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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창원 “앞으로 정치 문제는 입 닫고 살겠다”

2014.04.06 12:29 입력 2014.04.07 22:53 수정

“앞으로 어떤 정치인이나 정당에 대한 ‘편들기’를 하지 않고, ‘사회적 정의’와 관련되지 않은 정치문제에는 목소리를 내지 않겠다.”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48)가 “앞으로 정치 관련 발언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10월 고정 출연하던 방송과 신문 칼럼 기고 등을 모두 중단하며 정치권으로 갈 뜻을 내비쳤던 것에서 진로를 전면 수정한 것이다.

그는 범죄분석전문가로서 본연의 업무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최근 자신의 이름을 내건 ‘표창원범죄과학연구소’를 설립해 ‘표창원 소장’이 됐다.

그는 또 “앞으로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탐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면 언제든 함께 할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방송 출연을 자주 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방송인으로서 시사 프로그램만 고집할 생각은 없다고 했다. 이미 몇몇 예능 프로그램에서 출연 제의가 들어와 있다고 한다.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 소장. 정지윤기자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 소장. 정지윤기자

표 소장은 지난 3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 ‘여적향’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했다.

그는 정치 관련 발언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 변화에 대해 “객관적 사실이 근거가 되지도 않고, 차선의 선택을 해나가야 하는 것이 정치의 속성이다. 나는 정치를 직업으로 사는 삶과 맞지 않는다는 분명한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제 내가 할 역할은 어느 정도 했다고 생각한다”며 “나도 생활인이고, 가족이 있다”고 말했다. 경찰대 교수직을 그만 둔 뒤의 1년 3개월에 대해서는 “사회 현안에 휩쓸리면서도 ‘살아남자’, ‘버티자’고 하는 것이 있었다”며 “시민들과 함께 하면서 나도 치유와 위로를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나’라는 존재가 내 뜻과 상관 없이 하나의 스피커가 된 듯 하다. 무엇인가를 기대하시는 분들도 있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현재의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지난 1년 3개월 동안 나 개인에게 브레이크를 걸지 않았다. 그냥 갈데까지 달려보자는 생각이었다. 대통령이든 동료든 잘못된 점은 다 지적하고 문제제기를 했다”며 “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제 그만한다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연구소를 만들어서 그 일을 하다보면 내가 하는 말들도 공적인 영역에서 멀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표 소장은 지난 1일 자신의 범죄과학연구소 사업자등록을 마쳤다. 하지만 아직 사무실도 갖추지 못한 상태다. 그는 “나를 더 이상 정치에 연루시키지 말아달라는 강력한 의사 표시로 연구소를 차렸다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 10월 방송과 신문 활동을 그만 둘 때의 상황에 대해 “말할 수는 없지만 당시 몇 군데서 영입제안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번 6·4 지방선거를 앞두고는 경기 용인시장 출마를 권유하면서 그의 집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표 소장은 “특정 지역의 교육감 출마 제안도 있었고, 선거에 출마하시는 분들의 ‘도와달라’는 요청도 있었다”며 “개인적으로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영입제안을 받고 정계 진출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고 했다.

표 소장은 국내 경찰학 박사 1호이자 프로파일러(범죄심리분석관)로 활약해온 범죄심리 전문가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의 고정출연자로도 잘 알려져 있다. 한국인 가운데 유일하게 미국 프로파일링협회 회원자격을 갖고 있기도 하다.

그는 2012년 대통령 선거 당시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과 관련해 적극적인 수사가 필요하다는 견해를 밝힌 뒤 “경찰대의 정치적 중립성에 부당한 침해가 발생할 가능성을 방지하기 위해 사직한다”며 사표를 냈다. 이후 진보 진영에서는 박수를, 보수 진영에서는 ‘종북’, ‘좌빨’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그는 대선 후 광주로 내려가 시민들을 위로하는가 하면 서울 강남과 광화문 등에서 시민들과 포옹하는 ‘프리허그’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다.

