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당지배 선거제도 타파해야

2024.05.27 20:18 입력 2024.05.27 20:20 수정

총선이 끝난 후 부산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선거제도 개혁 운동을 할 때 만났던 분이다. 이번 부산지역 총선 결과를 두고 ‘선거제도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말씀을 하셨다. 전화를 끊고 부산지역의 득표율과 의석비율을 확인해 보았다.

부산지역에 배정된 지역구 의석 18석 중 국민의힘이 17석을 차지했다. 그런데 득표율을 보니 53.86%였다. 부산지역 민심은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으로 국민의힘을 지지한 것이다. 그런데 국민의힘은 부산지역에 배정된 의석의 94.44%를 싹쓸이했다.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가 낳은 결과다.

소선거구제는 여러 명의 후보 중에서 1표라도 많이 얻은 후보가 당선이 되는 선거제도이다. ‘다수대표제’라고도 한다. 이 선거제도에서는 2등 이하를 찍은 표는 모두 ‘사표(死票)’가 된다. 이번 총선에서도 부산지역에서 야당을 지지한 절반 가까운 표들은 대부분 사표가 되었다.

물론 부산에서만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것은 아니다. 대구·경북에서도 야당을 지지한 지역구 표들은 모두 사표가 되었다. 호남에서는 ‘국민의힘’을 지지한 지역구 표들이 모두 사표가 되었다. 영호남만 이런 것도 아니다. 그 외의 지역 중에서도 국지적으로는 특정정당의 공천이 당선을 보장하는 소지역들이 있다.

이 지역들은 지역구 국회의원만 특정 정당이 싹쓸이하는 것이 아니다. 지방자치단체장부터 지방의회까지 모두 특정 정당의 공천이 당선을 거의 보장한다. 1987년 민주화 이후에도 ‘일당지배’ 체제가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일당지배’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을까.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허대만 전 민주당 경북도당위원장은 이런 지역 ‘일당지배’를 깨기 위해 선거제도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었다. 그러나 승자독식의 선거제도로 이익을 얻는 기득권 정치인들은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선거제도 개혁에 반대해 왔다.

그리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지역주민들에게 돌아오고 있다. 비수도권지역, 특히 호남과 영남의 침체는 ‘정치적 일당지배’와 무관하지 않다. 지역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정책을 두고 정치의 영역에서 치열한 토론이 이뤄져야 지역주민들의 삶에 도움이 되는 정책들이 채택될 수 있다. 그래야 그 지역에 미래가 있다. 그런데 특정정당이 정치를 지배하면서 ‘유의미한 정치적 경쟁’이 사라진 상황에서 어떻게 정책을 둘러싼 치열한 토론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일당지배’ 정치에서는 견제와 감시도 불가능하다. 국회의원부터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회까지 같은 정당인데 어떻게 견제와 감시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 결과는 부패, 예산낭비가 만연한 지역이 되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일당독재를 하는 국가 중에 민주국가가 어디 있고, 정치가 국민들의 삶을 위해 제대로 복무하는 국가가 어디 있는가. 그런데 대한민국의 광범위한 지역에서는 사실상 일당독재가 이뤄지고 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지역의 침체와 ‘주민들의 삶의 질 저하’로 돌아오고 있다.

‘지역소멸’이라는 단어에 썩 동의하지 않지만, ‘지역소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가장 먼저 이뤄져야 할 것이 지역 일당지배 타파이다. 그래야 정치가 제 역할을 하고, 세금이 효과적으로 쓰이고, 지역을 활성화할 대안이 논의될 수 있다.

만약 지금의 선거제도로 2026년 지방선거를 치르게 되면, 지역의 일당지배는 지속될 것이다. 특히 광역지방의회의 표심 왜곡 현상은 매우 심각할 것이다. 2022년 지방선거도 특정정당이 득표율에 비해 과도한 의석을 차지한 경우들이 비일비재했다. 심지어 울산, 대전, 충북, 강원에서는 특정 정당이 50%대의 득표율로도 80~90%대 의석을 차지했었다. 이런 식의 지방선거를 치르면서 어떻게 민주국가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22대 국회가 열리면, 지방선거 제도 개혁 논의부터 다시 시작할 필요가 있다. 거대 양당도 특정 지역의 기득권에 안주하는 정당으로 머무르지 않고 명실상부한 ‘전국정당’이 되고자 한다면, 이 논의를 회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고 주권자들도 이 문제에 각별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특히 일당지배 지역에서 사는 주권자라면, 언제까지 이런 식의 정치를 용인할 것인지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이건 민주주의가 아니다. 그리고 우리 삶에 도움이 되는 정치가 아니다. 일당지배를 타파해야 지역이 살길도 열리고, 나와 내 이웃들의 삶도 나아질 수 있다.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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