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곧은 몸들 속 다른 몸, 차별과 평등에 대해 묻다

2024.06.28 08:30 입력 2024.06.28 09:59 수정

휠체어 위에서 몸 숨기던 작가

무대 위로 올라와 무용수 도전

불수의적 움직임, 통제하기보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끌어안기

‘접근성’ 모색, 새로운 공동체 윤리 돼야

무대 위에 선 김원영 작가. 옥상훈 제공

무대 위에 선 김원영 작가. 옥상훈 제공

온전히 평등하고 지극히 차별적인 |

김원영 지음 |문학동네 |360쪽 |1만9000원

2021년 가을, 김원영 작가는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대학원 과정에 지원한다. ‘연극하는 변호사’ ‘춤추는 변호사’로도 잘 알려진 그는 수년 전부터 무대에 오르며 배우로, 무용수로 활동해 왔다. 면접 당일 도착한 수험장에는 총 46명의 지원자가 입실해 있었다. 그중 휠체어를 탄 응시생은 김 작가 혼자였다.

한예종에 지원한 건 안무와 공연연출에 관한 지식과 경험을 체계적으로 쌓아 더 좋은 무용수가 되고 싶어서였다. 한편으로는 소수자로서 ‘장애를 가지고 한예종 무용과 입시에 도전한다’는 생각 자체에 매력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대기실에 들어서자 이 모든 생각들은 사라지고 그는 “아득한 위화감”에 휩싸인다. 건강하고, 장애가 없고, 대칭적이고, 높은 근력과 민첩함과 유연성으로 다져진, 소위 말하는 이상적인 신체를 가진 수험생들 사이에 서니 “저 깊은 굴욕의 구렁텅이로 고꾸라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온전히 평등하고 지극히 차별적인>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토대인 ‘몸’과 그 ‘몸’을 가장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예술인 ‘춤’을 주제로 ‘차별과 평등의 문제’를 다룬다. 작가는 책의 서두에서 ‘아름다움’에도 기회의 평등이라는 사회적 가치가 적용될 수 있는지 묻는다. 도덕, 교양, 인권의식에 기대지 않더라도 장애가 있는 몸, 무대에 선 장애인 무용수들의 춤 그 자체에 매혹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그는 지극히 비장애인 중심적인 사회에서 ‘정상성’에 포획된 기준들에 끌려가지 않으면서도 ‘평등’이라는 추상적 이념의 종속변수로 ‘아름다움’을 가두지 않는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을 포함해 구체적인 삶 속에서 자신의 몸과 새로운 관계를 맺고 무대 자체를 변형시키며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만의 아름다움의 길을 낸 예술가들을 조명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공동체의 새로운 윤리로 구체적 몸들이 서로 연결될 ‘접근성을 위한 실천’을 주문한다.

작가는 한예종 시험에서 떨어졌다. 그렇지만 그는 “아득한 위화감”에 압도되지 않고 이내 “올곧은 몸들이 두 다리를 공중에서 앞뒤로 쭉 펼치며 멀리 점프하는 가운데서 바닥을 기”며 자신이 준비했던 동작을 연습하고 시험을 마쳤다. 시험을 마친 후 “그때 나는 내 몸을 보호하고 감추고 보살피는 대상으로만 여기지 않는 데 거의 성공한 것 같았다”고 말한다.

10여년 전 한 계기로 무대에 올라서기 전까지 그는 자신의 몸을 “비장애인처럼 위장하며” 살아왔다. 어린 시절 “(가슴이) 불거지지 말 것, 기어다니지 말 것”이라는 요청 속에서 살아왔던 그는 자신의 행동 반경을 줄여가며 “몸을 최대한 숨기고 통제해야 한다”는 삶의 원칙을 세웠다. 지식을 앞세우면 자신의 몸을 보호할 수 있다는 생각에 공부를 생존 방편으로 삼았다. 그러다 휠체어에서 내려와 무대에 서게 되면서 “가장 생생한 내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나를 평등에서 멀어지게 만든다고 여겼던” 몸에 집중하면서 오히려 “평등하고 넓고 깊은 ‘힘’의 기원에 접촉”할 수 있게 됐다고 말한다.

