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망받던 한 장교의 좌절···그는 너무 순진했다

2014.10.27 10:24 입력 2014.10.27 13:36 수정

육군 헌병 병과에서 촉망받던 황 모 중령(49, 육사 45기)은 지난 9월 또다시 대령 진급 심사 대상자에 오르지 못했다. 2011년부터 연거푸 4년째다.

1989년 소위로 임관한 황 중령은 위관급 장교 시절 초등군사반, 고등군사반을 전 병과 통틀어 수석으로 마쳤고, 장교들이 소령 때 등록하는 육군대학은 전체 차석으로 졸업했다. 요직을 두루 거친 그의 결혼식 때는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주례를 섰다.

잘나가던 그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촉망받던 한 장교의 좌절···그는 너무 순진했다

2011년 6월 국방부 검찰단은 ‘헌병 장성 횡령 의혹 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보도자료에는 수도방위사령부 헌병단장으로 재직했던 이 모 전 준장(육사 38기)의 비리행위가 구체적으로 적혀 있다.

이 전 준장은 공금을 횡령하기 위해 병사 부식용 빵 구입비, 사무기기 유지비, 주방용품비, 방탄 헬멧 도색비 등에 손을 댔다. 부하들에게 구체적인 금액과 수법도 일러줬다. “무조건 현금으로 확보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비용 부풀려 지급한 뒤 되돌려 받기, 리베이트 받기, 장병 격려금 가로채기, 헌병 수사관 여비와 같은 활동비 빼돌리기 등의 수법을 썼다. 이 전 준장이 2007년부터 이듬해까지 빼돌린 것으로 확인된 금액만 4700여만원에 이른다. 국방부 검찰단은 당시 “영수증, 부책 등의 관련 자료 폐기, 수사과정에서 관련자들의 비협조적 태도 등으로 인한 어려움이 있었다”고 밝혔다.

이 전 준장의 지시를 받고 박 모 소령을 비롯한 3명의 장교가 예산 관련 문서를 허위로 작성하는 방식으로 현금을 확보해 이 전 준장에게 건넨 것으로 수사결과 밝혀졌다.

이 수사의 발단은 2008년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박 소령은 이 전 준장(당시 대령)의 부당한 지시를 거스르지 못하고 범죄 행위에 가담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이런 부정한 일을 가만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군 특성상 지휘관을 직접 제보할 자신이 없었다.

그는 평소 친하게 지내던 황 중령에게 정신적 고통을 호소했다. 황 중령은 박 소령이 털어놓은 이 전 준장의 비위 내용을 항목별로 받아 적은 뒤 정리해 문건을 만들었다. 그러나 오랜 고민 끝에 그 역시 일단은 덮어두기로 했다.

2010년 군 인사철을 앞두고 이 전 준장이 육군 중앙수사단장(헌병 병과장)으로 유력하다는 소문이 돌았다. 중수단장은 헌병 병과 내에서 국방부 조사본부장 다음가는 2인자 자리다.

황 중령은 고심 끝에 이 전 준장이 병과장에 오르는 것만은 막아야겠다고 결심한다. 병과의 명예가 걸린 일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 전 준장의 비위 사실을 적은 제보편지를 익명으로 작성해 그 해 11월 당시 중수단장이던 승 모 전 소장(육사 37기)에게 우편으로 보냈다. A4용지 5장 분량이었다. 이 편지에는 이 전 준장의 횡령 수법과 액수, 가담자 이름 등 상당히 구체적인 내용이 적혀 있었다.

하지만 2010년 당시 제보편지를 받은 승 중수단장은 이 전 준장에 대한 수사가 아니라 투서자를 색출하는 데에만 열을 올렸다. 그는 그 해 11월17일 음해성 투서를 보낸 자를 색출해 강력히 처벌하겠다고 경고했고, 다음날엔 영관급 장교들에게 “군 기강 문란 및 이적 행위를 한 제보자를 추적해 잡겠다”는 내용의 서신을 보냈다. 수사팀은 일부 대령들에게 통화 내역 제출을 요구했다.

황 대령이 보낸 제보편지를 보면 그가 군을 너무 ‘만만하게’ 봤던 걸 알 수 있다.

“이러한 병과 대령 비리 내용이 외부에서 처리되거나 알려질 경우 우리 육군은 물론, 병과 근간을 뒤흔드는 대혼란이 뻔한 상황에서 정말 몇 날 며칠 밤을 잠못이루고 고민하다가 그래도 청렴결백함의 표상이신, 믿을 수 있는, 존경하는 병과장님의 정의롭고 지혜로운 처분을 기대하면서 보고를 올리기로 결심했습니다.”

