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군 ‘부차 학살’에 전 세계 분노

2022.04.04 21:20 입력 2022.04.04 23:03 수정

<b>교회 앞에 매장터</b> 러시아군이 점령했다가 퇴각한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예프) 인근 도시 부차의 한 교회 건물 앞에서 3일(현지시간) 거대한 집단매장지가 발견됐다. 주민들은 러시아군이 민간인들을 집단학살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이날 키이우 인근에서 민간인 시신 410구를 수습했다고 발표했다. 부차 | AFP연합뉴스

교회 앞에 매장터 러시아군이 점령했다가 퇴각한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예프) 인근 도시 부차의 한 교회 건물 앞에서 3일(현지시간) 거대한 집단매장지가 발견됐다. 주민들은 러시아군이 민간인들을 집단학살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이날 키이우 인근에서 민간인 시신 410구를 수습했다고 발표했다. 부차 | AFP연합뉴스

우크라 수도 인근서 민간인 참변
수백구 수습…거리에도 시신
퇴각하며 처형해 집단매장한 듯
미국 “전쟁범죄” 추가 제재 예고
유엔 “독자적인 조사 진행” 밝혀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키예프) 북서부 도시 부차에서 러시아군의 소행으로 보이는 민간인 집단학살이 일어난 데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이 커지고 있다. 러시아의 전쟁범죄를 규탄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유엔은 집단학살과 관련해 독자적인 조사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군이 탈환한 키이우 인근 부차에서는 러시아군에 의해 처형돼 집단매장된 민간인 시신이 잇따라 발견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3일(현지시간) 키이우 인근에서 민간인 시신 410구를 수습했다고 발표했다. 이리나 베네딕토바 우크라이나 검찰총장은 부검 등을 위해 현장 조사를 다녀온 후 페이스북에 “이 지옥을 만든 짐승같은 자들이 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이는 기록돼야만 한다”고 밝혔다.

AFP통신은 러시아의 공습으로 전선 등 기반시설이 끊어진 부차 거리 곳곳에 민간인 옷차림을 한 시신들이 방치돼 있었다고 전했다. CNN방송 등 외신들은 상업위성사진을 분석한 결과 부차의 한 교회 앞마당에서 집단매장터로 보이는 길이 14m의 구덩이가 포착됐다고 보도했다. 아나톨리 페도루크 부차 시장은 지난 2일 최대 300구가 묻혔을 수 있다고 밝혔다. 부차 현지 주민들은 전쟁 초기부터 러시아군에 살해된 민간인이 이곳에 묻혔다고 증언했다.

AFP는 부차 중심가의 한 교회 뒤편에서도 민간인 복장을 한 시신 57구가 묻힌 곳이 발견됐다고 전했다. 이 중 약 10구는 제대로 매장되지 않아 눈에 보일 정도였고, 일부는 검은 시신 포대에 싸여 있었다. 부차에 들어간 AFP 취재진이 자체적으로 확인한 시신만 최소 22구였다. 두 손이 등 뒤로 결박된 채 숨진 시신도 발견됐다. 시신들의 얼굴 피부 상태가 마치 밀랍처럼 변한 것을 고려할 때 수일 방치된 것으로 보인다고 AFP는 추정했다.

“러시아군, 보이는 사람 모조리 쏴”…민간인 폭행·고문까지

<b>거리에 방치된 민간인 시신</b> 러시아군이 퇴각한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예프) 인근 도시 부차에서 2일(현지시간) 자전거와 함께 바닥에 쓰러져 있는 한 마을 주민의 시신이 보인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다 러시아군의 공격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부차 | AFP연합뉴스

거리에 방치된 민간인 시신 러시아군이 퇴각한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예프) 인근 도시 부차에서 2일(현지시간) 자전거와 함께 바닥에 쓰러져 있는 한 마을 주민의 시신이 보인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다 러시아군의 공격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부차 | AFP연합뉴스

‘부차 집단학살’ 전 세계 분노

남편 시신 옆 오열하자
“옆에 묻히고 싶나” 겁박
러시아 측, 의혹 전면 부인

뉴욕타임스는 러시아군이 부차에 있는 민간인들을 의도적으로 겨냥해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고 주민들의 증언을 토대로 보도했다. 부차에 사는 안토니나 포마잔코(76)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나흘째인 지난 2월27일 딸 테티아나(56)를 잃었다. 테티아나는 러시아군 탱크 대열이 나타나자 이를 우크라이나군 탱크로 오인하고 정원으로 구경하러 나갔다가 러시아군이 쏜 총에 맞아 즉사했다.

테티아나의 시신은 여전히 마당에 누워 있다. 기력이 부족한 70대 어머니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나무판자와 비닐로 시신을 덮어놓는 것뿐이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테티아나의 친구 스비틀라나 무니크는 “러시아군은 사람들이 보이는 대로 모조리 쐈다”고 말했다.

부차 주민인 조각가 비탈리 시나딘(45)은 러시아군이 기지로 쓰던 집에서 이틀 동안 쇠막대에 매달린 채 폭행을 당했다고 말했다. 러시아 군인들은 그를 폭행하면서 우크라이나군의 위치를 물었다. 뉴욕타임스는 시나딘의 허벅지와 등이 검붉은 멍으로 덮여 있었다고 전했다.

부차 주민 셰브첸코(43)는 가디언에 러시아 군인들이 노인들도 살해했다고 말했다. 그의 증언에 따르면, 길을 건너던 노부부가 러시아군의 제지를 받고 항의하자 러시아군이 남편을 그 자리에서 사살하고 아내에게 “가던 길을 계속 가라”고 했다. 아내가 남편의 시신 옆에서 오열하자 러시아군은 “남편 옆에 묻히고 싶으면 당신도 죽여주겠다”고 말했다.

제네바협약은 전투에 참가하지 않는 민간인을 보호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민간인 집단학살은 전쟁범죄에 해당한다. 러시아군이 점령한 지역에서 여성들을 집단강간했다는 신고도 잇따르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미 CBS방송 인터뷰에서 러시아군이 부차에서 민간인을 집단사살해 매장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는 것과 관련해 “이것은 집단학살이다. 나라 전체와 국민을 말살하려는 제노사이드”라고 밝혔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느냐는 질문에는 “모든 군 지휘관, 지시와 명령을 내린 모든 이가 적절하게 처벌돼야 한다”며 관련자에 대한 처벌을 촉구했다.

미국, 영국, 유럽연합(EU) 등은 러시아의 행위를 전쟁범죄로 규정하고 추가 제재를 포함한 관련 대응을 예고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CNN에 출연해 “러시아는 전쟁범죄를 저질렀으며 이를 자료로 만들고 정보를 제공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라면서 “적절한 기관이나 기구에서 모든 정보를 하나로 모아 우크라이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히 확인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블링컨 장관은 다만 러시아군이 집단학살을 저지른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는 구체적으로 답변하지 않았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러시아군의 부차 집단학살을 유엔 차원에서 조사할 수 있다는 점을 내비쳤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이날 성명에서 “우크라이나 부차에서 살해된 민간인들의 모습을 보고 깊은 충격을 받았다”며 “효과적인 책임규명을 보장하기 위해 독립적인 조사가 필수적”이라고 밝혔다. 이는 유엔 차원의 조사를 시사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러시아는 부차 집단학살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측이 평화협상을 방해하기 위해 연출 사진을 퍼뜨리고 있다고 주장하며 4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소집을 요구했다. 이에 우크라이나도 러시아가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면서 5일 안보리 소집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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