사람들이 이민 초기의 스트레스를 떠올리게 하는 이런 영화를 보면서 힘들어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토론토의 한 선배는 말했다
“이게 무슨 영화냐 다큐지”
‘미나리 가족’의 미국 정착기는
많은 이민자들이 겪은 이야기
이민 초기 고통 생생히 떠올려

‘잘 살아보세’ DNA 가진 한국인
하루 벌어 사는 삶에 만족 안 해
그래서 갈등이 생기고 괴로워

한국에서 ‘미나리’를 본다면
“이민이나 가야겠다”라는 말은
쉽게 하지 못할 것이다

영화를 다시 볼 때도 마음이 불편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다른 점이라면 처음에는 잘 보이지 않던 ‘디테일’이 눈에 쏙쏙 들어왔다는 사실. 낯선 땅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한국 사람이라면 보편적으로 갖게 되는 생각과 감정과 경험, 이방인으로서 겪고 치러야 할 통과의례나 수업료 같은 것들이었다. 그 가운데 몇몇을 꼽으면 다음과 같다.

#아메리칸드림

남편이자 아버지인 제이콥(스티븐 연)은 아칸소 농장에서 농사지을 준비를 하면서 아내와 함께 병아리 부화장에 나가 암수 감별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곳에서 만난 다른 한국인은 말한다. “감별을 빨리 해서 (캘리포니아에서) 돈 많이 벌었겠는데?” 캘리포니아에서든, 아칸소에서든 부부가 병아리 감별이라는 단순노동에 종사해도 먹고살 수는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제이콥은 “돈을 많이 벌” 정도의 감별 능력자이고 아내 모니카(한예리)는 집에서 개인 훈련까지 하는 노력파이기도 하니까. 그러나 한국인 이민자들은 이 같은 단순노동을 직업으로 여기지 않는 경향들이 있다. 한국 이민자 중에는 어제와 내일의 상황이 별로 다르지 않을 단순노동을 꿈의 실현을 위한 중간 과정쯤으로 여기는 이들이 많다. 제이콥이 50에이커 농장에서 농사를 지어 “(아내가) 3년 후에는 부화장에 나갈 필요가 없는” 목표를 가졌듯이 한국 이민자들은 대체로 더 나은 삶을 살려는 꿈을 늘 꾸고 있다.

“한국 사람은 머리를 써.” 다른 일에 관한 것이지만 제이콥이 아들에게 하는 이 말은 보통의 한국 이민자들이 가진 생각을 잘 드러낸다. 머리를 쓰는 한국 사람들은 머리를 쓰지 않아도 되는 단순노동에 만족하지 않는다. 머리를 써서 준비하고 노력하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고, 또 그렇게 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성공한 농장주’라는 목표를 세우지 않았더라면 제이콥은 병아리 부화장의 사장이 되고자 했을 것이다. 한국 사람들에게는 ‘잘살아보세’라는 DNA가 있으니,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현실에 만족하지 않는다. 그래서 갈등이 생기고 괴롭다.

#아플 겨를도 없다

제이콥이 농사를 짓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아칸소로 오기 전 그가 농사일을 했다는 이야기는 없다. 땅을 갈아엎어 밭을 일구고 작물을 생산할 정도라면 중노동도 그런 중노동이 없다. 숙련된 농사 경험자가 아니라면 금방 몸져눕게 할 만한 일이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팔이 올라가지 않을 정도’의 아픔만을 묘사한다. 몸이 아픈 것도 여유가 있을 때의 이야기다. 내 경우도 그랬다. 이민 초기에는 극도로 긴장을 해서 그런지 몸이 파김치가 되어도 아파서 드러누운 적은 없다. 처음 하는 육체노동이라 허리를 다쳤으나 복대를 차고 일을 했다. 긴장을 많이 하면 감기몸살도 나를 피해간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아플 겨를도 없고, 몸이 아파서는 절대 안 되는 것이다.

#한국말과 영어이름

미나리 가족의 두 자녀는 미국 태생. 그러나 아이들은 한국에서 온 할머니와 소통할 정도로 한국말을 잘 알아듣는다. 한국이 가난하던 시절에 이민 온 부모들은 자녀들의 한국어 교육에 별 관심이 없었다. 심지어 자녀들로 하여금 한국어를 잊고 빨리 영어를 배우게 했다는 부모도 있었다. 그들은 나중에 크게 후회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부모들은 자녀들의 한국어 교육을 중요시했다. 영화 속의 두 어린아이가 한국말로 어른들과 저렇게 소통할 정도라면 부모가 꽤 신경썼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부가 잘살아보려고 그렇게 버둥거리는 와중에도 아이들 한국어 교육은 놓치지 않았다. 한국인 부모다운 모습이다.

한편 어른도, 아이도 영어 이름으로 불린다. 낯선 곳에 빨리 적응하려는 방편 가운데 하나이다. 한국 이름은 할머니 순자(윤여정)뿐이다. 순자는 손자를 “데이빗아”라고 부른다. 요즘 말로 디테일의 ‘끝판왕’이다. 한국에서 온 어른들은 영어 이름을 가진 이곳 손주들을 모두 저렇게 부른다.

#고춧가루와 멸치, 할머니

우리 어머니가 토론토를 방문하실 적에도 그랬다. 큰 여행가방에 고춧가루와 멸치, 된장, 새우젓, 김, 만두 등을 잔뜩 넣어오셨다. 토론토 한국식품점에서 살 수 있다고 해도 그 무거운 것들을 한국에서 굳이 들고 오셨다. 가방을 풀면서 순자의 딸 모니카는 기뻐한다. 우리도 그랬다.