황 중령의 제보에도 이 전 준장은 준장 진급에 성공해 육군 중수단장에 올랐다. 중수단장이던 승 전 소장은 국방부 조사본부장으로 올라가 병과 1인자가 됐다.

황 중령은 2011년 1월 초쯤 김관진 당시 국방부 장관 앞으로 두번째 제보편지를 보냈다. 편지에는 이 전 준장이 부대운영비를 빼돌려 고위 장성을 상대로 한 로비에 사용했다는 구체적인 내용과, 1차 제보편지를 받은 승 전 소장이 편지를 음해성 투서로 몰아가고 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했다.

“제가 진정 군기강을 문란케 하는 이적행위자였는지 참으로 고심했습니다. 병과원이 병과장에게 자정하도록 순수한 마음으로 제보한 것에 대해 바로 인사군기문란 투서자로 낙인되는 살벌한 분위기! 그래도 나름 기다렸습니다. 순진하게…”

그렇다. 그는 여전히 너무 순진했다.

김관진 당시 장관은 국방부 조사본부장을 맡고 있던 승 전 소장에게 투서자를 색출해 처벌하라고 지시했다. 투서 내용에 대한 조사도 덧붙였다. 이미 부실 수사를 지휘한 사람에게 어이없게 또 칼자루를 맡긴 것이다. 조사본부는 제보자 색출에 전방위적으로 나서 결국 황 중령이 제보자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연합뉴스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연합뉴스

조사본부가 2011년 1월30일 작성한 ‘장군진급관련 투서사건 중간보고’는 제보자 색출에 방점을 찍었다. 이 전 준장은 그 해 1월 말 전역을 신청했다. 옷을 벗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하려 한 것이다. 이 전 준장의 전역으로 추가 조사는 흐지부지 됐다.

군은 황 중령에게 군무원 자리를 주겠다며 회유하기도 하고, 전역을 압박하기도 했다. 이미 그는 군 내에서 ‘사소한 잘못을 빌미로 선배를 잡아먹은 놈’이라는 둥 악성 루머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 해 4월 여러 언론에 이 전 준장 사건이 보도됐다. 김관진 당시 장관은 뒤늦게 재조사를 지시했고 군 검찰은 앞서 나온 대로 투서에 담긴 내용의 사실 여부 조사에 착수했다.

군 검찰은 “의혹이 제기된 횡령 부분에 대해 다소 과장된 부분이 있으나 대부분이 사실임을 확인했다”며 “범죄 혐의가 드러난 이 전 준장은 민간 검찰에 이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승 전 소장에 대해서도 “이 전 준장의 범죄 혐의를 인지하고서도 적시 수사에 착수하는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국방부 장관에게 대상자를 의원 전역하는 조치로 사건 조기 종결을 유도하는 부적절한 건의를 했다. 법령 준수의무 위반으로 징계 의뢰했다”고 했다.

또 “지휘계통과 절차를 지키지 않는 진급관련 투서행위는 어떠한 이유로도 용납할 수 없는 군기강 문란의 해군행위로 군에서 반드시 척결되어야 한다”며 황 중령에 대한 경고를 잊지 않았다.

이어진 일련의 사건들은 ‘기대’를 벗어나지 않았다. 황 중령이 제기한 이 전 준장의 진급 로비 의혹에 대해서는 “이 전 준장의 금융거래 내역을 분석한 결과 일부 군 납품업체 관계자와 불분명한 거래 내역은 있으나, 진급을 위한 군 관계자와의 의심스러운 금융 거래를 확인할 수 없었고…(중략)…이 전 장군과 의혹이 있는 상급지휘관 모두 극구 부인하고 있어 확인이 제한됨”이라고 결론 내렸다.

이 전 준장 사건은 그가 전역한 뒤 민간 검찰로 이첩됐지만 증거불충분으로 내사 종결됐다. 민간 검찰과 군 검찰로 이원화된 수사 탓이 컸다. 관련자 대부분이 군에 있어 민간 검찰의 충분한 조사가 이뤄지기 어려웠다.

승 전 소장 또한 징계위에 회부됐으나 아무런 징계를 받지 않았고 이듬해인 2012년 말 무사히 임기를 마치고 전역했다.

