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간 ‘베트남 아내’들

‘한·베 가정’ 해체 그 후…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이들의 눈물

(상) 엄마들의 눈물

한 베트남 귀환 결혼이주여성이 지난달 17일 베트남 남부 껀터의 한베함께돌봄센터(코쿤센터)에서 기자와 인터뷰하던 도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미지 크게 보기

한 베트남 귀환 결혼이주여성이 지난달 17일 베트남 남부 껀터의 한베함께돌봄센터(코쿤센터)에서 기자와 인터뷰하던 도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며느리의 나라, 사돈 국가….

한국 남성과 베트남 여성의 결혼으로 구성되는 한·베 가족이 늘어나며 함께 자리 잡은 표현이다. 한국 남성과 베트남 여성의 결혼은 2000년대 초반 이후 급증했다. 2022년 다문화 혼인의 국적별 비중을 보면 외국인 아내의 국적은 베트남이 27.6%로 1위를 차지했다. 한·베 결혼은 중매업체를 통하는 비중이 여전히 높지만, 최근에는 한국이나 베트남 현지에서 만나 연애와 결혼으로 이어지는 사례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그렇다면 ‘결혼 그 이후’는 어떨까. 여기 돌아간 이들의 이야기가 있다. 경향신문은 지난달 베트남 북부 하이퐁과 남부 껀터에 있는 사단법인 유엔인권정책센터의 한베함께돌봄센터(코쿤센터·KOCUN)에서 이혼, 사실상 이혼에 가까운 별거, 사별 등의 이유로 한국 남성과의 혼인 관계가 끝나 베트남으로 돌아온 여성과 그 자녀들을 만났다.

하이퐁과 껀터는 베트남 내에서 한국 남성과의 국제결혼 건수가 많은 편에 속하는 지역이다. 코쿤센터에서 인터뷰한 귀환 결혼이주여성(귀환여성)들은 베트남으로 돌아온 이유와 돌아오고 나서 겪은 고충, 홀로 자녀를 양육하는 일의 어려움을 들려줬다.

그동안 한국의 다문화 정책은 한국 내 한·베 가족에 집중됐고, 결혼이주여성뿐만 아니라 그 자녀를 주목하게 된 것 역시 비교적 최근이다. 한국이 아닌 베트남에서, 귀환한 어머니와 함께 사는 아동들은 ‘한·베 가정 해체 1세대’로서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야 하는 처지다. 이들은 한국과 베트남에 모두 걸친, 혹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상태로 자라나고 있다.

한국과 ‘가족의 연’을 맺었다 돌아간 이들은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이다. 결혼이 종료된 이후 베트남에서 사는 귀환 여성과 그 자녀들의 여정은 머지않아 한국 사회가 마주해야 할 ‘가족의 삶’이다. 이들의 이야기를 2회에 걸쳐 전한다.


지역사회 등 주변 시선 부정적
“부모에게도 이혼 언급 힘들어”

귀환 여성 87% 이상 아이 동반
양육·돌봄 다 ‘베트남 친정’ 몫

한국 국적 자녀, 의료보험 불가
양육비 받는 경우는 극히 소수
귀환자 43% 월 소득 20만원대

“일 끊겨 학업 지원 어렵다니
2시간 동안 무릎 꿇고 우는 딸
그냥 같이 울 수밖에 없었다”

번(40·가명)은 중매업체를 통해 2008년 한국 남성과 결혼해 한국에 갔다. 남편과의 나이 차이는 열일곱 살이었다. 그는 “딸을 임신한 걸 알게 된 후부터 부부 사이가 나빠졌다”고 했다. 남편은 전처와의 사이에 자녀가 이미 둘 있었기 때문에 아이를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남편은 계속 아이를 낳지 말라고 했지만 나는 동의하지 않았다. 출산 후 그가 이혼을 요구하며 날 협박하기 위해 아기를 숨기기도 했다”고 떠올렸다. 그는 교회의 도움으로 이혼을 마무리하고 친권과 양육권을 받았고, 2014년 딸과 함께 베트남으로 돌아왔다.

