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경제문제가 다 내 탓? ‘인구’는 억울하다

2019.01.07 06:00 입력 2019.01.07 10:04 수정

(2)다 인구 때문일까

그래픽 | 성덕환·윤여경 기자 이미지 크게 보기

그래픽 | 성덕환·윤여경 기자

국가 소멸 등 ‘공포 신조어’에도
인구 5163만5256명 역대 최대
예측 빗나가 특별추계 또 시행

2018년 말 현재 대한민국 인구는 5163만5256명. 인구가 줄어든 적 없으니, 우리는 역사상 가장 인구가 많은 시대를 살고 있다. 2016년 발표한 통계청 추계대로라면 적어도 10년 이상은 해마다 최대 인구 기록을 새로 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유례없는 인구 풍요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역설적으로 해마다, 분기마다 인구감소를 걱정하고 있다. 인구절벽, 인구붕괴, 지방소멸, 국가소멸이라는 신조어들이 뿜어내는 음울한 공포가 사회를 휩쓸고 있다.

인구 4000만명을 막 넘긴 1980년대 초만 해도 정반대였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한참 여유로운 상황인데도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이라며 인구팽창과 인구폭발을 걱정했다. 아이 많이 낳는 것이 눈총 받던 시기였다.

인구추계도 곧잘 현실과 엇가고 있다. 2006년 통계청 추계대로라면 지난해 한국은 4934만명으로 총인구수 정점을 찍고 이미 인구감소가 시작됐어야 한다. 그러나 10년 후인 2016년 발표한 인구추계에선 인구감소 시점이 14년 후인 2032년으로 늦춰졌다. 인구감소는커녕 2012년 인구 5000만 시대를 연 이래, 8년째 인구증가세가 지속되고 있다.

또 합계출산율(중위수준 기준)도 2016년 통계청은 2017년 1.20, 2018년 1.22 등으로 계속 증가해 2065년엔 1.38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지만 현실은 거꾸로다. 2016년 1.17, 2017년 1.05를 기록했고, 2018년 잠정수치는 1 밑으로 떨어졌다.

상식적인 궤적을 벗어난 출산율 하락에 통계청은 오는 3월 기준을 조정한 특별추계 결과를 다시 발표할 예정이다. 앞으론 2년마다 인구추계를 내기로 했다. 얼어붙은 심리에 숫자는 이탈하고, 현실을 뒤따라 다시 기준이 바뀌는 상황이다.

인구는 숫자가 아닌 다른 이유로 움직이고 다른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합계출산율 얼마가 무너지고, 인구가 얼마나 줄어들 것이며, 인구 얼마는 꼭 지켜야 한다는 과도한 공포나 협박, 구호가 아니다. 냉정한 현실진단이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얘기해야 할 때다. 냉철한 분석과 진단에 따라 한 발씩 믿고 따라갈 수 있는 미래계획서가 우리에겐 필요하다.

대체출산율 무너져도 ‘산아제한’, 뒤늦게 ‘출산장려’ 헛발질만

인구정책에 관한 한 한국은 계속해서 헛발질을 해왔다. 미래를 읽지 못한 채 현상만 보고 잘못된 진단, 잘못된 처방을 반복했다. 극심한 미스매치 형국이었다. 돌아보면 현재의 장기적인 초저출산 상황은 정부의 실기와 정책 실패가 만들어낸 합작품이다.

여성 한 명이 낳는 자녀 수가 평균 6명을 넘던 1960년대, 정부는 인구 증가가 경제에 위협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1961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맞춰 강력한 인구 증가 억제정책을 도입했다. 전국적인 조직과 전 국민적인 계몽으로 군사작전하듯 펼친 산아제한의 결과 20년이 채 되지 않은 1970년대 말의 합계출산율은 2명 중반대까지 극적으로 떨어졌다.