비리 행위자들은 명예롭게 전역했지만 양심에 따랐던 황 중령은 오히려 “군 기강을 문란하게 했다”며 징계를 받았다. 지휘 계통에 따라 정상적으로 제보하지 않았고(군인복무규율 위반), 개인 노트북으로 투서를 작성했고(보안규정 위반), 다른 이의 이름으로 투서를 보냈다(품위유지 위반)는 이유로 2011년 8월 감봉 3개월의 징계처분이 내려졌다. 황 중령의 항고로 두 달 뒤 견책으로 감경되긴 했지만 징계위는 국민권익위원회가 낸 “황 중령은 공익제보자”라는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황 중령은 징계권자인 육군참모총장을 상대로 징계처분취소소송을 냈다. 2012년 10월 1심에서는 “부패행위를 신고하는 과정에서 법에 어긋난 행위를 했다면 그 행위에 대한 징계처분을 감경하거나 면제하기는 어렵다”고 익명의 투서를 문제삼아 패소했다.

하지만 항고심에서 재판부는 황 중령의 손을 들어줬다. 2013년 5월 대전고등법원 제1행정부(이승훈 재판장)는 “부패행위를 신고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은 부패방지법에 따라 징계가 면제돼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그간 황 중령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며 징계가 부당하다고 판시했다.

“원고가 제보한 이 전 준장의 횡령 범죄는 2년에 걸쳐 지속적으로 이뤄졌고, 지시 복종 의무가 있는 부하 장교들을 횡령 범죄의 실행에 동원하여 그들로 하여금 정신적인 고통을 받게 하였으며, 그 횡령액이 5000만원에 이르는 등 거액인 점, 국방부로서는 횡령 사건 수사를 통해 헌병 병과 쇄신안을 마련하고 예산사용의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으므로 원고의 1, 2차 제보행위는 중대한 공익 기여를 한 것으로 볼 수 있는 점,…(중략)…횡령 범죄자인 이 전 준장은 징계 회부되지 않고 국방부 검찰단의 수사 이전에 의원 전역했고 횡령 사실의 제보를 받고도 수사에 나아가지 않은 승 전 소장은 징계 회부됐으나 아무런 징계를 받지 않은 데 비해 원고는 공익을 위해 불가피하게 선택한 경미한 규정 위반을 이유로 견책 처분을 받아 실질적으로 인사상 불이익을 받게 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는 바, 전체적인 처분에 있어서 관련자들 사이의 균형을 현저히 상실한 것으로 보이는 점 등에 비춰보면, 피고의 이 사건 처분은 부패방지법 제66조 및 부패방지훈령 제13조의 취지에 저촉되고 비례와 형평의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 위법한 처분이다.”

하지만 육군은 끝내 대법원까지 재판을 끌고 갔고, 황 중령은 결국 지난해 9월 말 대법원에서 징계 취소 확정 판결을 받아 육군본부로부터 징계무효명령을 받아냈다.

황 중령의 명예는 회복됐지만 이미 너무 큰 상처를 입은 뒤였다. 군인으로서의 삶만 꿈꿔왔던 촉망받던 장교는 부당한 징계 처분 때문에 진급이 물건너갔다. 그는 이제 53세 중령 계급 정년을 4년 앞두고 있다.

군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누구나 또다시 황 중령과 같은 피해를 겪을 수 있기 때문에 이같은 일이 더이상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면서 “공익제보자에 대한 태도는 한 사회의 성숙도를 평가할 수 있는 척도”라고 지적했다. 또 “당시 징계절차에 개입한 법무장교를 비롯한 인사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군 내 의사소통 문제, 상부 지시에 따라 이현령비현령 식으로 진행되는 군 사법기구와 징계위 등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촉망받던 한 장교의 좌절···그는 너무 순진했다

2011년 9월30일 감봉 3개월 징계 처분에 항고한 뒤 황 중령은 육군참모총장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범죄자를 신고하는 데 남의 전화를 썼다고 처벌한다면 앞으로는 어떠한 부패가 있어도 입 꼭 다물라는 강한 메시지가 전파될 것입니다. 우리 군에서 실명 제보 정말 어렵습니다.”

지금은 달라졌을까. 만약 황 중령이 처음 편지를 보냈을 때 승 전 소장이 곧바로 제보 내용이 사실인지 확인에 나섰다면 사태가 이렇게까지 커지고 촉망받던 한 장교의 인생이 이토록 망가졌을까.

총기난사, 가혹행위 등 일련의 군 관련 사건들은 군 내부의 폐쇄성이 결정적인 원인이 됐다. 과연 이번엔 군이 바뀔까. 황 중령에게 이번 사건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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