한(46·가명)은 스물다섯 살 많은 한국 남성과 2006년 베트남에서 결혼한 후 이듬해 한국으로 갔으나 2008년 갈라섰다. 가자마자 중병에 걸린 시부의 병간호를 도맡은 데다, 남편 쪽 가족들의 구박이 그를 힘들게 했다.

그는 “시모는 집안일을 깐깐하게 지적했다. 그 가족들이 날 두고 ‘나중에 머리 굴려서 집안 재산을 탐낼 것’이라며 공부도 시키지 말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남편과 전처 사이 자식들이 가져온 서류에 서명했는데 그것이 이혼서류였고, 이혼한 후에야 임신 사실을 알게 됐다”고 했다. 천주교 신자인 한은 아이를 키우기로 결정했다. 그러고나니 “친정의 도움을 받는 것” 외엔 방법이 없었다.

[돌아간 ‘베트남 아내’들] ‘한·베 가정’ 해체 그 후…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이들의 눈물

남편·시부모와 갈등 겪다 갈라서

통계청 ‘외국인 아내의 국적별 이혼’을 보면, 지난해 한국인 남편과 베트남 아내의 결혼은 4923건, 이혼은 1122건이었다. 법적 이혼 절차를 완료하지 않았을 뿐 사실상 부부 사이가 단절된 사례를 감안하면 한·베트남 가정의 해체는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식 이혼 전 베트남으로 떠난 사례도 드물지 않다.

결혼 생활이 끝난 후 일부 베트남 여성은 베트남으로 돌아오는 것을 선택했다. 그러나 고향의 환대를 기대할 수는 없었다. 외국인 남성과 결혼했다가 돌아왔다는 사실을 두고 낙인이 따라붙었다. 연구에 따르면, 경제적 목적으로 딸을 한국으로 시집보낸 부모들이 이혼·귀환한 딸을 다시 받아주지 않는 사례도 종종 발생한다.

아인(34·가명)은 2009년 한국으로 갔다가 2018년 베트남으로 돌아왔다. 2014년쯤부터 남편과 따로 살았다. 법적 이혼을 완료하진 않았으나 사실상 결혼 생활이 끝난 상태로 왔다. 그는 “막 돌아왔을 땐 내 이혼에 대한 주변 사람의 시선 때문에 부모님과 함께 살 수 없었다. 지역사회에서 일하던 아버지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고향이 아닌 곳에서 아이와 둘이 살면서 부모를 종종 만나러 가는 생활을 오래 해왔고 3년 전에야 부모와 함께 살기 시작했다.

한 역시 “가족들에게 이혼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면서 “그냥 그 집안이 요즘 어려워져서 왔다고만 했다”고 말했다.

번은 인터뷰 중 자녀의 이야기가 나오자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중학생 무렵부터 아이가 ‘아빠 없는 애’라고 놀림을 받고 스트레스를 받았다. 초등학생 때까진 공부를 잘했는데, 그 영향 때문인지 수학과 과학 성적이 많이 떨어졌다”고 했다. 그는 “아이 이름이 한국식인 데다 얼굴이 한국 사람과 닮았으니 주변에 알려질 수밖에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베트남 북부 하이퐁 한베함께돌봄센터(코쿤센터). 귀환 결혼이주여성과 그 자녀들을 대상으로 한국어 교육, 한국 문화 체험, 취·창업 교육 등을 제공한다.

베트남 북부 하이퐁 한베함께돌봄센터(코쿤센터). 귀환 결혼이주여성과 그 자녀들을 대상으로 한국어 교육, 한국 문화 체험, 취·창업 교육 등을 제공한다.

국경을 넘어 전가된 양육·돌봄

기자가 베트남 현지에서 만난 귀환 여성들은 전부 자녀를 데리고 베트남으로 왔다. 결혼 생활이 끝난 이후에도 아이를 직접 책임지기로 한 것이다. 한·베트남 자녀를 둔 귀환 여성 87.38%가 자녀와 함께 베트남으로 돌아갔다는 2017년 베트남 남부 귀환 여성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와도 별로 다르지 않다.