1983년은 인구 규모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합계출산율 2.1이 무너진 중요한 해였다. 그러나 당시 정부는 오히려 더욱 강력한 산아제한을 펼쳤다. 그해 7월 인구가 4000만명을 돌파하자 산아제한 정책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일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정부는 전국 주요 도시에 인구 증가의 경각심을 알리는 인구시계탑까지 세우며 역주행을 계속했다.

전두환 정권은 임기인 1988년까지 합계출산율을 인구대체 수준 2.1명으로 저하시킨다는 계획을 세웠다. 밀어붙이기식 정책을 추진해 목표치는 5년이나 앞당겨 초과 달성했고, 1984년엔 합계출산율이 1.76으로 뚝 떨어졌다. 그러나 1980년대 내내 ‘둘도 많다’(1982년), ‘하나로 만족합니다. 우리는 외동딸’(1986년) 등 자녀 한 명 출산을 강조하는 포스터가 계속 나붙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출산율은 곤두박질하며 위험신호를 보냈지만, 아무도 이 징후에 주목하지 않았다. 1994년 합계출산율 1.66을 기록한 이후 1999년 1.43, 2002년 1.18까지 떨어졌다. 1996년 정부는 ‘인구 자질 및 복지 증진정책’을 발표했지만, 이 역시 당시의 낮은 수준 출산율 유지를 목표로 설정했다는 점에서 출산 억제정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1997년 이후부터 낮아진 출산율은 외환위기의 영향으로만 인식됐다.

저출산 돌입 못 읽어낸 정부
30년 허송세월 후 정책 전환

장기 저출산 터널 입구에 들어섰다는 시그널을 읽지 못하고 30년을 허송세월한 정부는 결국 2005년 합계출산율이 당시 최저치인 1.08을 기록하며 바닥을 치고서야 정책을 전환한다. 2006년 제1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이 시행되며 출산율 회복을 위한 방향으로 인구정책을 틀었다.

인구정책의 주기는 길다. 효과가 나타나려면 오래 기다려야 하고, 한번 시작된 흐름을 바꾸려면 그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어떤 대책을 내놔도 백약 무효인 극심한 저출산 상황은 오랜 기간, 인구정책의 전환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저출산 대책으로 전환할 시기도 놓쳤지만, 인구정책 전환 초기 방법마저 잘못됐다는 게 더 큰 문제다.

사실 저출산이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선진국 대부분이 저출산으로 고민하고 있다.

인구학자들에 따르면 의학 발달로 기대여명이 늘고, 노동력으로서의 인구 중요성이 감소되는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얽히며 고출산·고사망에서 저출산·저사망으로 가는 것이 인류의 공통된 인구변천 과정이다.

서유럽, 합계출산율 1.5명 이상
가족친화적 제도 정착 노력 등
인권 중심 대책, 성과로 나타나

그러나 같은 인구변천 과정을 겪으면서도 선진국은 우리와 달랐다. 서유럽의 많은 국가들이 인구변천을 겪으면서도 합계출산율을 1.5 이상으로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수십년간 가족친화적 제도와 정책들을 만들고 뿌리내리며 사회변화가 가족과 개개인에게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하려 노력했다는 점이 꼽힌다.

우해봉 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인구변동의 국제 동향과 중장기 인구정책 방향’ 보고서에서 “1994년 카이로 국제인구개발회의는 인구정책의 초점이 인구통제를 강조한 전통적인 ‘인구와 발전 패러다임’에서 개인의 건강과 복지, 인권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전환된 중요한 계기였다”고 짚었다.

위에서 아래로의 일방적인 하향식 인구정책은 한계에 직면했고, 선진국의 경우 사회구성원들의 동의를 얻는 공감대 형성이 인구정책에서 매우 중요한 과제로 등장했다고도 설명했다.