토론토에서 우리가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했을 때 아이들 돌보는 것이 큰 문제였다. 우리도 영화에서처럼 한국에서 어머니를 오시게 했다. ‘데이케어’를 찾을 수도 있었으나 처음에는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할머니는 유치원에 들어가기 직전의 손녀에게 한글을 가르치셨다. 순자처럼 화투도 가르치셨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한국인의 밥상

일을 마치고 돌아온 제이콥이 저녁을 먹는 장면. 식탁에 차려진 것은 밥과 김치, 김 등이다. 전형적인 한국 밥상이다. 초기 이민자 시절, 우리가 일터에서 돌아오면 아이들을 돌보던 어머니가 저녁상을 차려주셨다. 아침과 점심을 빵으로 간단하게 때운 우리는 저녁을 허겁지겁 먹었다. 밥을 그렇게 많이, 맛있게 먹었던 적은 없었다. 어머니는 “너희들이 머슴밥을 먹는구나”라고 하셨다. 그 말씀을 하실 때의 내 어머니 표정은 순자가 딸 모니카를 바라볼 때와 똑같았다.

#초기 이민자의 궁핍과 궁상

영화를 보면서 두 장면이 눈을 찌르듯 들어왔다. 캘리포니아와 시애틀에서 10년을 살았다고 하지만 제이콥 가족은 아칸소의 낯선 촌동네로 다시 이사를 온 만큼 신규 이민자나 다름없다. 약간의 정착자금은 가족의 생명줄이다. 그 돈은 농사 지을 땅에 투자해야 한다. 그들이 살게 된 트레일러 집은 낯설지만 고물 승용차의 금이 간 앞유리는 보기 드문 것이 아니다. 운행하는 데 지장이 없으면 금이 간 유리든 뭐든 교체하지 않는다. 꼭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돈이 있어도 쉽게 쓰지 못한다. 불안해서 그렇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믿을 것이라고는 돈과 건강한 몸밖에 없다.

영화 막바지에 가족이 한국식품점에 들르는 장면이 나온다. 아이들은 “와, 김밥이다”하며 집어들려 하지만 엄마는 “물건에 손대지 마”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아이들은 먹고 싶다는 의사를 표시(조르지 않고 간접적으로. 아이들도 눈치가 있다)했으나 엄마는 김밥 몇 줄에도 손이 가지 않는다. 비슷한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가장 마음 아픈 장면이었다.

#현실적인 아내와 말 안 듣는 남편

이민을 오면 부부가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진다. 힘든 상황이 지속되면 서로 예민해져서 의견 충돌이 생기고 다툼도 잦게 마련이다. 영화 속에서 제이콥과 모니카가 살아가는(돈을 버는) 방식을 두고 자꾸 싸우는 것 또한 초기 이민자들 사이에서 그리 낯선 풍경이 아니다. 내 경험으로 보자면, 영화에 나오듯 여성이 남성보다 좀 더 현실적이고 섬세하다. 심장병이 있는 아이에게 “데이빗, 뛰지마”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면서도 남편은 집(농장)이 병원에서 멀어도 별로 개의치 않는다. 그러나 아내는 “(그 동네로 가면) 병원도 있고, 좋은 학교도 있고”라며 남편을 설득하려 한다. 남편은 아내 말을 듣지 않는다.

이민사회에서 남편들이 주로 돌진형이라면, 아내들은 현실을 두루 잘 살피는 실사구시형이다. 병아리 감별에 남다른 능력이 있으면서도 남편 제이콥은 “죽을 때까지 그걸 하란 말이야?”라며 자꾸 다른 일에 눈을 돌리는 반면, 아내 모니카는 집에서도 병아리 감별 연습을 한다. 여성은 현실적이고 남성은 현실을 도외시하는 성향이 있다. 자기 만족과 허세이다. 제이콥은 말한다. “아이들도 아빠가 뭘 하나 해내는 걸 봐야 할 거 아냐?” 남편의 이런 모습 때문에 가장 힘들어하는 사람은 물론 아내이다.

병원이나 학교 같은 곳에서 의사·교사와 대화를 하는 사람도 주로 아내이다. 외국인 교회에 가서도 외국 사람들과 한두 마디라도 나누려는 사람은 주로 아내 쪽이다. 내가 아는 한 그렇다. 남편은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는 데 늦는 대신 한국말로 소리 지르는 건 잘한다. <미나리>에서도 그렇다.

이렇듯 <미나리>는 외국에 사는 한국 사람들이 섬찟해할 정도로 이민 초기의 현실을 생생하고 정밀하게 잘 그려낸다. 나 같은 이민자로서는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괴로운 이야기들이다. 이민자가 아닌 보통 관객들이 감동을 받는다면, 낯선 땅에 뿌리를 내려가는 평범한 한국 가족의 모습을 감정 꾹꾹 눌러가며 냉정하고 담담하게 그려냈기 때문일 것이다. 엄마 아빠가 싸우자 큰아이는 “싸우지 마세요”라고 쓴 종이비행기를 날린다. 가족 사이의 갈등은 그렇게 지나간다.

한국에서 <미나리>를 본다면 앞으로 이런 말은 쉽게 하지 못할 것이다. “이민이나 가야겠다.” <미나리>는 한국에서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낯선 곳에서의 ‘다른 삶’을 날것 그대로 고스란히 드러내기 때문이다.



[다른 삶]난 ‘미나리’가 불편하다


▶성우제

캐나다사회문화연구소 소장. ‘원(原)시사저널’ 문화부 기자로 일하다 2002년 캐나다 토론토로 이주했다. 16년째 자영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한국의 여러 매체에 기고해왔다. 재외동포문학상을 두 차례(소설 및 산문 부문) 수상했고 <느리게 가는 버스> <딸깍 열어주다> 등 단행본 5권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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