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새 관장, 자율성·균형감 요구돼”

2018.11.13 20:40 입력 2018.11.13 20:41 수정

내년 설립 50주년 맞는 국립현대미술관…미술 전문가들이 말하는 ‘역할과 과제’

2~3명 중 최종 후보 장관이 선택…올해 안에 새 관장 임명될 수도

청주관 건립으로 4관 체제로 확대

과천(아래 사진), 덕수궁, 서울(위)에 이어 다음달 청주관이 문을 열면서 국립현대미술관은 4관 체제가 된다. 3년 만의 관장 교체와 맞물리면서 국립현대미술관에 내년은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시기가 될 수밖에 없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과천(아래 사진), 덕수궁, 서울(위)에 이어 다음달 청주관이 문을 열면서 국립현대미술관은 4관 체제가 된다. 3년 만의 관장 교체와 맞물리면서 국립현대미술관에 내년은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시기가 될 수밖에 없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새 관장 선임 과정에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의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최초의 외국인 수장으로 기대를 모았던 바르토메우 마리 관장이 연임되지 않고 다음달 13일 퇴임하며 3년 만에 수장이 또 교체된다. 더욱이 국립현대미술관은 내년에 설립 50주년을 맞는다. 미술계 안팎에서는 사람으로 따지면 ‘지천명(知天命·하늘의 뜻을 알다)’에 이른 국립현대미술관이 그 위상에 걸맞은 정체성과 역할에 대한 시대적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평이 나온다.

지난달 16일 마감된 국립현대미술관 신임 관장 공모에는 13명이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서류심사를 통해 후보자는 5명으로 줄어들었다. 국립현대미술관 관계자는 13일 “외부심사위원들의 면접 뒤 2~3명으로 추려진 최종후보자를 놓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선택을 한다”며 “이르면 올해 안에 신임 관장이 임명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음달에는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수장고)이 문을 연다. 청주관은 수도권 이외 지방에 최초로 건립된 국립미술관이다. 기존 서울관, 과천관, 덕수궁관을 합쳐 4관 체제로 확대된다. 국립현대미술관에 내년은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시기가 될 수밖에 없다.

경향신문은 미술계 전문가들에게 50주년을 맞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역할, 그리고 신임 관장의 숙제를 물었다. 공성훈 성균관대 교수, 김선정 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 안규철·임민욱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최열 미술평론가가 제언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국립현대미술관에는 ‘시류에 흔들리지 않는 묵직한 전시’를, 신임 관장에게는 ‘자율성과 균형감각’을 요청했다.

■ 국립미술관은 시대를 대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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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선재센터 관장을 지낸 김선정 대표는 “국립미술관은 그 시대의 중요한 작업을 소장하고, 그 소장 작업을 미술관에서 잘 보여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한국 작가들의 작업을 항상 보여주고 맥락을 만드는 상설 소장품전이 중요하다”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상설 전시가 없는 것이 가장 아쉽다”고 말했다. 최열 미술평론가 역시 상설전을 강조했다. 최 평론가는 “국립현대미술관은 과천에서만 상설전 시늉을 내고, 나머지는 온통 기획전만 하고 있다”며 “못해도 소장품 7000~8000점을 갖고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상설전을 든든하게 지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 부산비엔날레 출품 작가이기도 한 임민욱 교수는 “미술관만이라도 돈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프로그램을 통해 재배치하고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이고, 가장 다양한 예술가 스펙트럼을 가진 나라로 부상했음에도 도전적 어젠다를 가지고 세계를 새롭게 끌어안을 수 있는 모습을 적극적으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며 “다원적이고 융합적인 시도들이 모든 단위에서 벌어지는 전방위 기지의 미술관으로서 전쟁과 식민정책 속에서 잃어버린 시간을 복원하고 국제적 교육의 장으로 도약하는 기획을 감행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013년 국립현대미술관이 ‘올해의 작가’로 선정했던 공성훈 교수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작품뿐만 아니라 학술적 담론도 뒷받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공 교수는 “글로벌 시대의 교류도 중요하지만, 한국 미술의 특수성에 대한 인식도 중요하다”며 “우리의 정치적, 문화적, 역사적 상황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단순히 구미의 미학과 미술을 수입하고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미술에 대한 담론을 발전시키고, 글로벌화시킬 수 있는 역량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규철 교수 역시 “국립현대미술관은 한국 현대미술이 생산하는 가치와 의미를 집약하고 담론을 구축해 이를 국제적 담론 속에 위치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 차기 관장에 더 많은 ‘자율’과 ‘권한’을

바르토메우 마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지난 10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짧은 임기’와 ‘제한된 인사권’이 업무 수행에 큰 제한을 줬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이에 동의했다. 특히 최열 평론가는 공모제의 폐단을 지적하며 국립현대미술관장 자리를 ‘차관급·임명제’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 평론가는 “한국은행 총재를 뽑을 때 하고 싶은 사람 줄 세워서 뽑으면 그 나라 경제가 망하지 않겠냐”며 “그런데 왜 대한민국 국립미술관의 수장을 그렇게 뽑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 “공모제도 문제지만, 최고 적임자라고 뽑아놓고 3년이 지나면 자르는 것도 코미디”라며 “관장을 차관급으로 격상시켜 임명하면 모든 문제가 사라진다”고 말했다.

임민욱 교수는 “마리 관장 취임 이후 그나마 처음으로 국립현대미술관이 국제적 교차로이자 광장이 되어가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다”며 “이제서야 비로소 국제적 수준에 걸맞은 혹은 앞서나가는 면모를 보여주기 시작한 참인데, 다시 도돌이표를 마주해야 하는 모양”이라고 말했다. 또 “짧은 임기 외에 그 위로 쏟아지는 ‘정치적 입김’ 문제도 들고 싶다”며 “왜 ‘현대미술을 잘 모른다’는 정치인들, 행정관료들이 영향력을 마구 행사하려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공성훈 교수는 ‘창작의 자유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신임 관장에게 요구했다. 공 교수는 “표현의 자유의 한계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논쟁을 통해 합의되는 것이지 권력에 의해 일거에 정리되어야 하는 문제는 아니다”라며 “다소 불편하더라도 창작의 자유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진 미술관과 관장이면 좋겠다”고 말했다.

안규철 교수는 “임기의 절반 이상을 전임 관장이 정해놓은 일을 하는 데 보내고, 자기 비전을 실현하기 전에 임기가 끝난다”며 “관장이 큐레이터 인사, 전시 기획, 소장품 구입에 일절 관여할 수 없도록 하는 등 관장의 권한과 역할도 과도하게 제한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선정 대표도 “마리 관장이 취임하고 나서 ‘전시 기획에 참여할 수 없다. 규칙들이 이상하다’고 얘기했다”며 “관장의 역할도 수시로 바뀌면서 여러 문제점이 있다”고 말했다. 또 “미술관은 당장은 중요한 기관이 아닐 수도 있다”며 “제일 중요한 것은 미술관의 장기적 비전을 만드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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