경제·생활·교육 여건을 놓고 보면 한국이 더 나은데도 아이를 베트남에 데려올 수밖에 없었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 여성들은 남편이 전처와의 사이에 이미 자녀가 있고, 남편이 출산을 원치 않았고, 한국에서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고, 경제력이나 성격 등을 감안하면 남편에게 차마 아이를 맡길 수가 없었다는 것 등을 이유로 꼽았다.

그 결과 양육·돌봄 부담은 귀환이주여성과 그 친정의 부담이 됐다. 베트남은 가족애가 강한 편이며 조부모나 이모, 삼촌 등 가까운 가족이 아이 돌봄을 도와주는 문화가 아직 남아 있다.

마이(35·가명)는 한국 남성과 결혼했던 언니가 2017년 사망하자 이듬해 조카 진수(10·가명)를 데려왔다. 이후 자신이 낳은 아이 두 명과 함께 아이 셋을 키우고 있다. 마이나 한베함께돌봄센터(코쿤센터·KOCUN)는 ‘입양’이란 용어를 쓰고 있지만, 엄밀히 보면 법적 입양은 아니다. 진수는 한국 국적이어서 베트남에 가정방문 비자로 들어왔고, 비자를 매번 연장한다. 한 번 연장할 때마다 300만동(약 16만원)이 필요하다. 생부는 달마다 30만원 정도를 보내주고 있다.

마이는 “진수 아버지와 전처 사이에 아이가 하나 더 있어서 진수까지 신경쓸 수 없는 상황인 것 같았다. 키울 수 없으면 보육시설에 보내겠다고 해서, 아이가 불쌍해 내가 키우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아이들과 진수가 잘 지내기도 했고 언니가 사망 전 ‘진수를 잘 챙겨달라’고 하기도 했다”고 했다.

민(45·가명)도 조카 민지(16·가명)를 2010년부터 친자식처럼 키우고 있다. 민지의 어머니는 돈을 벌기 위해 다른 도시에서 일한다. 민은 “민지가 처음 왔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일단 서류상 자식으로 만들어 베트남 국적을 줬다. 그러다 2019년 공안에 적발돼 한국 국적을 살렸다”고 전했다. 그는 “민지의 조부모가 매달 보내주는 240만동(약 13만원)은 생활비로 쓰지 않고 아이 앞으로 모으는 중이다. 그런데 내 아이도 셋인 데다, 민지가 점점 크면서 돈이 부족해지는 상황”이라고 했다.

베트남 북부 하이퐁의 코쿤센터에 지난달 8일 귀환 결혼이주여성과 자녀들이 그린 그림이 걸려 있다.

베트남 북부 하이퐁의 코쿤센터에 지난달 8일 귀환 결혼이주여성과 자녀들이 그린 그림이 걸려 있다.

꿈같은 이야기, 양육비

진수와 민지의 사례처럼 한국에 있는 가족들이 코쿤센터 등을 통해 정기적·비정기적으로 양육비를 보내주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흔치 않다. 양육비는커녕 친부와 연락이 닿지 않아 생사조차 확인하기 힘든 사례가 오히려 더 많다.

번은 최근 한국에 가서 전남편을 찾으려 했으나 실패했다. 그는 “지난해 아이 교육 문제로 잠깐 한국에 들어가 전에 살던 주소로 가봤는데 개발이 되느라 바뀐 것 같았다. 전남편의 현 주소를 찾으려면 소송을 해야 하는데 절차와 비용이 부담돼 포기했다”고 했다. 안정적인 일자리가 없는 그의 월수입은 500만동(약 27만원) 정도다.

