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엔 안전한 장소 없어… 매일 죽음과 마주하며 살아”

다마스쿠스 국제구호기구의 시리아 직원이 전하는 참상

미국의 군사개입이 운위되며 지난 3주간 전 세계 언론의 관심을 받은 시리아 화학무기 사태는 미·러가 화학무기 제거 로드맵을 만들면서 일단락됐다. 이러한 상황 전개는 2년 반을 내전 속에서 살아온 시리아 사람들에겐 최악은 면한 것이지만 큰 위안이 되지도 않는다. 일상화된 내전에 지칠 대로 지쳐 있기 때문이다. 이는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의 한 국제구호기구에서 일하는 시리아 여성 라마 알타윌(27·사진)의 이야기다. 알타윌은 기자와 주고받은 e메일에서 “시리아에서 안전한 장소는 없다. 매일 죽음과 마주하고 산다”고 했다.

미국의 공격설이 고조될 때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을 중심으로 죽음을 각오한 시리아 정부군 군인들의 모습을 담은 BBC 영상을 언급하자 알타윌은 “그들은 내전과는 아무 상관없는 부모의 아들들이다. 단지 운이 나빠 의무병 복무 시기에 내전을 맞았고, 시간이 지나도 제대하지 못하고 군 복무를 계속하고 있을 뿐”이라고 했다. 하지만 내전의 장기화는 민간 부문 경제를 극도로 위축시켰고, 전쟁에 참가하는 것 이외에는 가족들을 부양할 수 있을 정도의 안정적 일자리가 딱히 없는 상황이 됐다. 정부군이나 반정부군 모두에 해당되는 이야기다. “가족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았다”는 것이 꼭 틀린 말은 아닌 셈이다.

▲ 정부군과 반군 군인들 모두 가족 부양 위해 내전 참여
전기 매일 끊기고 물가 껑충… 학교는 대피소로 바뀌어

“시리아엔 안전한 장소 없어… 매일 죽음과 마주하며 살아”

시리아 전역은 매일 오후 4시부터 자정까지 전기가 끊어지고, 발전기마저 없는 데가 많다. 내전이 시작된 이후 경제제재 등으로 가구당 소비가 20%로 줄었고 물가는 5배가량 올랐다고 한다. 의약품 생산도 절반으로 줄어 수입품에 의존해야 하는데, 그마저도 구하기 쉽지 않다. 학교는 국내 난민들의 대피소로 바뀌어 학생들이 공부할 공간이 없다. 상당수 사람들은 난민으로 국경 밖을 떠돌거나 국내 난민이 되어 떠돌기 때문에 학교에 보낼 여건도 되지 않는다. 알타윌은 “언론은 대개 시리아인들의 이런 고통은 전하지 않는다. 그저 정치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이야기들만 발굴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알타윌은 오랜 내전 속에서 냉소주의, 특히 언론에 대한 불만이 많아진 모양이다. 그는 전 세계적으로 격앙된 반응을 불러일으킨 화학무기에 희생된 어린이들의 사진을 언급했다. 그는 “언론은 화학무기 공격으로 숨진 어린이 사진을 사람들의 감정을 움직이는 데에만 활용하려 들 뿐”이라며 “나는 아이들을 그렇게 이용하는 것을 별로 지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걸 본 사람들은 조만간 그러한 폭력에 익숙해지고 무감각해질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보다 더 강한 충격이 있기 전에는 시리아 문제에 관심을 가지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화학무기 공격에 대해서는 “누가 했는지 말이 많지만 정작 중요한 죽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이 없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얘기하지 않고, 누구 잘못이냐만 얘기한다. 우리 감정이 점점 더 차가워지고 있는 게 두렵다”고 했다. 알타윌은 오랜 내전으로 고통받아온 시리아인들에게 중요한 것은 ‘자유냐 아사드냐’가 아니라 어서 이 상태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뿐이라고 했다.

외부에서 어떤 지원이 있으면 좋겠느냐는 물음에 “시리아는 다른 사람들의 개입도 동정도 필요하지 않다. 우리 스스로 해결하도록 내버려뒀으면 좋겠다. 시리아에 들어온 군인들이나 무기도 모두 지금 이 상황에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전쟁 뒤 분단된 한국이 그런 나쁜 상황을 어떻게 이겨냈는지 교훈을 얻고 싶고, 만약 지원을 한다면 가구당 1달러씩만 기부해줘도 시리아인들이 하루를 사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다만 유엔을 통한 기부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유엔은 고급 호텔 짓는 데만 돈을 쓴다”고 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작은 부탁이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시리아인들을 만나면 동정하지 말아달라. 그 내전을 겪고도 어떻게 살아남았느냐고, 그리고 어떻게 시리아가 그렇게 아름다운 나라로 남아 있을 수 있는지 경탄해주길 바란다.”

알타윌은 홈스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18세 때 다마스쿠스로 이주해 다마스쿠스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했다. 알레포에서 3년간 유엔팔레스타인난민구호사업기구(UNRWA) 직원으로 일하다 지난해 6월 내전이 격화돼 그만뒀다. 지금 일하고 있는 국제구호기구의 이름은 밝히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기자는 워싱턴의 한 국제기구 직원의 소개로 알타윌과 연락할 수 있었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