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도안식 언론탄압, 최대 언론사 ‘자만’ 강제 법정관리

2016.03.06 15:42 입력 2016.03.06 18:54 수정
장은교 기자

터키 최대신문사 ‘자만’이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경영난때문이 아니라, 법원과 검찰이 자만이 테러를 모의하고 테러조직을 도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법원은 지난 4일(현지시간) 법정관리인을 임명했고 자만은 이제 정부의 관리를 받게 됐다. 경찰은 이날 이스탄불에 있는 자만 사무실을 급습해 신문사를 ‘접수’했다. 자만 본사 앞에는 수백여명의 시위대가 몰려 언론의 자유를 외치고 있다.

5일(현지시간) 자만 홈페이지

5일(현지시간) 자만 홈페이지

자만은 터키에서 가장 많은 독자와 발행부수를 기록하고 있는 신문사다. 방송사와 영자신문, 통신사도 소유하고 있다. 보수성향이었으나, 2013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의 비리의혹을 크게 보도하면서 대표적인 반정부 언론이 됐다. 자만은 1960년대말부터 터키의 현대적인 교육·봉사운동인 히즈메트 운동을 주도한 이슬람 성직자 페툴라 굴렌(77)과 관련이 깊다. 기자를 포함해 직원 80% 이상이 굴렌이 세운 학교에서 배출된 엘리트로 구성돼있다. 굴렌은 한때 친 에르도안 인사로 분류됐으나, 굴렌이 에르도안을 공개비판하면서 사이가 멀어졌다. 에르도안 정부는 2013년 자만이 에르도안의 비리를 보도한 것도 모두 허위이며 굴렌의 정치적 목적때문이라고 주장했다. 2014년에도 편집국장이 체포된 적이 있다.

현직 대통령을 가장 앞장 서 비판해온 신문사가 강제 법정관리를 당하게 되자, 4일 신문사 앞에는 수백명의 군중이 몰려들었다. 자만 기자들과 가족들, 다른 언론인들, 일부 야당 인사들, 시민들이 모여 “언론의 자유”를 연호했다. 4일 밤부터 폭력진압경찰이 동원돼 시위대에 최루탄과 물대포, 고무탄을 쏘아 부상자가 발생했다. 시위대는 “디지털 시대에 정부가 입을 막는다고 언론의 자유가, 진실이 사라질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5일(현지시간) 터키 이스탄불의 자만 본사 앞에서 언론의 자유를 외치던 시위대가 경찰이 쏜 최루탄을 피해 흩어지고 있다. 이스탄불|AP연합뉴스

5일(현지시간) 터키 이스탄불의 자만 본사 앞에서 언론의 자유를 외치던 시위대가 경찰이 쏜 최루탄을 피해 흩어지고 있다. 이스탄불|AP연합뉴스

자만은 5일 특별판을 제작해 “오늘 터키의 민주주의는 역사상 가장 치욕스러운 암흑의 날을 맞았다”고 주장했다. 터키 정부는 “정치적인 목적이 아니라 법적인 절차에 따른 조치”라고 주장했으나, 자만 기자들은 사무실에 들어가도 기사접속시스템 통신이 막혀있거나 취재 파일이 다 삭제됐다“고 주장했다.

비판적인 언론인들을 체포하고 회사를 압수수색하고 경영을 방해하고 결국 파산까지 몰고가는 것은 ‘에르도안식 언론탄압법’으로 자리잡았다. 에르도안은 총리 집권 이후 소셜미디어(SNS)를 단속하고 정부에 비판적인 메시지를 띄운 이용자들을 추적해 체포하거나 가뒀다. 이중에는 미성년자들도 포함됐다. 2014년에도 자만 편집국장과 사만욜루TV 회장 등 언론사 대표 수십명에 대해 체포작전을 실행했고, 비판적인 기사를 쓴 기자들을 수시로 구금했다. 주요 혐의는 국가안보위협, 테러지원 등이었다. 총선 전에도 노골적으로 언론사들을 압수수색했다. 자만에 대한 법정관리는 3년여에 걸친 언론탄압의 종합판이다.

5일(현지시간) 터키 이스탄불의 자만 본사 앞에서 법원의 강제 법정관리 결정에 항의하던 한 여성이 시위도중 부상을 당해 얼굴에 피를 흘리고 있다. 경찰은 4일과 5일 시위대에 최루가스와 물대포, 고무탄을 쏘았다. 이스탄불|AP연합뉴스

5일(현지시간) 터키 이스탄불의 자만 본사 앞에서 법원의 강제 법정관리 결정에 항의하던 한 여성이 시위도중 부상을 당해 얼굴에 피를 흘리고 있다. 경찰은 4일과 5일 시위대에 최루가스와 물대포, 고무탄을 쏘았다. 이스탄불|AP연합뉴스

2003년부터 총리로 재직한 에르도안은 2013년 반정부시위대를 무력으로 제압했고, 2014년 8월에는 최초의 직선제를 통해 대통령에 당선됐다. 에르도안은 헌법을 개정해 내각책임제를 대통령제로 고치고 장기집권하려는 야망을 품고 있다.

자만 계열의 지한 통신사 기자인 알파고 시나시(27)는 6일 경향신문과 인터뷰에서 “자만에 경찰이 들이닥치고 시위대가 경찰에 맞아 피를 흘리고 있던 시간에 터키 방송에선 일제히 드라마만 방영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정부를 비판할 수 있는 언론사가 없다. 자만은 정부에 가장 비판적이고 가장 영향력 있는 큰 언론사인데 자만까지 이렇게 된다면 누구도 에르도안 정부를 제대로 감시할 수 없을 것”이라며 “특히 앞으로 있을 선거 결과 발표는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정부의 관리’에 들어간 자만은 6일 1면에서 에르도안이 이스탄불의 한 교각 개통행사에 참석한 동정기사를 실었다. 대통령에 가장 비판적이던 언론에서 하루만에 대통령의 행보를 전하는 친정부 보도를 1면으로 전하는 언론으로 바뀐 것이다. 자만 웹사이트는 6일 “현재 업데이트 중이고, 편향되지 않은 보도를 제공하겠다”라는 글을 게재하고 있다.

6일(현지시간) 자만 홈페이지

6일(현지시간) 자만 홈페이지

에르도안 정부가 ‘난민 수용’을 명분으로 가입을 추진중인 유럽연합(EU)도 이날 터키의 언론자유가 침해돼선 안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터키는 2015년 국경없는 기자회가 발표한 언론자유지수에서 180개국 중 149위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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