한국은 인구통제형 대책 계속
국가주의·가부장적 태도 여전

반면 우리는 외피만 저출산 대책으로 갈아입었을 뿐 개인과 인권을 강조하는 선진국형 인구대책 대신, 산아제한하듯 아이를 많이 낳으라고 몰아붙이는 인구통제형 대책이 계속돼왔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1960년대 ‘3명 자녀를 3년 터울로 35세 이전에 단산하자’는 ‘3·3·35’ 표어는 2000년대에 ‘결혼 후 1년 내 임신하고 2명의 자녀를 35세 이전에 낳아 건강하게 잘 기르자’는 ‘1·2·3’운동으로 바뀌었다.

최슬기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는 “1983년에 대체출산율 아래로 내려간 이후 저출산 추세가 지속됐지만 정부나 학계에서 이 부분을 고민하지 않았다. 세계는 일찌감치 인구정책에서 인권을 강조하는 쪽으로 방향 전환이 이뤄졌는데 우리는 그 흐름을 놓쳤고, 아직도 인구정책에서 국가주의의 틀, 가부장적 태도를 버리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출산과 관련된 젊은 세대의 반감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고도 했다.

개인보다 집단을 앞세우며 가부장제의 틀이 공고한 동아시아 국가들이 공통적으로 저출산의 늪에 빠져 있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인구전문가들은 선진국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저출산 추세를 바꾸긴 어렵지만, 한국의 비정상적인 초저출산 문제는 접근 방식에 따라 해결 여지가 충분하다고 말한다.

그러려면 출산율을 목표로 하는 정책은 잊으라고 공통적으로 조언했다.

■ 인구를 얘기할 때 알면 유익한 지식들

인구의 3요소는 출산, 사망, 이동이다. 이 3가지 요소들의 조합으로 인구의 규모(크기), 인구구조가 달라진다.

한국에서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는 출산과 관련해선 합계출산율이 기준이 된다. 합계출산율은 ‘여성 1명이 가임기간(15~49세)에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의미하는데, 현재의 인구 규모를 유지하기 위한 대체출산율은 2.1명이다. 한국은 2002년 이후 합계출산율이 평균 1.3을 넘지 못하는 초저출산국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사망과 관련해 중요한 기준은 기대여명이다. 기대여명이란 특정 연령의 사람이 앞으로 생존할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생존 연수를 말한다. 특히 출생 시의 기대여명을 평균 수명이라 한다.

2017년 태어난 출생아의 평균 기대수명은 82.7년(남성 79.7세, 여성 85.7세)이었고, 2017년 60세 성인은 남성이 22.8년, 여성이 27.4년을 더 살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됐다.

저출산·고령화가 심화되며 인구의 수 못지않게 중요해지는 것이 인구의 연령구조다. 국제 공통으로 0~14세를 유소년, 15~64세는 생산가능인구, 65세 이상은 고령인구로 나눈다. 생산가능인구 100명당 부양할 유소년인구, 고령인구 수를 각각 유소년부양비, 노인부양비라 하고 이를 합한 수를 총부양비라 한다.

한국의 총부양비는 2017년 36.8명(유소년 18.0명, 노인 18.8명)이지만, 2065년엔 108.7명(유소년 20.1명, 노인 88.6명)으로 급증할 것으로 추계된다. 총인구를 연령순으로 나열할 때 한가운데 있는 사람의 연령을 뜻하는 중위연령도 2017년 42.0세에서 2065년엔 58.7세까지 수직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가족과 통치: 인구는 어떻게 정치의 문제가 되었나>의 저자인 조은주 명지대 조교수는 “우리는 흔히 인구를 원래 있었던 것으로 생각하지만, 인구는 근대 이후에 생긴 매우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개념”이라고 말한다. 근대에 들어 통계학이 발전하면서 인구는 객관적 데이터로 변했으며, 근대국가는 그 인구를 통제, 조정하면서 사람들을 통치하기 시작했다는 설명이다.

