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시대, 메신저가 된 발코니

2020.03.25 19:26 입력 2020.03.25 20:44 수정

지난 24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한 건물 발코니에 군부 독재시절 희생자 수를 가리키는 ‘3만’ 등이 쓰인 수건들이 걸려 있다(왼쪽 위). 독일 베를린의 한 주택 발코니에서24일 한 남성이 멜로디언을 연주하고 있다(오른쪽 위). 지난 18일 스페인 팜플로냐에서 주민들이 트럼펫을 불거나, 냄비를 두들기고 있다.(아래)  부에노스아이레스·베를린·팜플로냐|AP로이터연합뉴스

지난 24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한 건물 발코니에 군부 독재시절 희생자 수를 가리키는 ‘3만’ 등이 쓰인 수건들이 걸려 있다(왼쪽 위). 독일 베를린의 한 주택 발코니에서24일 한 남성이 멜로디언을 연주하고 있다(오른쪽 위). 지난 18일 스페인 팜플로냐에서 주민들이 트럼펫을 불거나, 냄비를 두들기고 있다.(아래)  부에노스아이레스·베를린·팜플로냐|AP로이터연합뉴스

코로나19로 집에 머물러야 하는 시대, 사람들은 거리로 나가는 대신 발코니에 선다. 발코니 위에서 정치·사회 현안에 목소리를 내고, 코로나19와의 대치 최전선에 있는 의료진을 응원하며 만날 수 없는 서로에게 안부를 전하기 위해 노래를 부른다. 코로나19의 시대에 ‘소통 통로’로 기능한다는 점에서 발코니가 일종의 ‘메신저’가 되고 있는 것이다. 바이러스가 계속 확산되고 있는만큼 ‘메신저 발코니’의 존재감은 갈수록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도심 곳곳 건물 발코니에 지난 24일(현지시간) 군부독재 시절 인권침해 피해자 어머니들의 모임인 ‘5월 광장의 어머니들’을 상징하는 하얀 수건이 내걸렸다고 현지 언론 클라린 등이 보도했다. 수건에는 독재시절 희생자 수인 ‘3만’이라는 숫자와 과거사 진상보고서의 이름인 ‘눈카 마스’(이제 그만)란 단어가 쓰여 있었다. 3월24일은 44년 전 호르헤 비델라가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날로, 인권 운동가들을 비롯한 시민들은 과거사 청산을 촉구하고 희생자를 기억하기 위해 매년 거리 행진을 벌였다.

하지만 지난 19일 정부가 코로나19의 확산을 막기 위해 전국에 이동제한 조치를 내리면서 올해 시민들은 거리행진 대신 ‘발코니 손수건 걸기’를 택했다.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대통령도 이날 트위터에 “예방적 강제격리는 우리를 돌보기 위한 것이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것을 막지는 못한다. 오늘 우리는 집에서 기억과 진실과 정의를 위해 손수건을 들었다. 눈카 마스!”라고 썼다.

유럽에서 이탈리아 다음으로 코로나19 감염자와 사망자가 많이 나온 스페인에선 지난 18일 오후 9시 수천명의 시민들이 발코니에서 냄비 시위를 벌였다. 스페인에선 2014년 퇴위한 후안 카를로스 전 국왕이 재임 시절 사업 거래를 돕는 대가로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 거액의 뇌물을 받았다는 스캔들이 최근 터졌다. 아들인 펠리페 국왕이 지난 18일 TV연설에서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자면서 아버지의 부패 혐의에 대해 침묵하자, 성난 시민들이 시위를 기획한 것이다. 시민들은 “부패한 돈은 우리의 의료시스템에 돌아가야 한다”고 비판했다.

코로나19 감염자가 급증하고 있는 브라질에선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24일 TV·라디오 연설을 통해 “대규모 감금을 끝내야 한다”고 최근 분위기와 동떨어진 주장을 꺼낸 것이 대규모 냄비시위를 불렀다. 상파울루 시민들이 연설 직후 발코니로 나와 냄비와 프라이팬을 두들겼다고 BBC 특파원이 전했다. 중남미 국가에선 ‘카세롤라소’(cacerolazo)라 불리는 냄비 시위는 스페인어 카세롤라’(cacerola·냄비)에서 나온 말로, 곧 권력자에 문제가 생겼다는 신호로 읽힌다.

코로나19 시대의 발코니는 희망을 노래하는 장소로도 활용되고 있다. 특히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네덜란드 등 코로나19 피해가 심각한 나라들에서 집에 갇힌 사람들이 발코니에 나와 노래를 부르거나 악기를 연주하며 이 위기를 이겨낼 수 있다며 서로를 격려하는 모습이 자주 포착되고 있다. 이들 국가의 시민들은 발코니에서 박수를 치면서 최전선에 있는 의료진을 응원하기도 한다. 영국 가디언은 이런 행동들이 코로나19 사태에서 희망을 말하는 것이라며 ‘발코니 스피릿’(Balcony spirit·발코니 정신)이라고 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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