그는 “이혼할 당시에는 한국 법도 몰랐던 데다 (임신 중지를 종용하는 전남편으로부터) 아이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빨리 이혼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전남편에게도 양육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양육비를 받은 적은 한 번도 없다. 이젠 연락이 아예 안 돼 양육비를 받으려 해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국가가 나서 친부를 찾아 주거나 정책적으로 양육비 지급을 강제하는 것은 이들에게는 꿈같은 이야기다. 원래도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했던 귀환이주여성들은 베트남으로 돌아온 후 한부모 가정이 되면서 한층 더 취약해졌다. 유엔인권정책센터가 지난해 귀환결혼이민자 161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를 보면, 이들의 월평균 수입은 200만~500만동(약 11만~27만원)이 43.5%로 가장 많았다. 소득이 없다는 응답도 22.4%였다. 지역별로 보면 남부가 북부보다 소득이 더 낮았다.

특히 자녀가 한국 국적이면 베트남의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탓에 경제적 부담이 가중된다. 베트남의 의료보험은 베트남 국적 아동에게만 적용되고, 취학 연령이 되면 초등학교에서 가입하는 단체의료보험으로 변경된다. 그 결과 한국 국적으로 베트남에 사는 아동은 취학 연령 이전엔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더라도 외국인 학생을 처리해본 경험이 드문 일선 학교가 의료보험 가입에 추가 서류를 요구하기도 한다.

베트남 남부 껀터의 한베함께돌봄센터(코쿤센터·KOCUN)에서 지난달 17일 한 아동이 한국어 수업을 듣고 있다.

베트남 남부 껀터의 한베함께돌봄센터(코쿤센터·KOCUN)에서 지난달 17일 한 아동이 한국어 수업을 듣고 있다.

흐엉(34·가명)은 2010년 베트남으로 돌아왔으나 아직 법적 이혼을 마무리하지 못했다. 그러나 올해부터 남편과 연락이 끊어졌고, 월수입 1000만동가량(약 54만원)으로 두 아이를 건사하는 중이다. 그는 “비자 연장 비용과 학비, 식비뿐만 아니라 병원비와 약값도 부담이다. 아이들을 혼자 키우는 게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하이(43·가명)는 발달장애가 있는 아들을 홀로 돌본다. 아이가 7세 때쯤 병원에 데리고 가 “2세 정도의 지능으로 추정된다”는 진단을 받고 2년 동안 약을 먹였으나, 더 이상 치료는 받지 못하고 있다. 일반 학교에서 받아주지 않아 특수학교를 다니게 됐다.

그는 전남편 쪽에서 매달 약 200달러(약 28만원)를 받고, 월 640만동(약 35만원) 정도 드는 특수학교 학비는 재외동포청의 지원을 받는다. 그러나 하이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비용보다는 돌봄 그 자체다. 아이가 다니는 특수학교는 오토바이로 두 시간 걸리는 곳에 있다. 가게를 운영하는 하이는 아들의 등하교에 동생의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동생이 출산을 앞두고 있어 다음달부터는 등하교가 불가능해지는 상황이다. 학교에 다니지 못하면 학비 지원은 끊긴다. 하이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동생의 출산 후 시간이 좀 더 지나면 학교를 다시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한은 이혼 후 3년 정도 우유값을 받았던 것을 제외하면 양육비를 받은 적이 없다. 전남편과는 연락이 되지 않아 생사도 모른다. 성적이 우수한 딸 리엔(15·가명)은 법조인을 꿈꾼다. 하지만 한은 최근 몸도 아프고 일도 끊어져 딸에게 학업을 지원해주기 힘들다. “사정을 말했더니 아이가 ‘한국에 가서 아빠를 찾겠다’ ‘ 더 공부하고 싶다’면서 두 시간 동안 무릎을 꿇고 울더군요. 내가 뭘 할 수 있었겠어요. 그냥 나도 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송혜원 껀터 코쿤센터 소장은 “(결혼이주여성이 한국에 올 때는) 환영하면서 그들이 돌아간 ‘이후’에 대한 준비는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짚었다. 그는 “(센터를) 귀환여성이 직접 알아보고 찾아오거나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간다면 다행인데, 창피해서 숨어버리면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도움이 필요한 귀환여성을 적극적으로 찾아내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 소장은 이어 “(귀환여성 일부와 그 자녀들은) 한국 국적인 만큼 재외국민 등록 등 한국인으로 해외에서 살기 위해 필요한 절차를 안내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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