<온전히 평등하고 지극히 차별적인>. 문학동네

<온전히 평등하고 지극히 차별적인>. 문학동네

작가는 ‘비정상적 몸’으로 간주됐던 이들이 무대에 서게 된 역사에 대해 말한다. 19세기 말 유럽과 미국에서 유행했던 ‘프릭쇼’는 ‘기이한 몸’을 전시하는 일종의 대규모 산업이었다. 프릭은 비유럽계 이민자들, 장애인 등 ‘보통이 아닌’ 몸을 가졌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을 통칭했다. 프릭쇼는 폭력과 착취의 현장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사회에서 배제됐던 몸들이 직업적으로 활약하고 대중에게 영향을 미치는 통로이기도 했다. 작가는 “프릭이 된다는 건 한 시대의 욕망과 배제가 모두 포함된 용광로로 뛰어드는 일이었다”고 말한다. 한편 한국 무용의 전통에서 장애가 등장하는 ‘병신춤’에 대해서도 서술한다. ‘병신춤’은 장애를 희화화한다는 비판과 장애가 있는 몸을 통해 해방의 장으로 나아갔다는 상반된 평가를 받고 있다. 작가는 공연자들이 장애인의 몸을 세부 움직임까지 흉내냈다는 점에서 사실성을 무시했다는 평가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장애가 있는 이들이 공연자로 참여한 기록을 찾기 어렵다는 점에 주목하며 “어떤 이유에서든 ‘병신춤’을 춘 ‘병신’의 존재가 없다면” 해방과 화합의 장으로 이어졌다는 평가 또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한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오면서 ‘다른 몸’들은 고유의 길을 내어가고 있다. 독일 브레멘 극장 무용단의 공연 <하모니아>와 ‘어찌할 수 없는’ 자신의 몸을 통제하기보다 자신의 방식으로 끌어안은 백우람 배우의 사례 등은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하모니아>에서는 장애인 무용수가 등장한 이후 곧바로 비장애인 무용수가 그 움직임을 흉내내며 등장하지만 이는 ‘병신춤’에서 나타났던 ‘희화화’의 문제제기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작가는 “‘조롱’이나 ‘비하’가 아닌 몸들 사이에서 깊은 연결감을 느끼게 하는” 극의 구성, “단순한 모방이 아닌 타인의 몸이 ‘되고자’ 노력하는 것” 등에 대해 말한다. “그 개인을 이해하고 잠시나마 그 사람이 ‘되는’ 일”과 “그의 ‘장애’만은 추출해 조롱하는 것”은 다르다.

2010~2013년 극단 ‘애인’이 공연한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백우람 배우가 연기한 ‘블라디미르’는 2013년 밀양여름연극축제에서 남자연기상을 수상하는 등 호평을 받았다. 작가는 “백우람의 블라디미르가 진실했던 이유는 백우람이 자신의 몸 안에서 작동하는 불수의적 움직임을 정상적으로 보이기 위해 애써 통제하지 않으면서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 움직임을 끌어안았기 때문이다”라며 “그것 역시 일종의 ‘통제’다. 다만 그 ‘통제’는 사회질서에서 벗어나는 흐름을 규제하는 일종의 치안활동이 아니라 그 예측 불허한 자신의 움직임을 더 깊은 차원에서 이해하고 그것과 협상하며 자신이 추고자 하는 춤, 하고자 하는 연기/표현의 과정에 통합하는 일종의 정치였다”고 말한다.

한편 작가는 새로운 공동체의 윤리로 ‘접근성을 위한 실천’을 주문한다. 흔히 ‘배리어 프리’로 알려진 접근성에 대한 고민은 엘리베이터 설치,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해설’부터 장애인 이동권을 주장하는 출근길 지하철 시위에서도 나타난다. 접근성을 위한 실천은 “모종의 규칙들로 정리할 수 없는 수영이나 자전거 타기처럼 ‘육성’되는 기술”이며 “구체적인 개개인과의 만남을 통해 각각의 개별적인 접근성이 어떻게 확보될 수 있는지 경험을 쌓고, 그 각각의 다른 경험에 상호 연결하고 통합해야 탁월함에 근접할 수 있다”. 이는 차별적인 ‘능력’과 구별되는 동등한 ‘힘’에 대해 이해할 때 가능하다. 개별적인 존재들의 ‘능력’은 분명 차별적이지만, 각자의 구체적인 역사가 깃들어 있는 몸은 동등한 ‘힘’의 원천이라는 뜻이다. 작가는 말한다. “온전한 평등은 추상적인 규범이나 이념으로서가 아니라 ‘능력’의 측면에서 지극히 차별적인 관계에 놓인 존재들이 상대의 ‘힘’을 존중하고 신뢰할 때 달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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