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O 썼으면 "썼다" 왜 말을 못해…청와대로 넘어간 국민청원

2018.04.11 15:33 입력 2018.04.11 20:23 수정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로 공원에서 열린 집회에 참가한 농민과 아이쿱생협 회원들이 문재인 대통령의 ‘GMO 표시제 강화’ 공약을 이행하라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로 공원에서 열린 집회에 참가한 농민과 아이쿱생협 회원들이 문재인 대통령의 ‘GMO 표시제 강화’ 공약을 이행하라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유전자변형식품(GMO) 완전표시제를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 참여 인원이 청원 마지막날인 11일 21만명을 훌쩍 넘겼다. 청원인이 20만명을 넘으면 각 부처 장관, 청와대 수석 등 정부 및 청와대 관계자가 공식 입장을 내놔야 한다.

“GMO 표시 강화와 학교 급식에서 퇴출”을 요구한 시민청원의 핵심은 ‘완전표시제’이다. GMO가 든 모든 식품에는 예외 없이 표시를 하자는 얘기다. 현재 한국에는 식용 GMO가 연간 200만t씩 들어오고, 국민 한 사람이 해마다 40㎏ 넘는 GMO를 먹는 것으로 추정된다. 1인당 쌀 소비량이 62㎏인 것과 비교하면 적지 않은 양이다. 수입 물량은 콩, 옥수수, 카놀라 등이고 대부분 간장같은 장류와 식용유에 쓰인다. 밥상에서 빠지지 않는 식재료들이다.

하지만 원료를 압착해 DNA나 단백질 구조가 완전히 파괴된 제품은 GMO 표시를 면제 받는다. GMO가 들어있는지 아닌지 확인하기 힘들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기술적 검증’이 어렵다는 이유로 표시하지 않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청원단은 주장한다. 청원을 주도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소비자정의센터 윤철한 국장은 “소비자들은 DNA가 남아있는지 궁금한게 아니라 식품 원재료가 GMO인지를 알고 싶은 것”이라면서 “수입 원재료 유통증명서 등으로 확인하면 되는데 문제를 회피하고 있다”고 말했다.

완전표시제는 사용을 금지하자는 것이 아니라, ‘표시를 제대로 하자는 것’이지만, 번번히 현실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반대하는 쪽에서는 물가가 오른다는 것, 무역마찰이 우려된다는 것을 내세운다. 안전성 논란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완전표시제를 하면 소비자 불안이 커지고, GMO 원재료를 쓰지 않고서 식품을 만들면 가격이 올라 생활 물가가 뛴다는 것이다. GMO를 썼는지 직접 확인하기 어려운 수입 제품에 비해 국내 제품만 깐깐하게 검증받는 역차별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얘기도 있다. 완전표시제를 하면 돈 있는 이들은 GMO가 없는 식품을 먹고 저소득층만 값싼 GMO 식품을 먹는 ‘식량 양극화’가 벌어질 수 있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하지만 완전표시제를 할 경우 상품값이 얼마나 오를지 구체적인 추산치는 없다. 윤 국장은 “모든 제품이 GMO 식재료를 안 쓰는 방향으로 바뀌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면서 “값이 오를 것 같으면 기업들이 다른 부분에서 노력해 비용을 절감하든가 해야 하는데, ‘소비자를 위해서 시행하지 않는다’는 이상한 논리를 펴고 있다”고 말했다.

GMO 썼으면 "썼다" 왜 말을 못해…청와대로 넘어간 국민청원

무역마찰 우려를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정부와 공공기관이 허가권을 갖고 GMO 수출을 적극 지원해온 미국이 압박할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미국은 유럽국들의 ‘라벨링(GMO 표시)’을 문제삼아 압력을 넣은 적 있고, 미 무역대표부(USTR)이 무역장벽보고서에서 현재의 한국 GMO 표시조차 문제삼은 전례도 있다. 하지만 시민청원단이 요구하는 완전표시제는 유럽연합(EU)이나 중국 등이 이미 시행하는 수준에 가깝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현권 의원은 “첨예한 통상 이슈라 해서 모두 갈등으로 비화되지는 않는다”면서 “완전표시제를 하면 엄청난 피해가 발생할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우려를 지나치게 부풀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시민청원에 많은 사람들이 호응한 것은 아이들 학교 급식과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미 ‘GMO 없는 급식’을 표방하는 지자체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완전표시제가 아니어서 GMO를 사용하지 않은 식재료를 구분하기는 힘들다. 그래서 서울시교육청은 국내산, 친환경 식재료를 이용하라는 지침을 보낸다. 간장 성분표에서 국내산 콩으로 표시됐거나, 전통인증을 받은 제품을 쓰라고 안내하는 식이다.

유기농, 국산 재료만 쓰려면 급식비용이 올라간다. 서울시교육청은 노원·도봉·강북·성북·서대문·강동구 관내 학교들에서 신청을 받아, 올 2학기부터 시 지원금으로 친환경 식재료를 쓰면서 늘어난 부담만큼 지원해주기로 했다. 경기도교육청은 대규모 공동구매로 원가를 낮춰 친환경 급식을 운영한 사례가 있다고 시교육청은 전했다.

앞서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소비자·시민단체·학계·업계 관계자 등으로 구성된 ‘GMO 표시제도 검토협의체’의 의견을 들어보고 결정하겠다”고 했다. 청와대가 이런 원론적인 답변에 그칠지, 더 진전된 대답을 내놓을지가 관심이다. 윤 국장은 “대통령 공약이었는데 최소한 임기내 어느 정도까지 바꾸겠다는 로드맵이라도 제시해야 시민들이 공감할 것”이라고 말했다.

완전표시제는 아니더라도, 단계적인 ‘절충안’이 가능하다는 의견도 있다. 김현권 의원은 17가지 품목에 적용한 중국이나, 특정 가공식품에 한정해 완전표시제를 하는 대만의 예를 들면서 “지난해 식약처도 40여개 가공식품에 완전표시제를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혀왔다”고 말했다. 안만호 식약처 대변인은 “청와대에서 지시가 오면 관계 부처와 협의해 어떤 방식으로 발표할 지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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