전광희 충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인구는 근대국가가 생기며 영토, 국민, 주권이라는 국가의 3요소 중 하나로 부각됐다. 조세와 징집을 위한 인구는 부국강병의 일환이었고, 통치자의 입장에서는 힘의 표현이었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에선 1960년을 기준으로 1964년에 첫 장래 인구추계 통계가 나왔다. 1996년부터는 국가통계로 5년마다 50년간의 인구추계가 작성돼, 이를 기준으로 재정전망과 국민연금 추계, 병역자원과 교원수급을 계획한다.

생산·경제·국력, 인구 탓만 말고 ‘한 명의 가치·삶의 질’ 높여야

[다시 쓰는 인구론]사회·경제문제가 다 내 탓? ‘인구’는 억울하다 이미지 크게 보기

■ 모든 게 인구 때문? 인구는 억울하다

최근 몇년간 우리 사회에서는 거의 종말론적인 인구위기론이 쏟아지고 있다. 신호탄은 미국의 한 경제학자가 2014년 인구절벽이란 말을 앞세운 책을 펴내면서다. 저자가 말한 인구절벽이란 생산가능인구(15~64세)의 비율이 급속도로 줄어드는 현상이다. 저출산과 고령화가 계속되며 생산가능인구 비율이 줄고, 소비도 위축돼 경기가 침체될 것이라는 것이 우려의 골자다.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는 초저출산은 우려할 만한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인구 문제에 모든 화살을 돌릴 수 없다는 것이 학자들의 공통적인 지적이다.

저출산 등 인구 문제 풀린다고
빈곤·청년실업·양극화 해결되나
인구 탓하는 건 문제 회피 수단
사회·경제 문제 풀어야 답 나와

황명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인구 문제가 풀리면 우리 사회의 다른 문제들이 해결되는 것이냐”고 되물었다. 그는 “현재 빈곤과 청년실업, 양극화 문제 등이 심각한데, 출산율이 오른다고 해서 아무것도 해결되는 것은 없다. 인구 문제 탓을 하는 것은 정말 중요한 문제를 회피하기 위한 수단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은기수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도 “인구가 적어도 노동생산성이 높으면 괜찮은데 인구 줄어드는 것만 걱정하고 있다. 인구 문제보다 전체 인구 중 비율이 줄어드는 청년층의 실업률이 높다는 게 더 문제”라고 말했다.

인구를 탓하기 전에 사회경제적인 문제에 대응해야 답이 나온다고 강조했다.

한 세대 전인 1988년 인구 규모는 현재보다 1000만명 가까이 적은 4200만명 정도였다. 당시 경기가 호황이었고, 인구 문제가 별반 거론되지 않았던 걸 보면 인구의 절대치인 인구 규모 자체가 사회발전과 크게 관련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인구와 투자의 미래>를 쓴 홍춘욱 키움증권 팀장은 “나라 망한다고 목소리 높이는 자들은 소비자로서의 인구를 걱정하는 경우가 많다. 분명 인구가 감소하면 교육·유아 사업 등 내수시장만 바라봐야 하는 소비 쪽 일부 부문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건 사실이지만, 모든 것에 인구 감소를 끌어들이는 건 말이 안된다”고 지적했다. 현재의 인구도 제대로 살지 못하는데 인구가 줄어드는 게 뭐가 문제냐는 말이다. 홍 팀장은 “위기다, 위기다 말하면서 자꾸 불안하게 하지 말고 현재의 상황을 판단하고 차분히 대응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인구학의 시조로 불리는 맬서스는 1798년 <인구론>을 쓰면서 인구의 폭증과 이에 따른 비관적 미래를 예측했다.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것이 그 유명한 구절이다. 자손을 많이 낳으려는 인간의 속성을 그대로 방치할 경우 식량이 인구 증가를 따라잡지 못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그러나 기술 발전으로 식량은 남아돌고, 선진국에서는 인구 감소가 걱정거리다. 맬서스 이후 모든 인구 관련 가설이나 추계는 빗나갔다. 맬서스는 인간이 적응의 동물임을 간과했다.

