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C, 팔레스타인 내 전쟁범죄 수사…이스라엘 "반유대주의" 반발

2021.03.04 17:31 입력 2021.03.04 18:36 수정

이스라엘 북부 나사렛에서 지난 1월 13일(현지시간) 경찰이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이 지역 방문에 항의하는 팔레스타인 시위대를 체포하고 있다.  나사렛|AP연합뉴스

이스라엘 북부 나사렛에서 지난 1월 13일(현지시간) 경찰이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이 지역 방문에 항의하는 팔레스타인 시위대를 체포하고 있다. 나사렛|AP연합뉴스

국제형사재판소(ICC)가 3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땅에서 일어난 전쟁범죄에 대해 공식 조사를 개시한다고 밝혔다.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양측 모두의 전쟁범죄가 조사 대상이나, 이스라엘은 “반유대주의와 위선의 절정”이라며 반발했다. 오는 23일 총선을 앞둔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에게도 정치적 위기가 왔다.

파투 벤수다 ICC 검사장은 이날 성명에서 “5년여간 공들여 예비조사를 한 끝에 조사를 개시한다”면서 “오랜 폭력과 불안의 악순환에 깊은 고통과 절망에 시달린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양측의 희생자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의 반발을 의식한 듯 “두려움이나 호의 없이 독립적이고 공정하고 객관적인 접근을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ICC는 지난달 5일 요르단강 서안, 가자지구, 동예루살렘 등 국제법상 팔레스타인 땅에서 일어난 전쟁범죄에 대해 ICC가 관할권을 가진다고 판단했다. ICC의 관할권에 대한 국제 합의인 ‘로마 규정’에 따라 팔레스타인도 당사국 지위를 갖고 있다고 봤다.

ICC는 팔레스타인인 무장세력의 2014년 6월13일 이스라엘 소년 3명 납치·살해 사건을 먼저 조사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조사 대상은 2014년 7~8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과 이스라엘군의 일상적인 팔레스타인인 피살 등으로 차츰 넓혀질 것으로 보인다. 50일 전쟁으로 불리는 가자지구 공습 당시 팔레스타인 2000명 이상이 희생됐다. 이스라엘군이 검문소에서 팔레스타인인을 사살하는 일도 잦아졌다.

팔레스타인인이 지난해 5월 30일 이스라엘 경찰에게 사살된 아들의 사진을 동예루살렘의 자택에서 들고 오열하고 있다. 예루살렘|AP연합뉴스

팔레스타인인이 지난해 5월 30일 이스라엘 경찰에게 사살된 아들의 사진을 동예루살렘의 자택에서 들고 오열하고 있다. 예루살렘|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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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반유대주의적 위선의 전형”이라고 반발했다. 가자지구 공습에 책임이 있는 베니 간츠 국방장관도 자신을 포함한 이스라엘인 수백명이 ICC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은 ICC 수사관들의 입국을 허용하지 않을 것 같다고 이스라엘 매체 하레츠가 전했다.

이스라엘은 ICC의 전쟁범죄 수사가 이스라엘에 대한 국제사회의 여론을 악화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예루살렘포스트는 “골리앗 사건에 맞선 다윗이었던 이스라엘의 정당성 싸움은 이제 훨씬 더 불가능한 임무가 됐다”고 평가했다. 독일 나치 학살의 피해자였던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인에게는 가해자가 됐다는 것이다.

ICC가 동예루살렘을 포함한 요르단강 서안, 가자지구를 팔레스타인 땅으로 인정한 것도 이스라엘로서는 껄끄럽다. 이스라엘은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을 계기로 두 지역을 점령했다. 가자지구에서는 1994년 이후 물러났으나, 요르단강 서안에는 국제사회의 반대 속에 기존에 살던 팔레스타인인들을 쫓아내고, 자국민을 이주시키고 있다.

ICC의 조사는 오는 23일 총선을 앞두고 재집권을 노리는 네타냐후 총리에게도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예루살렘포스트는 네타냐후 총리 반대자들이 총리의 실정을 비판할 수 있게 됐다면서 “더욱이 네타냐후 총리는 ICC 조사의 가장 유력한 표적 중 한 명”이라고 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지지자들이 지난달 26일(현지시간)예루살렘의 마하네 예후다 시장에서 오는 23일 총선을 앞두고 유세하고 있다. 예루살렘|AFP연합뉴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지지자들이 지난달 26일(현지시간)예루살렘의 마하네 예후다 시장에서 오는 23일 총선을 앞두고 유세하고 있다. 예루살렘|AFP연합뉴스

미국은 ICC의 이번 결정에 반대했다.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우리는 이스라엘을 부당하게 겨냥한 조처에 반대한다”면서 “ICC는 이 사안에 관할권이 없다”고 말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에서 동맹국인 이스라엘 편에 선 것이다. 미국은 ICC와 대립한 적이 있기도 하다. ICC가 아프가니스탄전에서 미군이 벌인 전쟁범죄를 수사하려 하자,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지난해 9월 ICC 관계자들에게 제재를 가했다.

반면 팔레스타인은 이번 조사를 환영했다. 요르단강 서안에 들어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는 이날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주민을 상대로 저지른 범죄는 지속적이고 체계적이며 광범위했다”면서 “평화에 필요한 정의와 책임 구현을 위한 팔레스타인의 열띤 노력에 도움이 되는 조치”라고 반겼다. 가지지구를 관할하는 무장단체 하마스도 “우리를 상대로 한 이스라엘의 점령 전쟁 범죄를 조사하겠다는 ICC의 결정을 환영한다. 우리의 희생에 대한 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길”이라고 했다.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ICC 회원국은 어떠한 정치적 압력으로부터 수사관들의 업무를 강력하게 보호해야 한다”면서 “ICC 검사가 범죄에 연루된 사람에게 소송을 제기하는 것을 막아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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