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희토류’ 무기화에…미국 “달에서 캐온다”

2019.07.28 21:16 입력 2019.07.28 22:56 수정

‘첨단산업의 비타민’ 희토류, 중국이 전 세계 소비량의 90%를 공급

미·중 무역분쟁서 강경 태도 보였던 미국을 결국 협상테이블에 앉혀

최근 NASA 국장 “금세기 안에 달 표면에서 희토류 채굴 가능할 것”

각국 달 탐사선 보낼 2020년대 기점으로 ‘채취 경쟁’ 본격화 가능성

1972년 12월 마지막 유인 달 탐사에 나선 아폴로 17호의 우주비행사가 달 표면에서 큰 암석을 살펴보고 있다. 최근 짐 브리덴스타인 미국 항공우주국(NASA) 국장은 ‘금세기 안’이란 시한까지 제시하며 희토류 채굴 가능성을 언급했다.  미국 NASA 제공

1972년 12월 마지막 유인 달 탐사에 나선 아폴로 17호의 우주비행사가 달 표면에서 큰 암석을 살펴보고 있다. 최근 짐 브리덴스타인 미국 항공우주국(NASA) 국장은 ‘금세기 안’이란 시한까지 제시하며 희토류 채굴 가능성을 언급했다. 미국 NASA 제공

강 대 강 대치로 치닫는 듯했던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이 협상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블룸버그 등 외신에 따르면 이번주 중국 상하이에서 양국 협상팀이 테이블에 마주 앉을 예정이다.

흥미로운 점은 양국의 대립이 소강 상태로 접어들기까지 과정이다. 미국이 올해 상반기 중국 정보기술(IT) 기업 화웨이에 대한 거래제한 조치에 나서자 중국은 ‘희토류(Rare Earth Elements)’를 미국에 대한 대항 카드로 꺼내 들었다. 지난 5월20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희토류 매장지를 방문해 “중요한 전략적 자원”이라고 강조했다. 전면전을 펼치는 것보다 협상으로 문제를 푸는 게 낫다는 공감대가 양측에 생긴 데는 중국이 칼집에서 꺼낼 기미를 보였던 희토류라는 수단이 일정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해석할 수 있다.

희토류는 말 그대로 흙에서 드물게 구할 수 있는 원소다. 네오디뮴, 스칸듐 등 17개 원소인데 화학적으로 안정돼 있고 열과 전기가 매우 잘 통한다. 생산량도 적고 쓰이는 양도 적지만 산업계에서 반드시 필요한 물질로 꼽힌다. 전기차나 태양광 발전에 필요한 영구 자석이나 고강도 또는 경량 합금을 생산하는 첨가제, 특수 광학유리 제조 등 광범위한 분야에 활용된다. 사람이 체력을 유지하려면 탄수화물이나 단백질을 다량 먹어야 하지만, 적은 양이어도 비타민을 꼭 섭취해야 하듯이 희토류도 공학 기술이 요구되는 제품을 생산하려면 꼭 필요한 물질이다. 그런데 이 희토류는 중국이 전 세계 공급량의 90%를 차지한다. 한마디로 중국에 밉보이는 나라는 ‘비타민’ 없이 살아갈 생각을 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해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 특이한 소식 하나가 날아들었다. 최근 인간의 달 착륙 50주년을 맞아 미국 방송 CNBC와 인터뷰에 나선 짐 브리덴스타인 NASA 국장이 “금세기 안에 달 표면에서 희토류 채굴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헬륨3와 함께 희토류는 각국이 앞다퉈 달 탐사를 추진하는 동력이라는 공감대가 과학계에 널리 퍼져 있긴 하다. 하지만 NASA 국장과 같은 중량급 인사가 희토류를 콕 집어 ‘금세기 안’이라는 시한까지 제시하며 채굴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이례적이다.

이 발언은 최근 중국과의 무역분쟁에서 미국이 희토류 관련 압박을 받은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희토류 수급 지역을 지구뿐만 아니라 우주로 확대할 수 있다는 급진적인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다. 브리덴스타인 국장은 “이런 광물을 얻을 수 있는 동력은 우주 공동체가 조성 중인 투자 덕분”이라고 말했다. 블루오리진을 운영하는 제프 베이조스와 스페이스X를 경영하는 일론 머스크 등을 겨냥한 말이다. 달에서의 희토류 채굴은 이런 민간 우주회사들이 수십년 안에 성취할 몫이 될 거라는 뜻이다.

상단 중간부터 시계방향으로 각종 전자기기에 필요한 희토류인 프라세오디뮴, 세륨, 란타넘, 네오디뮴, 사마륨, 가돌리늄. 미국 농무부 제공

상단 중간부터 시계방향으로 각종 전자기기에 필요한 희토류인 프라세오디뮴, 세륨, 란타넘, 네오디뮴, 사마륨, 가돌리늄. 미국 농무부 제공

달에는 희토류가 왜 많을까. 희토류는 대부분 운석처럼 우주에서 날아드는 물질에 실려 들어온다. 지구에도 운석에 묻은 희토류가 날아들긴 했지만 지구 표면은 공기에 덮여 있기 때문에 달과는 상황이 달랐다. 대기권과의 마찰로 많은 운석이 지구로 진입하던 도중 타서 사라졌다. 게다가 지구에는 비바람이 만드는 풍화작용까지 있다. 달에는 이런 기상현상이 전혀 없다. 김경자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달 표면에 떨어진 운석은 원래 성분 그대로 켜켜이 쌓여 있기 마련”이라며 “특히 극저온 지역이 많은 달 극지에 희토류 같은 자원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달에서 희토류의 세밀한 분포도가 나오고 앞으로 채굴 능력까지 갖춘 정부 또는 기업이 등장하면 달은 거대한 광산으로 변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우주 공간인 만큼 채굴과 운반 비용이 든다 해도 일부 희토류는 금보다 비싼 경우도 있어 채산성이 나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일각에선 1967년 세계 100여개국이 참여해 맺은 우주조약에서 어떤 특정 국가도 외계 우주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다고 규정한 점을 들어 채굴이 법적·제도적인 정당성을 갖출 수 있겠느냐는 전망도 내놓는다. 하지만 미국은 2015년 우주에서 캐거나 뽑아낸 자원은 누구든 가질 수 있도록 관련 법을 만들었다. 이 법의 취지는 달 표면에서 채굴 차량을 몰고 어느 지역으로 이동해 자원을 퍼오는 것은 가능하며, 달 표면에 특정 국가가 건물을 짓고 점유하는 상황과는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한택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 단계에서 달 자원 채취를 둘러싼 법적 논의의 흐름은 공해상에서 물고기잡이가 허용되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특정 공해를 ‘내 것’이라고 선언하지 않고 바다에서 나는 수산물을 잡기만 한다면 별다른 제재가 없는 것과 유사하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미국 등 각국이 사람 또는 탐사선을 경쟁적으로 보낼 2020년대를 기점으로 희토류 채취 경쟁에도 본격적으로 불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