앞으로는 어떨까. ‘인구절벽’의 저자는 노동력 감소를 걱정했지만, 기업 입장에선 인구가 줄어도 기계와 인공지능의 시대에 노동력은 그리 걱정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생산을 해도 팔리지 않는 소비절벽이 기업의 솔직한 우려일 수 있다. 국가 입장에선 납세자가 줄어든다는 문제가 있다. 개인의 입장에서는? 서용석 카이스트(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교수는 “인구고령화가 문제라면 사회적으로 이것을 해결하려는 노력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한 명 한 명이 중요해지는 사회

인구가 줄면 국가적 위기일까. 인구는 여전히 국력과 연관되어 떠오르는 말이지만, 전문가들은 앞으로는 인구의 규모보다 인구의 질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한목소리로 전망했다. 경제력과 군사력으로 국력을 따졌던 시대에서 이제는 한 차원 다른 국가경쟁력을 갖춰야 선진국 대접을 받으며 국제사회의 발언권을 높일 수 있다는 얘기다. 또 인구 감소는 좁은 땅에서 치열한 경쟁을 겪어야 했던 우리 사회가 한 명 한 명의 가치를 되돌아보게 하고, 그리하여 한 단계 성숙할 수 있는 체질개선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서용석 교수는 “체력이 국력이라는 말이 있었는데, 앞으로는 인구의 질이 곧 국력이 되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 교수는 “우리 사회는 인구가 늘어나며 소비와 생산을 견인하는 성장 중심의 시스템에 맞춰져 있다. 살(인구수)이 다시 안 찐다면 몸에 맞게 옷을 조정해야 하는데, 우린 아직 과거와 결별하지 못했다. 인구도 경제도 양보다 질로 승부하는 체질로 바뀌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몇가지 숫자만 봐도 확연하다.

삶의 만족도 OECD 상위 13개국
상대적빈곤율 대부분 낮지만
한국, 국민소득 3만불 시대에도
분배·복지 취약해 빈곤율 높아

선진국이라 꼽히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여개 회원국 중 인구 1000만명을 넘는 나라는 절반 정도다. 전 세계 인구의 76%를 차지하는 27개국 명단을 보면 인구수와 국제사회에서의 발언권이 그다지 큰 연관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행복도와 1인당 국민소득 순위는 인구수와 더욱 관계가 없다. 오히려 분배수준과 연관이 깊다.

조현 외교부 차관은 지난해 초 ‘21세기 국력의 세 가지 축: 자유, 효율, 공정’이라는 글을 통해 새로운 국력의 세 축으로 정치적 자유, 경제적 효율성, 사회적 공정성을 꼽았다. 조 차관은 “21세기 국력의 개념은 강성권력, 연성권력 및 국가적 결집력을 총체적으로 고려하여 국제사회의 보편적 가치를 이끌어가는 가치지향적 권력(normative power)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현재 국제사회가 실현하려는 인간 중심적 가치와 포용적 사회를 이끌어 갈 수 있는 힘이 강국의 지표가 된다는 의미다.

한국은 어디에 서 있나. 경제성장과 민주화는 이뤘지만 사회적 공정성은 선진국 중 하위권이다.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에 접어들었지만, 삶이 나아지지 않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다. 소득이 중위소득의 절반에 미치지 못하는 상대적 빈곤율이 14.4%에 이른다. OECD 조사 대상 34개국 중 10번째다. 성장의 온기가 아래로 퍼지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OECD 삶의 만족도 점수가 7점 이상인 상위 13개국 중 상대적 빈곤율이 10%를 넘은 나라는 3개국뿐이었다.

치열한 경쟁사회 속 출산율 하락
사회 가치관 대전환 요구하는 신호
쥐어짜는 표준적 삶의 기준 벗어나
개개인 존중하는 환경 마련해야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출산율의 급격한 하락은 인간 사회의 가치관이나 세계관의 대전환이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고 짚었다. 신 교수는 “출산율이 주는 공포에서 벗어나 인간보다 돈과 권력이 위에 있는 사회의 가치가 바뀌고 인간들을 쥐어짜는 표준적 삶의 기준 대신 개개인을 존중하는 환경이 마련된다면 출산율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라고 말했다.