그는 “프리허그 퍼포먼스 이후 한국을 떠날 결심을 했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진지하게 이민을 고민했다고 한다. 그런데 소위 보수주의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자신을 향해 “대한민국을 떠나라”고 하는 것을 봤다고 한다. 그것을 보면서 “오기가 발동해” 이민을 안 가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는 그동안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사회적 관심사에 대해 의견 개진을 하면서 논란의 중심에 서왔다. 최근 피부과 전문의 함익병씨의 ‘독재가 뭐가 나쁘냐’, ‘여자는 국방의 의무를 지지 않으니 4분의 3만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는 등의 인터뷰에 대해 “의대에서는 기본적인 윤리나 철학 전혀 안 가르치나? 아니면 이 사람만 이런 건가? 21세기 대한민국 의사 맞나?”라는 글을 트위터에 올려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 성향에 대해 “솔직히 보수도 진보도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예를 들어 나는 성소수자를 지지한다. 이 부분은 굳이 나눈다면 진보쪽일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역사와 전통, 문화관습을 따르는 정도를 보면 보수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표 소장은 얼마 전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의 ‘탐정특집편’에 출연한 것이 논란이 될 만큼 보수진영의 공격을 받았다. 일부에서는 <무한도전> 팀 자체를 비난했고, “MBC 사장을 자르라”는 얘기까지 나왔다. 표 소장은 “이런 일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이 일 때문에 정치권과 멀어져야겠다는 생각이 더 커졌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경찰대 교수직을 그만두는 계기가 됐던 국정원 불법 대선개입 사건에 대해서는 “이제 어느 정도 정리가 됐다고 생각한다. 정치와 사법적인 영역만 남았다”며 “이제 내 역할도 끝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잘못된 부분이 있어 문제제기를 했고, 객관적인 사실은 다 드러났다. 나머지는 역사의 몫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다만, 당시와 같은 상황이 다시 발생한다면 2012년과 똑같이 행동할 것이라고 했다.

국정원 개혁 방향에 대해서는 “해체는 옳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국가정보원은 말 그대로 정보 기능에 중심을 두는 것이 맞다고 본다. 다만, 정치적 이용의 가능성이 높아지기 대문에 해외정보 파트와 국내정보 파트를 분리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민주당과 안철수 의원이 합친 것에 대해서는 “참신하고 희망적”이라고 평가했다. “거대 여당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민주당과 친노, 안철수 신당 등 야권이 분열돼서는 안되는데 그 중심에 서있던 분들이 합친다고 하니 그 부분에 대한 걱정을 덜었다는 의미”라고 했다. 하지만 통합 신당의 전망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았다. “통합 자체에 대한 발언이 나의 정치적 발언의 마지막이었다”는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앞으로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SNS에도 정치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더 이상을 글을 올리지 않겠다고 했다.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 소장. 정지윤기자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 소장. 정지윤기자

그는 신문 칼럼의 고정 독자를 많이 확보하고 있는 ‘파워라이터’이면서 방송인이기도 하다. 그는 앞으로도 글쓰기와 방송출연은 계속할 계획이다. 그는 자신의 글쓰기 원천으로 반성문을 들었다. “학창 시절 말썽을 많이 피워 반성문을 자주 쓰다보니 이야기거리를 자꾸 생각해내야 하고, 그러다보니 책도 많이 읽으면서 문장력이 많이 늘었다”며 웃었다. 방송인으로서는 시사 프로그램만 고집하지 않고 한국 사회와 사람들에 대해 탐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면 언제든 함께 할 준비가 돼있다고 했다.

그는 고등학교 2학년생인 딸과 초등학교 6학년생인 아들을 둔 아빠다. 한국의 보통 중년 남성들과 달리 가정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편이라고 한다. 술·담배는 하지 않는다. 등산 외에는 운동을 하지 않는 그의 아들은 축구를 하고 있다. 그는 “내가 보기에는 타고난 재능이 없는데 축구에 대한 열정과 성실성이 있다”며 “본인이 좋아하니까 하라고 한다”고 말했다.

이번에 만든 그의 연구소는 국내 최초의 민간 범죄과학연구소다. 그는 “이곳에서 미해결 사건들을 처리하고, 전에 국가를 위해서 했던 일들을 민간 영역으로 넓혀 새로운 시장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CSI체험 프로그램도 만들고, 각종 범죄 및 추리와 관련한 문화 콘텐츠도 만들 생각이다. 그는 “프로파일러의 영역을 확장시키고 싶다”고 했다. 경찰과 검찰이 자체적으로 처리하지 못하는 부분들은 민간에 도움을 청할 수 있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미국 등이 그렇게 하고 있다.

표 소장은 “그동안의 것을 모두 잊어달라는 것은 아니다. 내가 지고 가야 할 건 지고 가겠다. 그동안 귀 기울여 주는 사람들이 많아서 행복하고 감사했다”며 “앞으로 혹 저에 대해 실망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거기에 좌지우지되지는 않겠다. 저한테 ‘변했다’고 하면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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