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탄소세 양극화 ‘노란 조끼’의 분노

2018.11.29 21:05 입력 2018.11.29 21:14 수정

프랑스 탄소세 양극화 ‘노란 조끼’의 분노

1년간 유류세 23% 올랐는데
“내년 또 유류세 인상” 발표
30만명 거리로 쏟아져 나와
가난할수록 세부담 큰 ‘역진’

“빵조각 사려면 4km 나가야”
“기후변화에 효과적” 의견 갈려

프랑스는 지금 분노하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정부가 내년 1월 다시 유류세를 인상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지난 1년간 경유 유류세를 23%, 일반 가솔린 유류세를 15% 올렸는데 여기서 또 올리겠다는 것이다. 마크롱은 지난 대선 공약으로 유류세 등 ‘탄소세’ 강화를 내걸었다.

노란 조끼를 맞춰 입은 시위대가 정부 발표에 반발해 전국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지난 17일(현지시간) 하루에만 30만명이 몰렸다. 24일 열린 전국 집회에도 10만명이 참가했다. 수는 줄었지만 시위 양상은 훨씬 더 과격해졌다.

■ 유류세와 그 불만

유류세는 대표적인 역진세다. 가난할수록 세부담이 크다. 2010년 기준 월소득 800유로(약 100만원) 가구의 에너지 지출 비중은 14%였다. 한 달 5500유로(약 700만원)를 버는 가구는 5%가 채 안됐다. 유류세를 올릴수록 격차는 커진다.

그렇다고 자동차를 포기할 수도 없다. 프랑스 인구 3분의 1이 도시 외곽이나 농촌 지역에 거주한다. 비싼 도시 땅값을 감당하기 어려워 바깥으로 나온 이들이 많다. 자가용 승용차 없이는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이다. 대중교통과 각종 편의시설 접근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프랑스 북부 센에마른주 농촌에 사는 마리옹 프뤼보스트라는 30대 여성은 르몽드 인터뷰에서 “마을에는 아무것도 없다. 빵 한 조각 사려고 해도 집에서 4㎞는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2013년 기준 프랑스의 농촌 지역 자가용 보유 비율은 92.9%에 이른다. 전국 평균은 81.1%, 파리 도시권역 비율은 59.7%다.

사람들은 경유세 부담에 특히 반발한다. 프랑스에서 경유차 비율은 60%가 넘는다. 자가용 의존도가 높고 소득이 낮은 이들일수록 경유차를 선호한다. 그동안 정부가 ‘친환경 에너지’ 경유 사용을 장려하며 세제혜택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경유는 미세먼지 배출 주범으로 전락했다. 정부는 가솔린보다 경유 세금을 더 큰 폭으로 올린다. 프뤼보스트는 “환경을 생각한다면 경유차를 사라고 하더니 이제 말을 바꿔 전기차를 사라고 한다”면서 “전기차가 환경을 오염시킨다고 세금을 올리는 일이 없을 거라고 보장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프랑스 탄소세 양극화 ‘노란 조끼’의 분노

■ 피할 수 없는 대안

전문가들은 당면한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려면 세금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한다. 올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윌리엄 노드하우스 같은 이는 “전 세계가 같은 수준의 탄소세를 부과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기후변화 대책이라고 강조한다. 미국 컬럼비아대 글로벌에너지정책센터는 최근 보고서에서 세금 정책을 통한 탄소 배출 감축 효과를 분석했다. 연구진은 미국의 경우 2020년부터 탄소 배출 1t당 세금 50달러를 매기고, 매년 2%씩 인상할 경우 2025년이면 탄소 배출량을 2005년 대비 최대 46%까지 줄일 수 있다고 전망했다.

툴루즈경제대 크리스티앙 골리에 교수는 지난 20일 르몽드에 실은 글에서 “기후변화에 맞서려면 일반 가정이 더 많은 책임을 가져야 한다”면서 “정부가 더 용감하게 정책을 밀어붙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람들은 보통 정부와 기업 탓을 먼저 하지만 이산화탄소 배출량 절반 이상이 일반 가정에서 나온다고 그는 지적했다.

프랑스 탄소세 양극화 ‘노란 조끼’의 분노

■ 소득재분배와 탄소세

문제는 정치적 설득이다. 마크롱은 취임 직후부터 ‘부자 감세’를 밀어붙였다. 사회연대세, 이른바 ‘부유세’를 부동산 중심으로 축소 개편했다. 호화 요트와 슈퍼카를 과세 대상에서 제외했다. 법인세도 깎았다. 사회학자 피에르 메를르는 마크롱의 이런 정책이 노란 조끼 시위를 낳았다고 지적했다. “환경을 강조하면서 대중교통 확충 같은 데는 관심이 없고, 부자 감세로 구멍난 재정을 서민들 기름값으로 메우려 한다”는 게 시위대의 인식이라는 것이다.

유류세 등 탄소세 수익은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중위소득층 이하에 오히려 혜택이 될 수도 있다. 컬럼비아대 보고서를 보면 탄소세 세수를 정부 적자를 감축하거나 법인세를 낮추는 데 쓴다면 저소득층 부담은 확실히 커진다. 그러나 거둔 돈을 환급 형태로 돌려준다면 세금 부담을 상쇄할 수 있다. 소득세 인하에 돈을 쓴다면 저소득층과 고소득층 부담은 커지지만 중위소득자들은 혜택을 본다. 늘어난 세수만큼 정부 지출을 늘려 경제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는 방법도 찾을 수 있다. 환경운동가 윌리암 토드는 “지금 가능한 최선은 올린 세금만큼 혜택을 돌려주는 것”이라며 “시민들에게 탄소세가 환경뿐 아니라 경제를 활성화하고, 일자리를 늘리는 데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설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토드는 정부가 탄소세 강화에 그칠 것이 아니라 종합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탄소세는 퍼즐 조각의 하나일 뿐”이라며 “정부는 출근하기 위해, 자녀를 학교에 데려다주기 위해 자가용 승용차에 의존해야 하는 수백만명에게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컬럼비아대 연구를 이끈 노아 카우프만 박사는 미국 온라인매체 복스 인터뷰에서 “대중교통 인프라를 확충하고 친환경 에너지 혁신 예산을 늘리는 노력까지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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