■ 현실적 기준, 색다른 시나리오

[다시 쓰는 인구론]사회·경제문제가 다 내 탓? ‘인구’는 억울하다


저출산·고령화 추세 속에서 생산가능인구의 급감과 치솟는 노인부양비를 생각하면 미래는 공포로 다가온다. 대신 미래 전망에 사용되는 기준을 살짝만 현실적으로 바꿔보면 어떨까? 좀 더 낙관적인 미래가 그려진다. 이미 해외에서는 새로운 기준과 관련된 연구가 활발하다. 인구와 세대 문제를 연구해온 계봉오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와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의 도움말로 국내외에서 논의돼온 색다른 시나리오 4가지를 소개한다.

① 실제 평균 출생아 수는 합계출산율보다는 높다

합계출산율은 ‘여성 1명이 평생 동안 낳는 평균 자녀 수’라고 설명되지만, 실제로 한 명 한 명이 몇 명을 낳았는지 추적해서 나오는 숫자가 아니다. 해당 연도에 연령별 출산율을 구해 더한 값이다. 이는 실제와 차이가 있다. 자녀를 늦게 출산하는 분위기가 확산되는 추세라면 출산율 하락기에는 합계출산율의 하락을 과장해서 보여주게 된다. 2015년의 합계출산율은 1.24로 발표됐다. 그러나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 표본자료를 이용해 연령별 출생아 수 평균을 계산하면 출산이 완결되는 나이인 49세(1966년생)와 48세(1967년생)의 실제 출생아 수 평균은 각각 1.844명, 1.822명으로 합계출산율보다 훨씬 높았다.

② 새 고령화 지수를 사용하면 인도와 미국의 노인부양비가 역전된다

연령만 기준으로 삼아 고령인구 부양비를 조사했더니 조사 대상 7개 지역 중 젊은 인구가 많은 인도의 부양비가 가장 낮고 멕시코, 중국, 미국, 북유럽 등의 순으로 높았다. 그러나 인지능력을 감안한 CADR이라는 새로운 인구고령화 지수로 고령인구 부양비를 계산하면 노년의 인지능력 상태가 좋은 미국, 북유럽의 부양비가 가장 낮아진다(2011년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학회지, 베가드 스커벡 외).

③ 교육수준을 고려하면 노인부양비는 3분의 1로 줄어든다

2000년을 기준으로 삼아 1이라고 했을 때 연령 기준으로만 하면 2060년 한국의 노인부양비는 8배 수준으로 급증한다. 그러나 생산가능인구인 15~64세의 교육수준 향상과 노인의 건강수준 향상을 조정한 노인부양비를 대입해 계산하면 2060년의 노인부양비는 2.54배 수준으로 훨씬 완만한 증가세를 나타낸다(2016년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Development and Society’, 계봉오).

④ ‘남아 있는 수명’ 개념으로 계산하면 노인부양비는 대폭 낮아진다

기존의 물리적 연령 대신 기대수명의 변화와 의료 발전에 따라 실질적인 활동이 가능한 나이(ADDRs) 계산 방식이나, 통상 사망 전 10~15년의 수명이 남은 시기부터를 부양 시기로 계산하는 추계고령화예상비율(POADRs) 방식을 사용하자는 논의가 제기됐다(2010년 Science, 워렌 샌더스 외).

잔여수명을 반영한 ‘추계고령화예상비율’로 계산하면 한국, 대만, 일본, 마카오, 홍콩 등 동아시아 지역의 부양비 변화 추이는 훨씬 완만하게 나타난다(2016년 ‘Australasian Journal on Ageing’, 세르게이 셰르보프 외).


추천기사

기사 읽으면 전시회 초대권을 드려요!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